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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과 함께 가정예배

지식의 근본 (잠1:1-7) 찬422장

잠언은 인생 시작에 관해 어떤 지혜를 보여줍니까?

첫째, 잠언을 깨달음으로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경구로 된 잠언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입니다. 귀고리나 목걸이를 다는 것처럼 잠언을 삶에 적용할 때 우리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알게 됩니다.

둘째, 열매를 맺힐 기대로 시작해야합니다. 우리 목표가 “내면 변화”에 있는 것을 아는 잠언은 명철, 지혜, 의, 공평, 정직, 훈계, 슬기, 지식 그리고 근신이 무엇임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의 원천인 성경을 순종하면 영적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딤후3:16-17)

셋째, 여호와 경외함을 즐김으로 시작해야합니다. 지식의 근본인 여호와를 경외함을 즐겨야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할 때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붙잡을 것 두 가지 (잠1:8-19) 찬379장

본문은 신자가 붙들어야 할 방향 두 가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어떤 것인가요?

첫째, 말씀을 들음으로 나가라 권합니다.

8-9절에 보면 훈계를 들으며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나온 아비와 어미는 성경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에 날마다 말씀을 먹고(마4:4) 묵상하면생명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처럼 성경말씀을 깨달음으로 은혜받을 것을 결심하고 실천해야합니다.

둘째, 악인의 꾀를 경계하라고 권합니다.(10-19) 10절에 4가지를 “쫓지 말라”고 하기를 사람의 피 흘리는 꾀 (무자비), 통채로 삼키려는 꾀 (탐욕주의), 전대 하나만 두자는 악한 연합 (연합주의) (15), 그리고 가만히 엎드리는 죄 (은밀한 죄) (16)를 대적하라고 하십니다. 이 죄들을 철저히 경계하여 헛된 일을 버려야합니다.

지혜의 탄식을 듣자 (잠1:20-33) 찬102장

본문 내용은 지혜의 애타는 호소를 듣고 즉시 응답하라고 권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외침에 응답하는 삶이란?

첫째, 지혜의 간절한 호소를 들을 줄 알아야합니다. 20-27에 보면 길거리, 광장, 훤화하는 길머리와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지혜의신을 보내어 정성을 다해 부르짖습니다.(23) 그리고 종말론적 경고를 보이면서 호소합니다.(26) 마지막 기회라는 것입니다.

둘째, 지혜가 부를 때에 즉시 응답할 줄 알아야합니다. 24-27절에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 두려움과 재앙이 광풍처럼, 폭풍처럼 몰려온다고 경고했습니다.

셋째, 지혜가 주는 영원한 평안을 구해야합니다. 복음에 응답하는 삶은 주님의 간절한 음성을 듣고 즉시 응답할 뿐 아니라 지혜가 주는 영원한 평강을 구하는 것입니다.(31,33) 지혜가 주는 평안을 추구합시다.

말씀과 기도의 삶(잠2:1-9) 찬456장

오늘은 이 지혜를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 지를 생각하려합니다.

첫째, 말씀을 잘 받을 때 지혜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일도 심혈을 기우려야 무엇이 되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에는 더 마음을 쏟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받으며, 간직하며, 기울이며, 마음을 거기에 두라고 하셨습니다.(1-2)

둘째, 기도의 수고로서 이 지혜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3-4절에 불러 구하며 소리를 높여 찾으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수고(은사)를 통하여 은혜 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신앙의 불로소득을 경계해야합니다. 기도의 땀을 흘림으로 은혜 받는 것을 좋아해야합니다. 진실한 수고를 통해 우리는 공의, 정의, 공평을 알게 됩니다.(6-9)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 생애의 목표입니다. 이것을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드려야만 합니다.

지혜가 주는 유익(잠2:10-22) 찬98장

여호와 경외의 지혜를 얻을 때 찾아오는 유익은 무엇인가요?

첫째, 영혼의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10절에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고 한 말씀에는 참 지혜이신 그리스도가 주로 인정되어 모든 일을 평정하는 뜻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둘째, 악인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11-15절에는 악인의 패역에서의 구원을 16-19절에는 음녀의 유혹에서의 구원을 말해줍니다.

셋째, 의의 길로 계속 가도록 도와줍니다. 좁은 길을 가는 신자의 삶에 몰려오는 유혹을 이기도록 도와주는 것은 지혜에 귀를 기울일 때 되어집니다. 기도와 말씀에 전념함으로서 하늘의 즐거움을 누리며 하나님의 절대 보호와 계속적인 의의 길을 걸어갑시다.

축복의 원리 (잠3:1-6) 찬 28장

잠언은 장수, 평강, 명예 그리고 인도의 복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를 선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첫째, 주의 말씀을 순종할 때 장수와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1-2) 하나님 말씀을 가리키는 나의 법과 나의 명령을 잘 지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법과 명령의 형태로 된 것은 우리가 지키기에 간편하고 도움을 주는 형태로 된 것입니다.

둘째, 인자와 진리를 사랑할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명예를 얻습니다. 인자와 진리는 무엇인가요? 사랑과 참입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그대로 품고 사랑하고 따르면 그의 삶에는 이런 사랑을 맛보고 진실의 은혜를 맛보는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를 의지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삶을 살 때 지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갈 길을 미리 아는 항해가 안전한 것처럼 우리가 여호와의 인도를 받을 때 형통케 됩니다. 그것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의지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잠3:21-26) 찬343장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를 지키는 것이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첫째, 믿음을 잘 지키는 자가 받는 복이 무엇인가요? 본문에 복의 내용 3가지를 말하기를 생명의 충만, 형통의 역사(25), 그리고 하늘의 평안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지혜와 근신을 지키는데 힘을 쏟는 것보다 다른 것에 힘을 더 소모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장 복된 것을 위하여 사모하며 거기에 모두 것을 투자하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둘째, 믿음을 바로 파수하기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회개하는 일을 힘써야하며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일에 힘써야합니다. 이 복을 누리기 위해 야고보처럼 기도의 낙타 무릎이 되며 야곱의 씨름처럼 기도에 많은 수고를 드려야합니다.

이웃관계의 정도 (잠3:27-35) 찬278장

본문은 이웃관계를 어떻게 지키라고 말합니까?

첫째, 약자에 대한 태도(27-31) 약한 자에 대하여 가르치기를 네 손에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네 이웃이 네 옆에서 안연히 살거든 모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약한 자에 대해 항상 긍휼 위주여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경건이기 때문입니다.(약1:27) 둘째, 악인에 대한 태도는 다투지 말고, 부러워하지 말고, 좇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악인에 대해 우리는 원수를 갚기 쉽고 미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악인의 행동을 하나님께 맡기고 도리어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셋 째, 의인과 악인에 대해 성경은 세 가지를 말해줍니다. 의인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으나 악인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고, 의인은 은혜를 받지만 악인은 비웃음을 당한다고 했으며, 의인은 영광의 기업을 받지만 악인은 욕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약속을 붙잡고 나아가야합니다.

지혜를 사랑하라 (잠4:1-9) 찬499장

오늘은 지혜와 관계를 맺는 방법을 생각하고 그 결과를 생각하려합니다.

첫째, 어떻게 지혜와의 관계를 가질까요? 본문의 지혜, 훈계, 명철이란 말은 각각 지혜의 특성을 보인 용어들입니다. 네 가지 방법을 보여줍니다. 들어야하며(1, 5, 7), 마음에 품고 잘 지켜야하며, 사랑하고(6) 높여야합니다.(8)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리킨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둘째, 지혜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어떤 것입니까? 살아나고(4) 보호를 받으며 (6) 존귀하게 됩니다.(9) 이 복을 내 것으로 삼기위하여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잠언에서 반복하는 지혜 사랑 문제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바로 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복을 현실화시키지 못하게 되는 가장 큰 장애가 내게 있습니다. 바로 우리 속의 육이란 것입니다. 이 육을 제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합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잠4:10-19)찬89장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은 어떤 것이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요?

첫째, 의인의 길은 돋는 해처럼 빛납니다.(10-13) 의인의 길이란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삶을 가리키며 그 결과, 돋는 해처럼 낮의 광명처럼 밝아진다고 했습니다. 장래의 밝음을 무엇으로 보장합니까? 바로 의인의 삶을 살 때 가능합니다. 그 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삶을 힘써 지키는데 있습니다. 둘째, 악인의 길은 어두움에서 살아갑니다.(14-17) 악인의 길은 사특한 자의 첩경이라 했습니다. 악행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하고 불의의 떡을 먹고 강포의 술을 마시며 불의와 연합된 삶을 힘씁니다. 19절이 보인대로 “어두음”때문에 넘어져 깨져도 그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즐기는 삶을 누리지 못하면 어두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네 마음을 지키라 (잠4:20-27) 찬484장

마음을 지키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하며 어떻게 지킬 것입니까?

첫째, 마음을 지키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잘 지키면 생명이 되고 네 몸의 양약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우리 마음을 통해 나타내시기에 거듭난 신자의 마음을 생명의 원천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 채워지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나타나고 마귀로 채워지면 마귀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둘째, 마음을 어떻게 지킬까요? 마음을 잘 지키려면 두 가지를 힘써야합니다. 지체를 악의 병기로 드리지 말아야합니다.(24-27) 입은 궤휼에서 멀리하고 입술은 사곡에서 멀리하고 눈과 눈꺼풀은 바로 보며 발은 첩경을 평탄케 하고 모든 길을 든든히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려야합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지혜의 문에서 떠나지 말고 잘 지켜나가야 합니다. 말씀에 착념하라는 것입니다.

음녀 유혹을 경계하라 (잠5:1-14) 찬189장

여기 “음녀”란 남녀 간에 일어나는 간음을 가리키며 동시에 거짓교훈을 따라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유혹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지혜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지혜를 따라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째, 음녀의 유혹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꿀과 기름처럼 매력을 끄나 마침내 쑥과 칼 같으며 사지와 음부로 떨어져 (5) 무디게 만듭니다.(6)

둘째, 음녀의 유혹이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7-14에 보면 존영, 수한, 재물, 수고, 육체에 아주 치명상을 가져옵니다. 이것을 분별하는 지혜 자가 되기 위해 성령의 은혜가운데 머물러 있어야합니다.

셋째, 어떻게 지혜를 따를까요? 주의하며, 귀를 기울이며, 근신을 지키며, 입술로 지식을 지키며, 말씀을 버리지 말아야합니다.

부부의 정절문제 (잠5:15-23) 찬288장

본문은 부부생활의 정절이 얼마나 복된지를 보이기 위해 음녀를 경계하라고 가르칩니다. 어떻게 음행의 죄를 이길 수 있습니까?

첫째, 부부의 정절을 지킴으로서 (15-19) 이깁니다. 부부의 성적 관계를 샘으로 비유하여 “네 우물을 마시우며, 네 도랑물을 밖으로 흐르지 못하게 하며, 네 샘을 복되게 하며, 사랑의 삶을 나누라”고 말합니다. 주 안에서 맺어진 언약을 선한 양심으로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창세전의 경륜을 믿고 경건한 가정이 되도록 늘 힘써야 합니다.

둘째, 음녀 유혹을 피함으로서 (20-23) 이깁니다. 음녀 유혹의 특징은 훈계를 멸시하고 미련의 껍데기를 고집합니다.(23) 소돔 고모라의 롯의 가정이나 노아 홍수 심판 전의 상황처럼 마귀는 언제나 가정을 파괴합니다. 공공연한 음행의 문화가 만연한 현실에서 가정을 잘 지키는 것 자체가 이미 전도며 선교하는 것입니다. 자극성이 강한 이 죄를 이기는 최선의 길은 요셉처럼 피하는 것입니다.(창39:7-10)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성령 충만한 자로 살아갑시다.

유혹에서 자유하려면 (잠7:13-27)찬212장

또 다시 잠언을 통해 음녀 유혹의 형태와 결과가 어떠한지 그리고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음녀의 유혹방법, 말씀으로 시험한 마귀처럼 경건의 모습을 띄고 유혹합니다. 14절에 서원제를 드렸다고 하고 화목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언적 암시를 보이면서 유혹하며(15) 모든 잔치의 풍성함을 약속하고 유혹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보이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이단 교훈을 벗어나려면 참 경건의 맛을 알고 그 길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둘째, 유혹에 넘어진 자의 결과, 먼저 자살행위가 일어납니다. 소가 쇠사슬에 매어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매우 치명적입니다. 화살이 간을 뚫는 것 같고 새가 그물에 걸리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셋째, 유혹을 이기는 길, 말씀을 잘 듣고 주의해야합니다. 음녀의 유혹은 우리 주변과 우리 속에 항상 깔려 있습니다. 한번 빠지면 끝장이라는 의식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지혜의 외침에 응답하자(잠8:1-21) 찬490장

본문은 지혜의 외침에 대한 응답을 요구합니다. 왜 지혜의 외침에 응답해야합니까?

첫째, 지혜란 가장 가치 있는 교훈이기 때문입니다.(10-11) 금 은 진주보다 더 귀한 것을 지혜로 비유한 것은 그 가치성을 보인 것입니다. 세상이 좋아하는 보화는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지만 지혜는 현세나 내세에 항상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경외하는 신앙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허비하는 헌신은 당연한 것입니다.

둘째, 지혜 속에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있기 때문입니다.(2-3) 하나님의 간절한 초청이 공적으로 사적으로 이루어짐은 그 속에 준비된 풍성함이 엄청나기 때문이고 또 그것을 받는 방법이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광장에서 외치며 골방에서 속삭입니다. 여기에 회개와 믿음의 응답만하면 준비된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기도의 수고를 드려 지혜이신 그리스도의 간절한 외침에 아멘으로 응답하여 그 복을 소유합시다.

창조자인 지혜(잠8:22-36) 찬235장

본문에는 지혜의 두 방면을 의인화시켰습니다. (27)

첫째, 지혜를 선재자라고 했습니다. (22- 26) 요한복음 1:1-3절에 나온 태초에 계신 말씀이 바로 이 지혜였습니다. 누가 만드신 분이 아니고 자존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다”(22)는 구절이 이것을 설명하는데 바로 이 지혜는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를 소유함은 그리스도를 소유함이며 이 지혜를 순종함은 그리스도께 순종함입니다. 둘째, 지혜를 창조자라고 했습니다. (27- 31) 여기 묘사된 지혜는 만물의 기초이며 만물을 친히 만드신 분이십니다.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가장 선하게 만드신 지혜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이 증명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잘 알아 만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로 인하여 창조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골1:15-17) 선재자요 창조자이신 지혜에 귀를 기울여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창조의 생애를 살아가는 지혜자가 됩시다.

지혜의 초대(잠9:1-18) 찬323장

지혜의 간절한 초청(1-9)과 미련한 계집의 부지런을 떠는 유혹(13-18)은 우리 생활에 항상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이때 지혜자는 바른 선택을 하기위해 실상을 잘 알아야합니다.

첫째, 지혜는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여호와 경외라고 말하면서 그를 두려워하며 사랑하라고 권합니다. 집을 짓고 상을 갖추고 정중하게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사55:1-2) 거기에 응할 때 준비된 풍성한 것이 모두 내 것이 되어 가장 아름다운 향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계3:20) 둘째, 그러나 음녀의 초청도 대단한 열심입니다. 미련한 계집이 감언이설로 꼬입니다.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17)라는 거짓 약속으로 하나님 경외하는 것보다 불의의 생활이 더 재미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 길을 따르면 멸망합니다. 어쩌다 넘어졌으면 즉시 회개하고 그 지혜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준비된 생명과 장수의 복을 내 것으로 삼아야합니다.

지혜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의 세계로 나아가 그 안에 마련된 은혜의 맛을 누리는 복된 가정이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관계를 이루자(잠10:1-17)찬333장

본문은 하나님관계(3, 6-7), 사람관계(1, 4-5, 8-14), 물질관계(2, 15-17)에 대한 진리를 밝혀줍니다. 그 중 두 가지만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갈급한 영혼 위에 은혜 주시는 우리 하나님은(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영혼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덤덤한 마음은 타락한 것이고 매우 위험한 상태임을 잊지 말고 겸손히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힘써야합니다.

둘째, 입술을 경계해야합니다. 미련한 입은 패망하고(8,10) 지혜의 입은 생명 샘입니다.(11) 명철자의 입(13)과 참 지식을 간구하는 입술(14)을 소유해야합니다. 사탕발림의 말 한마디가 헤롯을 죽게 했지만 부정한 입술을 깨달은 이사야나 바른 한마디의 신앙 고백을 한 베드로는 반석 위에 세워지는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의인의 입(잠10:18-32) 찬313장

잠언의 의인은 여호와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자로 경외하는 삶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삶이 가장 잘 표현되는 것이 말이기에 언어생활의 특징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첫째, 의인의 말은 가치가 있습니다. (18- 21) 그것은 치료하며 생명을 살리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말은 악 영향을 미치나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아서 (20) 누구에게나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가르치며 덕을 세웁니다.(21)

둘째, 의인의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24) 악인은 영적 게으름으로 여호와 경외를 할 수 없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소원을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습니다.(23)

셋째, 의인의 말은 영원한 효력이 있습니다. (27-32) 의인의 혀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이웃에게 덕을 세우기 때문에 장수와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27, 28)

의인의 입술을 갖기 위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 지키는 일에 심혈을 기울입시다.

정직한 자(잠11:1-15) 찬208장

일상생활에 일어나는 모든 관계에서 정직은 생명과 같습니다. 진실, 의, 정직은 여호와 경외심의 기초이며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들은 어떤 방면의 정직을 보여줍니까?

첫째, 물질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할 것을 보여줍니다. 1절에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정직한 헌금생활이나 정직한 세금 보고나 성실한 직장생활은 모두 이 의에서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 모든 문제가 정직으로 해결되어야합니다. 환난을 당할 때 정직자는 구원을 받고 (8) 정직자의 축원으로 성읍이 잘 됩니다.(11) 이것은 하나님이 정직자 곧 의인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만이 정직할 수 있기에 정직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 진실하게 살아갑시다.

상급과 징벌(잠11:16-31) 찬269장

본문은 의인의 상급과 악인의 징벌이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첫째, 의인의 마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징벌을 내리기도 하십니다.(20) 무엇보다 모든 행동의 뿌리인 우리 마음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근거를 둘 때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지켜야합니다. 어떤 마음입니까? 진실한 마음, 거룩한 마음, 그리고 착한 마음(23)을 지켜야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삶을 힘쓸 때만 가능합니다.

둘째, 의인의 원리를 계속 따라감으로 주의 약속을 체험해야합니다. 덕, 근면, 인자를 추구함(16,17), 의를 굳게 지키며(18-21) 절제하는 삶(22-23), 그리고 재물을 잘 관리함(28-30)에 의인의 길을 따라야합니다. 그러할 때 보기에 아름답지 못하나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푸른 잎사귀와 열매를 맺히는 감람나무처럼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 안에 더 온전케 된 의인의 놀라운 복을 가정 식구들이 다 누리도록 하나님을 모신 마음을 늘 지켜가야 합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 (잠12:1-20) 찬494장

여호와 경외 본위로 사는 신자는 훈계를 사랑합니다. 훈계란 “책망, 징계(1)”란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교훈뿐 아니라 교정시키려는 책망으로 채워져 있고 그 책망이 사랑하는 자에게만 주어지기에 의인은 성경에 목을 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본문에도 미련한 자는 짐승 같아서 훈계를 싫어하고 악을 좋아하지만 지혜자는 훈계를 감사히 받는다고 했습니다. 왜 훈계를 좋아합니까?

첫째, 훈계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버리운자임을 알기에 주의 책망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히12:8-9) 둘째, 훈계를 받을 때 문제가 치료되고 새로움을 입어 영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의 진단이 정확할 때 치료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지적은 그 자체가 치료입니다.(3,7) 훈계는 거친 짐승의 마음을 소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1,10) 하나님의 훈계를 기꺼이 받아들입시다.

의인의 상급 (잠12:21-28) 찬490장

여호와를 경외하는 의인이 받을 상급이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21)고 했으며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고 사망이 없다(28)고 했습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기뻐하십니다. 의인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가 나의 상급이요 기업이라고 했고 바울은 교회가 받은 풍성한 복 중 하나가 여호와가 나의 기업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22,25, 엡1:18) 셋째, 이웃에게 기쁨을 줍니다. 의인의 또 다른 상급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하는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23절 에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한다고 했고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름을 받는다(24)고 했으며 의인은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기를 미혹케 한다(26)고 했습니다. 이 의인의 상급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써 경주합시다.

의인의 재물관 (잠13:1-13) 찬409장

의인은 세상을 등진 사람이 아니라 여러 관계로 얽힌 세상 안에서 경건을 지키기 자입니다. 가장 많이 일어나는 물질문제에 대한 확실한 견해를 갖고 살아갑니다. 첫째, 재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습니다.(6) “부지런한 자가 풍족함을 얻는 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재물의 풍족함을 누릴 뿐 아니라 아굴처럼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을 믿을 때 다스릴 수 있습니다. 둘째, 불로소득을 경계합니다.(11) 또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는 것“을 알고 자기의 손으로 일하여 얻은 재물을 좋아하고 그 길을 따릅니다. 이것 역시 경건을 본질로 합니다. 은혜라고 해서 노력과 수고 없이 얻으려는 자세는 은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은혜를 헛되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재물보다 경건이 우선임을 믿습니다.(8) 재물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있지만 경건한 마음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체험하기 에 경건의 우선순위를 따릅니다. (마6:33)

지혜의 자증(잠13:14-25) 찬253장

잠언은 신약서신서처럼 진리의 농도가 짙습니다. 한 구절 속에 구원과 생활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잠언을 대할 때마다 두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합니까?

첫째, 말씀과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임을 전제로 하고 언제나 계명의 권위를 두려워하며 따라야합니다. 수직관계는 자연히 수평관계로 나아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그 은혜의 힘이 모든 생활에 적용되어야합니다.

둘째, 말씀이 말씀을 지혜가 지혜를 증거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자신을 친히 증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세상의 빛, 세상의 생명, 참 포도나무, 생수, 참 떡 등으로 주장한 것은 누구나 주목하고 받을 최대의 증거이듯이 지혜는 지혜를 증거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여호와 경외신앙으로 이끕니다. 이것은 결국 참 지혜인 그리스도에게 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따를 길입니다. 생명의 샘인 지혜자의 교훈을 겸손히 따릅시다

미련과 슬기(잠14:1-19) 찬405장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첫째, 사람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시작하고 진행하고 마치는 존재입니다. 태초부터 인생의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 그대로 진행하게 하시고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게 이끄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선언했습니다. (롬11:36) 둘째,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지 않은 것은 패망입니다. 이것을 잘 아는 잠언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선택한 사람의 어리석음을 보임으로 진정한 지혜자는 무슨 일이든 주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밝힙니다. 주의 뜻이면 이것 저것을 하리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잔을 옮기는 것을 원하였지만 주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겟세마네의 기도가 하나님 백성의 기도여야 합니다. 사람이 다 인정해도 어떤 길은 멸망의 길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 조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생명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복을 누리는 자 (잠14:20-35) 찬252장

사람들은 무엇을 더 많이 받아야만 된다고 말하는데 주님은 이미 받은 복을 계수하고 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요?

첫째, 영적부요를 이웃에게 나누어줌으로서 누릴 수 있습니다.(20-24) 부요자는 (1)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겨야합니다.(긍휼)(21), 선을 도모하는 자(선)(22), 입술로만 말하는 자가 아니라 실행하는 자(수고)(23) 자기 재물을 허비할 줄 아는 자(구제)(24))에게 친구가 많이 생기고(20) 복이 임하며(21) 인자와 진리의(22) 놀라운 유익이 찾아옵니다.(23)

둘째, 여호와 경외를 배움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경외신앙 곧 믿음의 삶에는 반드시 생명의 샘(27), 견고함(26), 그리고 왕적 영광(28)이 따릅니다.(창1:28) 그러나 이 신앙을 따르지 않는 모든 삶의 영광은 빈 껍질처럼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이미 그 세계에 들어와 잇는 우리 가정은 경외심을 지키기 위해 수고함으로 복을 누릴 줄 알아야합니다.

생명 길을 경영하라 (잠15:1-18) 찬246장

생명 길이란 생명을 길에 비유한 말인데 요14:6에 예수님을 길이라 했고 마태복음7: 에는 우리 앞에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이 놓였다고 말합니다.

첫째, 생명 길은 두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하나는 온유입니다.(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는 말씀대로 생명을 가진 자는 온유로 나아가야합니다. 다른 하나는 근면입니다. 19절에 게으른 자는 가시 울타리가 길에 있지만 정직한 자는 대로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역시 생명의 길을 아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은혜입니다.

둘째, 이 길에는 경영이 필요합니다. 22절에 보면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고 한 것은 그 길은 수고를 통해 얻는 길임을 보입니다.

셋째, 생명 길을 바로 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세워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21절에 명철자는 미련한 길을 바르게 하며 23절에 맞는 인생을 산다고 했습니다. 딱 맞는 인생은 바로 이 길을 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피조물의 영광(잠15:19-33) 찬175장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5:33)

기독교의 최고의 덕이 겸손인 것은 생활의 경험에서 나온 교훈이전 하나님이 처음부터 구조적으로 허락한 길이다. 어떤 점에서 겸손이 최고의 덕인가?

첫째, 여호와 경외심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하여 하나님과 구분 없이 안하무인식으로사는 것은 빛을 바래 옷과 같습니다. 교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결코 생겨지지 않습니다.

둘째, 참된 지혜가 나오는 출처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혜란 모든 생활방면에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가리킵니다. 교만은 “자기, 자기” 하다가 제대로 꽃 하나 피어보지 못하고 눈 녹듯이 사라지게 합니다.

셋째, 피조물의 존귀함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이 피조물의 면류관임을 아는 자는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신분을 잘 알아 언제어디서나 겸손 일관하여 약속된 영광을 누리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의 주권(잠16:1-17) 찬23장

인생을 바르게 경영하려면 어떻게 해야합 니까? 첫째, 하나님이 바른 경영을 원하심을 알아야합니다. (15: 22,16:1) 바른 경영은 모 든 방면에 하나님의 경외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계획을 가리키며 철저하게 하나님 경륜 의 근거인 그의 사랑과 진리에 기초해야합니 다. 둘째, 사람이 무엇을 계획하여도 하나님 이 친히 이루심을 알아야합니다. (1) 그래서 우 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경영을 믿어야 합 니다. 로마서 8:28절에 보인대로 우리의 모 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경영을 통해 이루어가기 때문입니다.

아프카니스탄의 피랍된 분들에게도 하 나 님의 경영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들을 향하 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 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계획해도 하나님이 이루심을 믿는 우리는 그의 뜻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가야합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속 히 말씀을 보내어 주옵소서. 속히 구하소서.

겸손의 도 (잠16:18-33) 찬347장

겸손의 도를 가는 자란 어떤 자이며 겸손의 길을 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 겸손의 도를 가는 자란? 18-20절에 겸손에 대해 말하며 21-25절에는 지혜에 대해 말하기를 겸손이란 마음의 지혜로움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21) 겸손자란 지혜를 생명의 샘으로 삼는 자이며(22) 지식있는 입술를 가진 자이며(23) 양약과 꿀 송이와 같은 선한 말을 가진 자입니다.(23) 겸손이란 생명의 길이며(25) 여호와를 참으로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반응입니다.

둘째,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는 복이란?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이 넘어짐의 앞잡이라면 겸손한 마음은 성공의 선봉이요 겸손은 일어섬의 앞잡이라는 말입니다. 교만한 자의 정복(탈취물)보다 겸손한 마음이 더 복됩니다. 성령받은 신자는 성령의 인도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겸손이 도를 따릅시다.

마음의 연단(잠17:1-14) 찬441장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17: 3) 순수한 은금을 얻기 위해 그것을 도가니와 풀무에 넣어 불순물을 제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여호와은 경외하는 자를 마음 의 연단을 위해 반드시 고난의 구덩이에 넣 으십니다. 그 고난을 통해 진정한 경외 신앙 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고난이 자기에게 유익된 것은 고난당하기 전 그릇 행한 것이 고난 후 바른 길로 가기 때문이라 고 했습니다.

욥의 애매한 고난은 그를 정금처럼 만드 는 기간이었고 요셉이 당한 고난은 그를 통 해 하나님나라를 이루는데 기여하는 도구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고난이 허락됩니다. 연단을 받게 하려는 것이지요. 일부러 고난의 구덩이 에 들어가는 금욕주의는 비성경적이지만 주 를 위해 받는 섭리적 고난은 어떤 것이든 우 리를 반드시 변화시킵니다.

마음의 즐거움(잠17:15-28) 찬427장

신자가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가정과 사회를 적극적으로 지키는 일임을 본문은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가정생활에서 지혜자의 삶이 나타나야합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며 아비는 자식의 영화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본으로서 제자화된 모숩입니다. 신앙의 본으로서의 부모 역할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둘째, 사회생활에도 공의를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재판할 때 의를 세움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15,23,26)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이유는 그의 권속들이 모두 공도와 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여전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셋째, 가정과 사회에서의 의의 생활은 마음에서 나오는 열매이기 때문에 마음의 즐거움을 간직하는 것이 우선되어야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만이 성령의 기쁨으로 츙만하여 모든 생활에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세울 수 있습니다.

거룩한 덕담 (잠18:1-12) 찬431장

남에게 덕 되는 말이 신자생활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떻게 덕을 미칩니까?

첫째, 자기를 살펴야합니다. 언어생활의 불결을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한 이사야가 맛본 최초의 체험이었습니다.(사6:5) 자기의 마음상태가 말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으로 고르게 해야합니다. 말씀의 점검으로 여과를 거쳐 분별있는 말을 해야합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하지 말고 감사하는 말을 해야합니다.(엡5:3) 그러자면 말씀 묵상이 없이 불가능합니다. 셋째, 덕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최고의 덕담은 복음을 말하고 복음 생활을 격려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선덕사로 부루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벧전2:9)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받은 위로와 권면과 책망을 우리 형제에게 그대로 해야합니다.

여호와의 뜻(잠19:15-29) 찬499장

잠언의 다양한 내용은 마치 잘 짜여진 옷 감처럼 하나님의 경외하심을 중심하여 사랑 과 공의와 진실과 공평이 모든 방면에 조화 를 이루어 나타납니다. 자녀교육, 가정생활 사회생활 전반에 하나님 경외 신앙이 표현되 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령은 21절 에 사람이 많은 계획을 세워도 여호와의 뜻 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확증하십니다. 이 말은 계획을 세울 때 여호와 경외하는 신앙을 중 심한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고 사람이 아무리 요란한 주장을 해도 결국 하나님의 뜻이 견 고히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온, 모든 일, 모든 사건은 아무리 요동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뿐임을 믿고 현실을 그 분의 때에 맞추어 조심해서 사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그에게 참 평안이 있고 인생의 살맛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롬8:28)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의와 진실이 언행심사에 나타나기를 구합시다. “주여 내 게 성령의 능력을 부으셔서 주의 성품이 드 러나게 하소서.”

술 취함의 교훈(잠20:1-15) 찬177장

성경은 포도주를 약(딤전5:23)으로는 허용하지만 술취함은 엄격하게 금합니다. 술에 인박이지 않는 자를 집사로 세우라고 했고 술은 마음이 곤고한 자의 것이기에 왕은 금해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잠언에서는 어떤 교훈을 줍니까?

첫째, 술 취하는 것은 사람을 거만하게 하고 떠들게 하기에 거기 유혹된 자는 지혜가 없다고 말합니다. 마음은 그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힐 때 겸손하게 됩니다.

둘째, 술 취하는 것은 하나님 예배의 지혜를 둔하게 합니다. 술 취함으로 다른 불로 제사 드리다가 죽임 당한 나답, 아비후의 경우를 생각할 때 신약 제사장인 신자는 더욱 더술 취함을 금해야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 바른 정신으로 감격스럽게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엡5:18) 여호와 경외 신앙자는 성령 은혜에 취해 사는 매력있는 사람입니다.

입술의 열매 (18:13-24) 찬177장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21-22) 언어 사용은 하나님 형상 중 중요한 기능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말씀을 받아 말하는 사람을 만들어 자신의 뜻을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은 어떤 성격을 갖습니까? 첫째, 생사가 말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생사를 가늠하는 복음을 말로 전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방법입니다. 말로 전도하게 하시고 말로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약한 입술이 바른 말을 전하는 거룩한 도구가 되게 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이 말로 표현된다고 했습니다. 심령이 병을 이긴다는 말씀대로(14) 하나님 말씀에 이끌린 마음에서 나온 말이 자기도 치료하고 이웃도 치료합니다. 보혈로 씻음 받은 정결한 마음에서 덕을 세우는 말이 되게 해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묵상할 때 성령 충만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약속된 성령 부으심은 말의 은사인 예언으로 표현되었습니다.(행2:17) 성령에 이끌린 말을 하기위해 말씀을 묵상합시다.

용서생활(잠19:1-14) 찬343장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자의 영광이니라”(11)

일상에서의 용서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첫째, 분노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치 않는 마음은 용수철처럼 솟아올라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이 먼저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성냄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기에 야고보는 성내기를 더디하라고 가르칩니다.(약1:19) 둘째, 여호와 경외 신앙을 힘써야합니다. 이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문제를 생각하기 때문에 손해라도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합니다.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을 진 사람이기 때문에 백 데나리온의 빚을 용서 못한다면 배은망덕 하는 죄를 범하는 셈이 됩니다, 셋째, 용서는 더 큰 용서의 영광을 얻게 합니다. 신자는 용서받은 죄인이기에 한없이 용서할 처지에 있습니다. 여기에 풍성한 은혜가 따릅니다. 긍휼이 심판을 이깁니다.(약2:13)

영혼의 등불(잠20:16-30) 찬96장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 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잠20:27)

사람들이 영혼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하나님 외에 영혼 문제를 결코 다룰 수가 없습니다. 영혼이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영혼을 마음, 영, 속사람 등으로 달리 표현하면서 영혼을 살피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개역 성경에는 이 영혼을 하나님의 등불이라고 하지만 NIV역에는 하나님이 영혼을 찾으시는 것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영혼을 사람의 몸을 밝히는 눈으로 비유하면서 눈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집중하면 어두워 질 수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마6:22-24) 다윗은 주의 말씀을 발의 등이요 빛임을 알고 밝은 영혼을 가지려면 말씀의 빛 안에 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119:105)하나님 앞에 사는 자만이 밝은 영혼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날마다 자기 영혼을 말씀의 빛 앞에 정직히 서서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 것에 최우선권을 둘때 밝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살자 (잠21:1-14) 찬202장

잠언에 나온 교훈은 지도자를 교훈하는 내용이 많은 곳은 실제적 정치 지도자들을 가르치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안에서 왕권을 가진 신자들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가르치는 면이 더 강합니다. 첫째,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습니다. 터진 봇물처럼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권세가 있으나 여호와 경외하는 왕은 바른 왕권을 행사하여 참 자유와 형통을 체험합니다. 진리가 있는 것에만 참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방종하기 쉬운 권력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신자가 걸어야할 길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통제되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공부나 일이나 사역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위해 항상 만왕의 왕의 심판대 앞에 서는 두려움으로 임해야합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잠21:15-33) 찬260장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본문에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첫째, 의인은 의를 즐거워하지만 죄인은 불의를 기뻐합니다.(15) 의인은 공의를 즐거움으로 삼아 흥왕을 체험하지만 악인은 불의를 즐기다가 마침내 저주를 받습니다. 911테러 같은 멸망이 홀연히 찾아옵니다. 둘째,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 안에 거합니다.(16) 악인의 회중과 의인의 회중이 있는데 의인은 아버지 안에서 영원히 살지만 악인은 망합니다.(시1:6) 교회는 성령의 조명 안에 살기를 힘쓰는 밝은 회중입니다. 셋째, 일락을 사랑하는 자는 망합니다. 연락, 술, 그리고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는 말씀(17)은 육적 쾌락에 심취한 자의 위험함을 경계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대로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말씀과 통합니다. 경외 신앙을 가진 의인의 보장받는 길을 걸어갑시다.

미련에서 벗어나라(잠27:14-21) 찬82장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 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14)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것은 적응성을 간 과한 무의미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돼지는 진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 은 것이라도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을 때 복 을 저주로 취급하여 복의 존엄성을 해치게 됩니다. 때에 맞는 말을 할 줄 아는 지혜의 부족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취급될 때가 많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 방인에게 이방인처럼 접근하여 복음의 가치 를 알게 하는 지혜로운 행동이 따라야합니다. 상황에 맞는 축원이 되지 않으면 오해하여 도리어 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축복 하는 일이라도 아침에 큰 소리는 경우에 맞 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는 작은 소리로 축 원하는 적응성있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 다. 진리의 도는 폭탄 터뜨리는 방식보다 때에 맞는 유익을 주려는 배려에 진지함으로 걷는 길입니다. 미련에서 벗어나 지혜의 길을 걸읍시다.

바른 일꾼 (잠22:1-16) 찬517장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 경외신앙은 교육을 통해 전수됨을 본문이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마땅히 행할 길 곧 성경을 가르쳐 배우고 확신에 거하게 해야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중심하기 때문에 성경 교육으로만그리스도를 닮게 합니다. 둘째,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영이요 생명인 말씀은 교훈, 책망, 바르게 함, 그리고 의로 교육함으로 표현됩니다. (딤후3:16) 정보 전달만이 아니라 현실에 맞도록 본을 보이면서 적응시켜야합니다. 셋째, 아이 때에 가르쳐야 했습니다. 영육의 유치기에 말씀의 틀을 잡고 말씀으로 양육함이 지혜입니다. 그 결과는 장래에 진리를 떠나지 않게 됩니다.

나 자신이 먼저 성경을 깨닫고 본을 보이며 나갈 때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바른 일꾼이 됩시다.

온전한 지혜생활 (잠22:17-29) 379장

지혜자의 생활이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 지혜자의 말씀과 지식은 여호와 경외신앙을 가리키며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지혜의 가르침은 개인적 형태로 나타나기를 “지혜와 나(일인칭)”의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제자도의 방법은 항상 이런 것입니다. 말씀이 개인의 마음에 보존되고 입술로 표현될 때 아름다움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르침, 기록, 그리고 말씀의 깨달음을 통해 진리에 응답해야합니다. 지혜의 생활은 기록된 말씀에 착념하여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생활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노와 울분을 품은 자와 동행하지 말라는 이유는 행위의 분을 따름으로 영혼이 올무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산업에도 말씀을 적용하는 일에 근실한 사람이 존귀하게 됩니다.

셋째,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지혜의 삶은 약한 자를 압제하지 말고 돌보는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소자를 하나님이 신원하시기 때문입니다.(20-21) 이것이 참 경건입니다.(약1:27)

탐욕(잠23:1-14) 찬328장

모든 죄악의 뿌리인 탐욕을 이김은 마귀를 이기는 길이며 큰 용사보다 더 낫습니다. 어떻게 탐욕을 이길 수 있습니까?

첫째, 탐욕이 헛됨을 알아야합니다. 탐욕은 칼을 목에 둔 것과 같고(1-3) 마침내 모든 것을 토하게 되어있습니다.(6-8) 바벨탑이 무너지듯 탐욕의 마지막은 허사입니다. 둘째, 탐욕을 경계하고 불로소득을 조심해야합니다. 쉽게 되는 것보다 진실한 수고를 통해 진실한 열매를 얻으려는 것이 진리의 길입니다. 마귀의 술책은 값없이 받은 은혜를 수고 없이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셋째, 적극적 방법으로는 재물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지며(4-5) 소자에 대한 사랑을 가지며(10-11) 훈계에 착념해야합니다. (11-12) 그래서 바울은 바른 교훈에 착념치 않으면 저절로 교만하여 부패한 마음이 되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탐욕을 좇아가도록 되어있다고 말한 것입니다.(딤전6:3) 육체 소욕의 정체가 탐욕이기 때문에 주님을 모든 영역에서 주로 인정하는 삶만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탐욕과 싸우는 참 용사의 길을 걸읍시다.

아굴의 잠언(잠30:1-17) 찬405장

아굴은 어떤 점에서 우리가 배울 경건의 본입니까?

첫째, 그는 계시를 아는 자였기 때문입니다.(5-6) 말씀의 순수성, 명백성, 구원성, 권위성을 확신하는 건전한 성경관을 소유한, 하나님 아는 자였습니다. 마치 개혁자들의 성경관을 그림으로 보는 것 같고 성경체험주의자의 샘풀을 보는 것같아 가슴이 뭉클합니다. 둘째,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7-9) 그리스도인의 자아상과 진실한 삶과 균형있는 삶(빌4:13)을 평생 소원으로 삼았습니다. 주기도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신 주님의 정신과 통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제일로 삼은 본입니다. 셋째, 그는 불효하는 무리, 교만한 무리, 탐심의 무리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11-17) 거짓과 탐욕을 경계하는 그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보여줍니다.

바울 신앙을 생각케 하는 그 신앙은 동일한 성령의 역사로 생긴 것입니다. 아굴의 확신으로 살아갑시다.

악인의 형통(잠24:1-22) 찬403장

하박국 선지자나 시편 37편의 시인처럼 악인의 번성으로 생긴 갈등에 관해 잠언은 어떻게 가르칩니까?

첫째, 악인의 형통은 장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1) 악의 번성과 배은망덕자의 형통은 일시적입니다. 믿지 않는 자의 모든 형통이 무너지는 까닭은 좁은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넓은 길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길이기에 그 마지막은 사망이고 멸망입니다.

둘째, 시기하며 괴로워하여 죄를 범하지 말라고 경계합니다.(19-20) 자기 집을 지혜로 세우기를 힘써야합니다.(3) 이 말은 말씀과 기도의 세계로 들어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라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자리이며 부스러기 은혜라도 세상 최고의 부요가 부럽지 않는 확신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소자들을 건지려고 노력해야합니다. 하나님만을 믿는 의인은 이웃 소자들의 필요를 채우려고 힘쓰는 사람입니다. 사슴의 발처럼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합3:19)

맞는 삶 (잠24:23-34) 찬88장

아로새긴 은장반의 금사과처럼 지혜의 삶은 모든 방면에 꼭 맞는 생활입니다. 셋방면에 그러해야합니다.

첫째, 판단의 적응성이 있어야합니다. 외모보다 중심을 보고 판단하며(23-25) 적절한 말과 적절한 일의 균형을 잘 분별하는 지혜를 갖는 것입니다. 둘째, 원수에 대한 적응성을 가져야합니다. 상황이 극에 달할 때 적응성을 잃기 쉽습니다. (28-29) 원수를 대할 때도 복수률을 따르지 않고 그를 축복하고 용서함으로 더 높은 차원의 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용서의 기도는 초대 교회에 부흥의 불을 붙였으며 그를 죽이던 사울이 사도가 되는 기적이 생긴 것입니다. 셋째, 환경의 적응성을 가져야합니다. 게으른 자의 환경을 보고서도 교훈을 얻는 것이 지혜자입니다. (30-34) 실로암 망대가 무너질 때 지혜자는 악을 두려워하여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17-18) 복음의 길을 성실히 걸어 문제를 복으로 바꾸는 꼭 맞는 삶을 살아갑시다.

슬기자의 처신(잠25:1-14) 찬376장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개인의 마음을 통과할 때 효과있는 열매가 나타납니다. 어떤 방면에 효과가 나타납니까?

첫째, 왕적 다스림에 나타납니다.(2-5) 일을 살피고 꿈과 높은 마음을 소유하며 의로 견고하게 하려합니다. 남을 다스리는 자의 일차적인 일은 자기 마음을 말씀에게 양도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둘째, 합당한 삶에 나타납니다.(11-13) 경우에 합당한 말, 슬기로운 자의 책망 충성된 사자는 모두 마음이 말씀의 지배를 받을 때 나타난 결과입니다. 지혜자는 세상의 얄팍한 체세술을 능가한 경건한 처세술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인격에 까지 그 영력으로 무장하여 그 힘이 나타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경건의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가정 예배시간을 이런 현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의인의 혀(잠25:15-28) 찬 43장

여호와 경외하는 의인의 혀는 세 가지 방면의 특징을 갖습니다.

첫째, 겸손의 혀를 갖습니다. 마음에 크신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자연히 겸손하여 인내하며 부드러운 말을 갖습니다.(15,23) 겸손과 인내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조급한 말 때문에 손해 보는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겸손한 말을 배워야합니다.

둘째, 진실의 혀를 갖습니다. 거짓증거와 거짓을 의뢰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하는 진실의 혀로 나타납니다. (18,19) 솔직한 말도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면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진실의 영의 기록인 진실의 말씀을 진실로 사랑하여 진실한 말만해야 합니다.

셋째, 화목의 혀를 갖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화목의 언어입니다.(20,21,24) 경제적풍요를 맛볼 때 방종하기 쉬운 우리의 마음에 항상 은혜 받는 일에 힘씀으로 은혜로 고르게 하는 말, 곧 겸손, 진실, 그리고 화평의 언어생활을 해야합니다.

묵시가 없으면(잠29:15-27) 찬241장

묵시란 다른 말로 계시입니다. 계시란 하나님이 베일을 벗겨 열어 보여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믿음과 행함을 포함하는 율법, 곧 성문화된 계시가 바로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할 일을 알게 되니까 규모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계시를 모르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첫째, 영적 어두운 삶을 살게 됩니다. 계시는 명료하고 충족하며 구원 능력과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묵시를 모르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영치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둘째, 묵시가 없으면 방종하게 됩니다. 이유는 기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징계할 때도 임의로 하다가 빗나가고 개인 삶에도 임의로 판단함으로 교만으로 치우쳐 육체 소욕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특별계시인 성경 앞에 바로 서서 성령의 밝히시는 은혜로 항상 계시가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갑시다.

언덕사 (잠26:17-28) 찬337장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온전한 자라는 야고보의 말대로 입술에 파수군을 세운 자로 살아가야합니다. 이것은 말에 덕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인데 어떻게 덕있는 말을 할까요?

첫째,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다툼을 간섭하거나(17) 희롱하거나(18-19 남의 말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교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가난한 심령이 있을 때 온유한 말이 나옵니다. (23-27)

둘째, 성령 안의 기도생활을 힘써야합니다. 거짓말(28)과 아첨의 말(28)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진실한 기도의 언어를 배워야합니다.

셋째, 덕 위주의 삶을 힘써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양약과 칼과 몽둥이 그리고 불이 된 것처럼 그 말씀을 받은 우리의 마음도

이웃을 고치고 치료하는 말을 해야합니다.

선교사이기 전에 선덕사가 되어야하며 선덕사가 되려면 언덕사가 되어야 합니다.

현실에 충실한 삶(잠27:1-13) 찬383장

어떻게 신자는 미래보다 현실에 더 충실할 수 있나요? 첫째, 현재를 겸손히 살아야합니다. (1-2) 안개와 같고 풀과 같은 인생은 신속히 지나갑니다. 그 다음은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날의 괴로움을 그날로 족히 여기고 지금 있는 그 자리부터 겸손히 살아가야합니다. 둘째, 작은 육적욕망을 제해야합니다. 분노와 투기는 현재의 충성을 저하시킵니다.(3-4) 하나님 앞에서 내게 주어진 몫을 감당하는 지혜자가 되어야합니다. 셋째, 현재의 책망을 잘 받아야합니다.(5-6) 사랑의 면책과 친구의 권고를 잘 받을 줄 알아야합니다.(5-6, 9)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책망을 잘 받을 때 양약을 체험합니다.

비죤이란 명목아래 현실을 등한히 여기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지극히 작은 일에 성실함을 지켜 나가는 지혜자가 됩시다.

작은 일에 성실하자 (잠27:22-27) 찬381장

전원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본문은 작은 일에 성실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줍니 다.

첫째, 먼 곳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가 까운 곳에 있습니다. 면류관과 재물에 마음을 두기보다 현재 자기 일과 자기 양떼와 소떼 에 마음을 두고 작은 일에 성실 할 때 큰 것 을 받으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미련한 자는 항상 미래와 과거에 마음을 두 지만 지혜자는 철저히 현실을 살핍니다. 둘 째,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삶은 아무리 머 리를 짜내어도 미련할 뿐입니다. 미련은 절구 속에 넣고 찧어도 벗겨지지 않는다는 잠언은 땅 끝에 가있는 미련한 마음의 결과를 보인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식구부터 성실하게 믿음으로 돌보며, 아침마다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 생활에 성실함으로 마음의 샘에서 생수 가 터지게 해야합니다.

의인의 담력 (잠28:1-18) 찬421장

의인으로 인정받아 의를 이룸에 부름받은 신자는 사자 같은 담력을 가져야합니다.(1) 세상이 매우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지역의 부흥을 위해 맹수 같은 거짓 교훈과 싸웠다고 고백합니다. (고전15:32) 어떻게 담력을 가질 수 있나요? 첫째, 하나님의 보호의식 때문에 담대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좇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가는 두려움이 있는 까닭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의식에 잡혔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골리앗 앞에서의 담력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둘째, 성령이 지배하는 임마누엘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으로 되어집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는 바울은 성령의 위로와 능력으로 굴하지 않고 도리어 그 환경을 복된 역사로 바꾸는 담력을 가지고 일한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약속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해 나의 할 일은 내 마음이 하나님 말씀에 붙어있는 것뿐입니다.

구제의 삶 (잠28:19-28) 찬410장

잠언의 가르침을 복음의 삶의 다양한 방면을 보는 시각을 가져야합니다. 잠언의 여호와 경외 신앙은 복음 안에서만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그 중 이웃 구제에 관해 어떻게 말합니까?

첫째,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이 자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길입니다.(27) 가난한 자란 영육간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복음을 알게 하고 누리게 하는 것이 구제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둘째, 바른 구제란 하나님 앞에서 하며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께 빌려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풍성하도록 갚아주십니다. 긍휼이 심판을 이깁니다.(약2:13) 세째, 구제에 무관심한 자에게 저주가 많이 임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소자를 도우라고 맡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제 목표로 움직이는 삶은 결국 자기를 관리하는 최상의 길 중 하나입니다.

소자를 섬기는 사람(잠29:1-14) 찬216장

여러 관계 생활에서 복된 길을 보여주는 본문은 소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라고 가르칩니다.

첫째, 13절에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아도 하나님의 자비는 한결같으심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일반은혜 속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가난한자로 표현된 신자에게는 악인이 갖지 못하는 특별한 은혜가 따릅니다. 거듭남과 죄사함과 영생을 소유 하는 자는 선택된 자기 백성에게 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자라지만 마침내 선악 간 심판을 받습니다. 섞여있는 동안 악인을 옳은 대로 돌이키려는 수고를 하는 것이 신자의 사명입니다. 둘째, 14절에 왕이 소자를 신원할 때 권위가 세워짐을 가르칩니다. 소자를 무시함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마음은 언제나 가난한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 소자가 용납되도록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낮은 마음으로 살 때 영권이 세워집니다. 진정한 리더쉽은 소자 섬기는 마음 위에 주어집니다.

여호와 경외신앙 (잠23:15-35) 찬394장

악인이 잘됨을 보고 마음에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신앙생활에 흔히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이 갈등은 하박국 선지자도 그랬고 (합3:13-17) 시편기자도 그리했습니다.(시73:) 이때 마음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 큰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잠언의 지혜는 어떻게 하라고 말합니까?

첫째,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실상에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성소에 들어가서야 미끄러운 가운데 두어 졸지에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았기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둘째,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하십니다.(17) 하박국 선지자가 경험한 갈등문제는 하나님이 밝혀줄 때 깨달았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변에 아무 것이 없어도 오직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경외신앙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은 악인이 모르는 신령한 세계를 보며 사슴의 발처럼 모든 문제의 산들을 밟고 다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미련의 죄 (잠26:1-16) 찬337장

일정한 견해가 없는 어리석음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미련함이란 철면피와 같이 악에 연단되어 고정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왜 미련한 삶을 경계해야합니까?

첫째, 미련은 망령된 행동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름에 눈 오는 것이나 추수 때 비가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풍성하고 놀라운 은혜의 가치를 모르고 쉽게 배반합니다. 한 그릇 음식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해 버림당하였습니다. 둘째, 미련은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기 때문입니다.(3) 말에는 채찍이 필요하듯이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가 따른다고 한 것이 그 뜻입니다. 영적 미련은 하나님 은혜를 대적하는 디오드레베의 죄를 법케 만듭니다.(요삼1:9-10)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성령의 길을 막는 분쟁주의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미련은 영적 나태로 나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13-15) 세상일에는 부지런하면서 영적 일에 게으른 자는 소심하여 일을 만들며 불로소득을 좋아하는 육적 근심에 빠지게 됩니다. 성령받은 신자는 근면한 사람입니다.

자연을 통한 잠언(잠30:18-33) 찬40장

일반은총인 자연은 죄로 인해 어두워졌지만 복음 안에서 회복됨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로가 효력을 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괴로워하는 욥에게 자연 만물의 운행을 통해 교훈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어떤 교훈입니까?

첫째, 바위 위를 지나간 뱀의 자취, 배의 자취, 음녀의 자취, 남녀관계의 자취를 들어 은밀한 죄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세상 진동시키는 4가지 즉 종이 임금된 것 ,미련 자가 배부른 것, 꺼림 받은 계집이 시집 간 것, 계집종이 주모된 것을 통해 겸손한 마음의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셋째, 작은 것으로 지혜로운 생물 곧 개미 사반, 메뚜기, 도마뱀을 통해 작은 일에 충성할 것을 가리치며 위풍 있는 것들 곧 사자, 사냥개, 수 염소, 왕을 통해 여호와 경외하는 자의 담력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만물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진리를 배웁시다.

여호와 경외하는 여자 (잠31:1-31)

현숙한 여인을 그리스도 자신, 그리스도인, 가정의 여인들로 보는 세 견해가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란?

첫째, 남편에게 인정을 받는다 (11-12).

남편이 칭찬한다.(28) 남편이 그를 믿는다.(11,23) 남편의 기를 세워준다.(12) 남편에게 선을 행한다. 진주보다 더하니 – 여인들은 진주보다 귀하다. 여자들은 가정에서 진주와 보석이 되라. 새로운 일에 도전하라.

둘째, 덕이 많습니다 (20).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이다. 가난한 자를 돕는다. 부지런하였다 (13-19) 주는 자의 축복의 비결을 아는 자이다.

셋째, 하늘 지혜가 있습니다 (26). 인애와 지혜가 입에 있었다. 능력과 존귀로 옷을 입었다. (25) 성경묵상을 통해 배우자. 기도를 통하여 임하는 열매이다.

에스라와 함께 가정예배

성령이 하시는 일 (스1:1-11) 찬404장

에스라는 출 바벨론 시대에 쓰임 받은 선지자이며 율법학자로서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그 안에서 어떤 성령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까?

첫째, 친히 시작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봅니다. 예례미야를 통해 예언한 대로 때가 되자 이방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성전건축을 명하신 것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으로 시작됩니다. 우리 속의 착한 일을 시작하신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반드시 이루십니다. (빌1:6) 둘째, 성령의 사람을 일으키십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 하여 사람과 계획이 없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에스라처럼 성령의 사람과 성전을 건축하려는 감동받은 자를 통해 일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5) 셋째, 참 성전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십니다. 그 일을 위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나가야 합니다. 신자의 마음은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임재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고전3:16)

준비된 일꾼 (스2:1-54) 찬382장

성전을 건축하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준비되었습니다. 본문은 어떤 준비된 자들을 보여줍니까?

첫째, 이민 1세 후예들을 준비하셨습니다.(1-2) 영적 지도자인 스룹바벨, 느헤미야, 에스라 등은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그대로 믿는 자들이 귀합니다.

둘째, 노래하는 자를 준비하셨습니다.(41) 하나님 백성의 중심인 예배를 돕는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에서 이삭 대신 수양을 드린 것처럼 신령과 진리로 찬양하는 준비된 일꾼이 되어야합니다. 셋째, 문지기를 준비하셨습니다.(42) 성전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 목자와 동방박사를 준비한 것처럼 주님은 자신이 친히 준비된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교회를 세우심에도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십니다. 준비된 자라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거룩한 것을 쓰신다 (스2:55-70) 찬355장

혼란 속일지라도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성결한 것을 쓰시는 분이심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바르실래는 부정을 우려하여 보계가 분명치 않은 자에게 제사장 일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까지 지성물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62-63) 하나님은 올 곧은 신앙의 사람을 쓰십니다. 둘째, 성전 건축을 위해 바쳐진 헌물을 곡간에 보관하는 일꾼을 준비하셨습니다.(69) 바치는 시작과 바쳐진 것이 제대로 사용되기까지 철저히 거룩을 원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도 성결한 사람과 방법으로 한 것만을 주님이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거룩이 강조되어 언제나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즐거움으로 자원하여 구별해 드리는 마음을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항상 거룩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과하야 합니다.

제단수축 (스3:1-13) 찬212장

4만여 명의 동원으로 성전건축을 할 때 먼저 제단을 회복하여 번제를 드림은 일의 성취가 바로 되었음을 증거합니다. 어떤 재건이었나요?

첫째, 말씀을 따르는 재건입니다. 모세 율법대로 말씀이 회복되었습니다. 성전(교회)의 기반이 말씀이기에 (엡2:20)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둘째, 제단이 회복되었습니다. 말씀위에 세워진 것은 예배의 회복에서 나타나야하기 때문입니다. 신령과 진리의 예배가 회복될 때 참 부흥이 일어납니다. 제단을 만들고 번제와 화목제와 절기의 번제를 드린 것이 바론 이런 원리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셋째, 선행의 회복입니다. 수직의 회복은 수평 회복으로 나가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여 받은 은혜로 인하여 통곡하며 즐거워하는 소리는 성령이 주시는 열매이며 은혜 통로가 뚫리는 순간입니다. 이삭 우물 속에 찌꺼기를 제하는 것처럼 (창26:12-22) 무너진 가정 제단을 수축합시다.

감당할 시험 (스6:1-12) 찬434장

거민들의 고소로 성전재건이 중단될 것처럼 보였지만 감당할 시험만 주시는 하나님은 주의 일을 더 흥왕케 하셨습니다. 본문에 어떤 증거가 보여집니까?

첫째, 다리오 왕이 왕실의 권위로 그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1-5) 왕이 조서를 내려 성전을 건축하게하고 성전기구를 제자리에 갖다 놓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왕을 움직여서라도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둘째, 경고와 위로의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11-12) 건축이 완공되기까지 경비를 책임지고 제사에 필요한 물품까지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방해는 자에게는 엄중한 벌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신자 앞에 놓인 장애물은 더 큰 은혜를 주실 하나님의 뜻이 숨겨있습니다. 감당할 시험과 피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시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합시다. (고전10:13) 장기적인 불경기로 고생하는 현실 역시, 자기 백성은 반드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집시다.

준비된 사람 (스7:1-10) 찬402장

진정한 성전 건축은 외면보다 내면에 이루어져야합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내실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변화가 우리가 지향할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준비된 에스라는 누구입니까? 첫째, 그는 아론의 16대 손입니다.(5) 그의 조상 비느하스는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의의 한 행동으로 전 이스라엘의 역병을 중지시켰습니다. 그의 의로운 행동을 통해 하나님은 구속역사의 그릇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둘째. 그는 율법에 수고한 사람입니다.(10)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지식적, 체험적으로 깨달은 사람입니다.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기를 결단한 그의 마음이 귀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은혜를 크게 받은 증거입니다. 셋째, 자신부터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전, 먼저 자신부터 말씀을 순종하려는 그의 작정은 준비된 제물이었음을 증거합니다. 그를 본받읍시다.

한 사람의 불쏘시개 (스7:11-28) 찬173장

한 사람의 결심은 대단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에스라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기 위해 힘쓸 때 하나님은 모든 정치권과 경제권을 동원하며 그 일은 자유롭게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첫째, 아닥사스다를 움직여 철저한 보호를 받게 하셨고 필요한 것을 다 공급받아 개혁이 완성될 때까지 붙드셨습니다.(11-22)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는 반드시 모든 것을 더하시는 약속을 체험하게 됩니다.(마6:33) 둘째, 말씀에 대한 한사람의 헌신의 결단이 위대합니다. 진정한 성전건축인 영적 개혁의 불쏘시게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습니다. 작은 불꽃이 온산을 태우듯이 내 중심에 있는 말씀의 불은 온 세계를 태울 수 있습니다. 부흥의 불쏘시개로 살아갑시다.

예배의 개혁 (스8:1-20) 찬177장

에스라는 시작부터 말씀에 대한 헌신 뿐 아니라 제사에 대한 헌신에도 집중했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말씀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인데 그 특징은 예배자를 만든 것입니다. (마28:19-20) 교회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그를 영원히 즐기는 일 곧,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에 치중해야합니다.

그런데 이 귀한 일에 일할 제사장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 에스라는 3일 동안 자기 백성들을 살펴 합당한 자를 찾아서 그 일을 맡겼습니다. 레위인은 없지만 그와 관련된 명철자들을 찾아 섬기게 했습니다. (16-19) 그 후 에스라는 금식을 선포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21) 아무리 악조건일지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하고자 할 때 장소와 방법보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4:23)

변화의 결단(스10:1-15) 찬414장

요한복음 4장에 나온 사마리아 여인의 불행한 결혼생활이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달라진 것처럼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는 결단은 전인에 영향을 미칩니다. 본문은 이방여인과 사는 자들의 생활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말씀개혁, 제사개혁 그리고 결혼생활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첫째, 에스라 속에 불타는 개혁 의지를 통해 일어났습니다. 한 영적 지도자의 소명에 대한 신실함은 온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도구입니다. 둘째, 백성의 중심에 생긴 순종의 결단이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법궤를 조용히 따르던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체험을 한 것처럼 말씀을 순종하는 무리들을 통해 악한 세상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의 역사가 개혁의 핵입니다. 성령만이 개혁과 부흥의 주체이십니다. 다른 보혜사로 임하신 그 분은 개혁을 위해 세상에 보내심 받은 일곱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영적 변화를 위하여 나 한 사람 부터 십자가 지는 결단을 가집시다.

진정한 회개(스10:16-44) 찬417장

에스라 가까이 있는 중직들이 더 큰 죄를 범한 사실에서 우리는 진정한 회개를 알게 됩니다. 무엇이 회개입니까?

첫째, 시간 내어 자기를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4개월간 가족중심으로 하나씩 점검했습니다. 회개는 생명의 역사가 직접 일어나는 스파크와 같습니다. 정성을 다해 총집중하여 자기 죄를 살피는 자에게 반드시 소망의 길이 열립니다. 둘째, 가까이 섬기는 자를 살폈습니다. 인정을 초월하여 예배의 책임을 진 성가대와 제사장들을 살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정직히 서는 행동이 언제나 강조되어야합니다. 셋째, 기록을 남겼습니다. 철저한 회개 용단과 말씀순종의 용단이 회개의 용단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생명책과 기념 책에 기록된 것이어야 합니다. 이생의 자랑을 벗어나기 위하여 현실의 기적보다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는 기쁨을 항상 귀하게 여깁시다.

이사야와 함께하는 가정예배

하나님의 탄식(사1:1-17) 찬317장

구약 복음기자로 일컫는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자상하게 보여줍니다. 초두부터 이스라엘의 배은망덕한 죄에 대한 선지자의 탄식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합니까?

첫째, 배은망덕의 죄는 신지식과 관계된다는 사실입니다.(2-4) 양육 받은 자식이 은혜를 잊고 거역한 짐승보다 못한 그들의 죄는 하나님 아는 일에 힘쓰지 않을 때 생긴 것입니다. 문을 열어 놓으시고 지금도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 외식의 죄는 기도응답을 가로 막습니다.(12) 그렇게 정성스러운 제물을 가져왔으나 경외신앙을 상실은 그들은 성전마당만을 밟는 외식에 떨어졌기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진실위주의 삶만이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일을 추구하며 그와의 교제를 힘쓰는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이 뱀독 같은 무정한 세상에서 진정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료책(사1:18-31) 찬187장

불 경건, 외식, 배은망덕이 경건과 진실과 감사생활로 회복되려면 하나님의 치료를 받아야합니다. 어떻게 치료하셨습니까?

첫째, 소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주홍같고 진홍 같이 붉은 죄라도 눈과 양털처럼 정결케 됩니다. 아무리 막히고 도저히 치료될 수 없을 지라도 주께 나오면 소망이 생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만이 치료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요일1:9)

둘째, 주와 교제함으로 치료됩니다. “와서 변론하자”는 말은 교제하기 위하여 믿음과 순종의 자리로 오라는 초청입니다.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우리는 완전한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로서 그에게 부지런히 나갈 때 소망이 일어납니다.

말라기 예언대로 치료하는 광선이 발하는 이 시대에 의로운 태양이신 그리스도께 부르짖어 완전한 치료의 자리로 나갑시다.

말일에 일어난 구원(사2:1-22) 찬313장

이사야서에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강림이 예언되었습니다. 말일에 일어날 그리스도의 구원은(2-3) 어떻게 나타납니까?

첫째, 높은 곳에 우뚝 선 예루살렘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교회를 가리키며 만방이 거기로 몰려오며 온 땅을 진동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의 가정교사인 율법이 거기서 나옵니다. 이것은 복음 안에서 온 세상에 흩어진 자기 백성이 몰려 올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둘째, 그 빛 안에 사는 교회로 이루어집니다. 5절에 여호와의 빛 안에 거하는 교회는 주님만이 높아지고 우상이 철폐되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22) 성령 충만한, 진동치 않는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 세계 중심인 미국도 여러 이유로 흔들릴 수 있으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서 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 속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해야합니다.

말일의 징조(사3:1-12) 찬335장

유다의 심판 직전에 일어날 사건을 보인 본문은 복음 운동과 함께 일어날 어떤 징조를 보입니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 유다의 의뢰하는 것을 끊어 버린신다고 했습니다. (1-3) 양식, 물, 선지자, 용사, 전사를 제하심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영광의 눈을 촉범할지라도(8)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영광을 다른 것에게 뺏기지 않으십니다.

둘째, 지도력을 약하게 하십니다. 아이와 적자가 지도자가 되거나(4) 아이가 학대하는 일은(12)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증거입니다.

셋째, 의인과 악인의 기준은 믿음에 놓였습니다. 말일에는 복음의 빛이 더 밝히 드러나기 때문에 믿는 자와 불신자로 나누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말세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복음 노선을 따라 겸손히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심판의 조건(사3:13-4:1) 찬334장

심판징조인 우상숭배와 역리적 행동 외에 심판의 어떤 다른 조건을 볼 수 있습니까?

첫째, 지도자의 탐욕(13-15), 가난한 자를 짓밟고 불의로 치부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지도자는 언제나 주님의 마음을 가져 신령과 진리의 예배에 집중해야하지, 재물이나 명예를 따르지 말아야합니다. 언제나 탐욕의 올무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시온 딸의 교만(16), 모든 윤리적 죄는 교만에서 나옵니다. 교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데서 자연히 생깁니다. 결국 아담의 자율주의의 전철을 답습함으로서 중심 잃은 자동차처럼 엉뚱한 것에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리스도 중심하여 겸손으로 충만한 삶 곧 가난한 마음을 지키는 길뿐입니다.(마5:3) 이 일을 인도하기 위해 오신 성령님을 좇는 일에 힘씁시다.

정결케 하시는 분(사4:2-6) 찬190장

이번에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구원 핵심인 죄를 하나님이 친히 어떻게 해결하시는 가를 보였습니다.

첫째, 2절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란 그리스도가 구원의 싹으로 오심을 예고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자신만이 완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실 뿐 아니라 그의 공로로 자기 백성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로 그 완성을 은혜로 얻은 교회는 여호와의 싹이 돋아남으로 점점 아름다워 집니다. 내가 할 일은 그 안에 달라붙어 그리스도가 그 열매를 나타내시도록 겸손히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둘째, 4절에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시온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심은 성령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구속의 전주곡처럼 이사야 시대에 일하신 성령은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더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죄 많은 세상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은혜 위에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로 살아갑시다.

포도원의 노래(사5:1-12) 찬315장

유다의 죄악과 그 참상을 포도원관리로 비유한 이사야는 어떻게 회개할 것을 촉구했습니까?

첫째 비유의 초점, 포도원에 심겨진 극상품포도나무가 들 포도를 맺힌 점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1-2) 최상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최하의 열매를 맺혔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최고의 은혜를 받은 신자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힘써야합니다. 둘째, 비유해석, 3절에 보인대로 하나님과 예루살렘 간에 일연의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울타리와 담을 허시고 질려와 형극이 나게 하시고 구름을 명하여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3-6) 공평이 포악으로, 의로움이 부르짖음으로 나타났습니다. 탐욕과 황폐와 고독이 지배하며(8) 생산품이 없으며(10) 세상 연회에 빠져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게 되었습니다.(11-12) 육 주의로 나가는 사람의 결국은 이러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하여 영광스러운 약속을 확신합시다.

은혜의 양면성(사5:13-23) 찬332장

이사야서에도 인간의 전적부패와 불가항력적 은혜의 흐름이 그 바닥에 흘러갑니다. 인간은 부패로 연단되었으나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행사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이 진리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첫째, 하나님의 높으심,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고 거룩하고 의로우십니다.(16) 어린양 이 초장에서 먹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가난의 가치를자랑하고 현실의 부요가 주께로 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낮아짐을 자랑하는 자로 살아야합니다. (약1:9-10) 둘째, 인간의 전적 부패함, 거짓(19), 무분별(20), 교만(21), 그리고 탐욕(22)으로 충만한 유다의 비참은 복음의 빛 안에서만 소망이 있습니다. 흑암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런 진리를 아는 자리로 점점 나아갑니다. 그 기반을 분명히 함으로서 영적 풍성한 삶을 영위합시다.

말씀을 버릴 때(사5:24-30) 찬334장

만성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회복의 소망을 잃은 것처럼, 본문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의 원인과 그 결과를 보여줍니다.

첫째, 어떤 결과입니까? 24절에 근본적인 심판입니다.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킨 것같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치십니다.(25) 외적 침략을 당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평화가 임했으나 죄를 범함으로 따끔한 징계를 받았습니다. 둘째, 왜 그랬는가요? 생명의 근원인 율법과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24) 말씀과 인간의 성격상, 사람은 말씀에 푹 젖을 때 소망이 생깁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란 거기에 관심을 쏟고 집중하고 연합하여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진정한 복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버리면 광야 건조한 땅의 떨기나무처럼 영적 고독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른 교훈인 성경에 착념하는 성도가 됩시다.

성령의 비젼(사6:1-13) 찬355장

세상에서의 꿈은 보장을 받지 못하나 성령의 비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선지가 받은 비젼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고난을 당해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 볼 때 위로부터 임한 비젼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1-4) 날에 주를 바라보았을 때 기이한 은혜가 임했습니다. 둘째, 정결한 그릇 위에 임한 비젼입니다. 이사야의 체험은 마음의 변화였습니다. 그가 깨달은 입술로 범한 죄(롬3:13-18)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적용될 때 사해졌습니다. 정결한 그릇을 쓰시는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겸손히 살펴야합니다. 셋째, 분명한 비젼이었습니다.(9-10) 마음을 둔하게 하고 눈을 감기게 하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황폐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성령의 비젼을 따라 자기 정결에 힘씀으로 주께 쓰임 받읍시다.

임마누엘의 징조(사7:1-16) 찬342장

캄캄한 밤일수록 별빛이 더 빛나듯이 혼란한 시대일수록 하나님의 구원징표는 더 확실해 집니다. 아람과 합세한 북 이스라엘이 유다를 공격할 때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증표를 주셨습니다. (14)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성취되었고 하나님백성의 위로의 원천이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은 왜 신자에게 위로가 됩니까?

첫째, 모든 영적 싸움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발판입니다. 아하스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제껴두고 열방을 의지할 때 생긴 결과입니다. 둘째, 복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복의 내용을 요약하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거기 뻐터와 꿀의 풍성함이 있고 견고함이 있고 뻗어나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노란 자위 은혜를 받은 성도는 힘써 기도함으로 그 열매를 나타내야합니다.

심판하시는 지혜(사7:17-25) 찬337징

우리는 제한된 인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을 화로, 어두움을 빛으로, 그리고 악을 선으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안목을 가진다면 모든 일을 올바로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불신앙을 심판하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파리와 벌로 비유된 애굽과 앗스르를 불러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18) 둘째, 잔인한 앗스르의 침략으로 수치를 당케 하셨습니다.(20) 셋째, 그리고 황폐케 하셨습니다. 번성이 중단되고 포도나무 1000주에 질려와 가시가 나게 하심은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23)

의뢰하는 모든 것을 미리 끊어버리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나가는 것이 성령의 지혜입니다. (롐17:5-6) 그 길을 걸어갑시다.

임마누엘의 은혜(사8:1-8) 찬337장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배은망덕 죄를 큰 문제로 삼아 근본적 해결에 심혈을 쏟으셨습니다. 이사야의 가정을 통해 약탈이 신속해 질 것을 보이셨으며(3) 진실한 증인들을 부르심으로(1-2) 견책하셨습니다. 우리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첫째, 임마누엘의 은혜를 귀히 여길 때는 풍성과 번성과 생명을 비유한 버터와 꿀을 먹게 하시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감사하는 삶이 우리에게 복입니다.

둘째, 그러나 임마누엘의 은혜를 경멸할 때는 앗수르 침략이 그들을 덮어 버립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존중히 여기고 그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 그의 말씀을 잘 들어야하며 작은 것부터 진실되이 순종해야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약속된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립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사8:9-22)찬360장

유다의 불신앙의 뿌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앗수르를 두려워하는데 있었습니다. 신자의 생명인 영적 두려움은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나요?

첫째, 하나님을 나의 거룩의 표준으로 삼아야합니다. (13) 거룩한 삶이란 모든 생각, 활동, 관계 그리고 말에서 구별된 삶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의 체험처럼 속임과 악독과 미워하는 말을 버려야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다리며 바라보아야합니다. (17-18) 죄 때문에 낯을 가리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서 그를 기다려야합니다. 사울의 경망된 행동과 달리 불레셋 침략을 받는 위기 속에서도 제사를 끝가지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사무엘의 태도를 배워야합니다. 셋째, 그의 말씀을 좇아야합니다. (20) 하나님 말씀에 맞지 못하면 아침을 보지 못합니다.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반드시 광명의 날을 만날 것입니다. 경외신앙으로 충만한 산 신자가 됩시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사9:1-7) 찬391장

흑암에 비추이는 빛처럼 유다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소망을 갖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창성케 하는 나라가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이사야 예언이 성취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2절이 성취될 그 나라를 성령은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첫째, 기적으로 세우는 나라입니다. 기묘자와 모사란 “놀라운 상담자(wonderful counselor)란 뜻입니다. 전능자의 지혜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둘째, 영원한 나라입니다. 단7:13절에 예언된 인자 같은 이가 세우시는 그 나라는 영존하신 아버지가 왕이신 나라입니다. 셋째, 평강의 나리입니다. 공평과의가 세워질 때 평강이 임합니다. 성령은 이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성령이 운행하심으로 새 창조의 역사가 충만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선 우리는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진노하는 이유(사9:8-10:4) 찬92장

임마누엘 탄생의 소망과는 달리 본문은 심한 징계로 나타난 하나님의 극심한 진노를 보입니다. (12, 17, 21, 10:4) 왜 이런 진노가 일어납니까?

첫째, 경고를 듣고도 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8) 겸손한 마음은 말씀 앞에 바로 설 때 생기는 열매입니다. 바른 교훈인 성경을 묵상하지 않는 사람의 심령에는 마귀가 악한 교훈을 쉽게 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를 겸허히 받아드리고 돌이키는 용단을 내림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둘째, 영적지도자의 타락(14-15, 10:1-2)때문입니다. 진실은 진리인 하나님 말씀 위에 서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많은 열매를 맺으려는 기대보다 먼저 말씀의 대접을 잘 받기위해 힘써야합니다. 옥토 같은 마음에 떨어진 말씀의 씨는 그 자체의 능력 때문에 최소한 30배의 결실을 가져옵니다. 최대의 심판이 곧 도래할 시대를 사는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를 즐기며 살아가야합니다.

겸손일관(사10:5-19) 찬 185장

앗수르가 창성하여 이스라엘과 아람을 멸망시키고 유다를 멸하려는 수고가 모두 하나님의 일시적인 도구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헛된 자랑 때문에 심판을 받습니다. 아수르의 교만을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첫째, 앗수르의 교만. 자기의 총명과 힘센 손을 자랑하며(13) 열국에서 재물을 얻었음을 과시하며(154) 전쟁무기인 도끼와 톱을 자랑했습니다. (15) 그 교만이 신상을 세웠습니다. 자랑이 모든 죄악의 뿌리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모든 일에 장해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망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눅6:26)

둘째, 하나님의 벌은 불과 불꽃으로 황폐해지는 심판입니다. 겸손이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시킵니다. 기도하는 마음과 말씀 순종하는 마음에 겸손이 자라납니다. 기도는 죄를 죽이지만 죄는 기도를 못하게 합니다. (번연) 겸손의 도를 따름으로 복수의 영과 배교의 영을 단절하고 겸손의 영의 인도를 따라갑시다.

남은 자가 세우는 나라(사10:20-34) 찬410장

본문은 심판 중의 기이한 소망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남은 자의 구원과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배은망덕과 앗수르의 무자비한 억압 속에서도 하나님나라는 세워집니다. 어떻게 세워집니까?

첫째, 하나님을 진실히 의뢰하게 하심으로(20) 세우십니다. 남은 자에게 은혜를 주어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 헌신의 자리로 나가게 하십니다.(롬12: 102) 언제나 그 나라는 산 제물 삶 속에 세워집니다. 둘째, 속에서의 변화로 그 나라가 세워집니다. 27절에 어깨에 기름이 끼게 하심으로 멍에를 부러지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 쉼을 얻는 길은 먼저, 주께 나와야하고 다음, 말씀을 배워야합니다. 그럴 때 그의 영혼 속에 변화가 일어나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알게 됩니다. 그 자리로 나갑시다.

메시야 예언 (사11:1-9) 찬 94장

남은 자가 구원을 얻는 것은 메시야 강림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지상에 펼쳐지는 천년 왕국으로(역사적 전천년주의) 신약 전체의 영적 통치로(무천년주의) 보는 본문에서 메시야는 어떤 모습으로 오시며 어떻게 다스리십니까?

첫째, 메시야가 오신 방법. 땅에서 돋아나는 작은 새싹처럼 연약한 인간 모습이지만 (1) 성령의 능력으로 오셔서(2) 여호와를 경외함과 순종을 즐거움으로 삼으시며(3), 공의, 정직, 성실의 권위로 사실 것입니다.(4-5) 정말 메시야 예수님은 그렇게 오셔서 모든 구속을 이루시고 지금은 성령 안에서 일하십니다. 둘째, 메시야의 다스림, 그는 화평(6)과 온유(7-9)로 다스리시고 충만한 신지식으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십니다.(9) 역시 우리 주님은 성령 충만으로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으로 성부의 뜻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이미 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성령 충만함으로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주의 구원(사11:10-16) 찬 93장

여전히 참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심으로 성립됩니다. 그런 구원만이 처음에는 미약하나 이후에 반드시 창대케 됩니다. 한 싹이 나와 죽음과 부활을 만민의 기호가 되게 하시고(11) 한 싹이 나와 결실하게 하시며(1) 마침내 열방이 그에게 돌아오게 하는 구원을 이루시는 (창12:1-2) 구원은 어떤 승리를 약속합니까?

첫째, 남은 백성만이 구원을 받는다 했습니다.(11-12) 비록 흩어져 좌절 속에 있지만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돌아오게 하여 아브라함의 약속(창12:2)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가 성령의 약속을 받는 것으로 완성 되었습니다 (갈3:14)

둘째, 화목케 하는 구원을 이루십니다.(13) 유다와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는 투기가 사라지고 하나가 되는 사건이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마침내 이 화목은 원수가 정복되어 회복케 도심으로 완성됩니다.( 14 -16) 복음 안에 완성된 이 회복의 은총을 누립시다.

구원의 샘물(사12:1-6) 찬19장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의 샘물은 어떻게 솟아납니까?

첫째,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를 통해 솟아납니다. 1-2절에 보인 구원은 참 안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원, 나의 힘, 나의 노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수가 성 여인에게 약속한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려고 힘쓸 때 계속 일어나는 은혜입니다.(요4:14)

둘째, 그리스도를 만민에게 선포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5) 온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이 솟구치는 샘물 같은 구원입니다. 주님의 지상 사명을 순종함으로 이 샘물을 사회로 흘러나게 하여 사도행전 현장을 만들어야합니다. (마28:19-20)

먼저 영원히 솟아나는 영생을 맛보고 이 영광스러운 사명에 성실한 가정으로 살아갑시다.

바벨론심판 (사13:1-8) 찬 400장

이사야 13-23장은 열방의 심판을 경고합 니다. 바벨론 심판과 멸망은 전능자에게서 나 온 것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나 라의 흥망성쇠와 개인의 생사화복은 종말 심 판의 어떤 성격을 보여줍니까?

첫째, 교만 때문에 심판 받음을 보여줍니 다. 교만 때문에 망한 이스라엘 처럼 교만 때 문에 바벨론은 또 다른 나라에 의해 망하리 라는 예언입니다.(3) 일시적으로 쓰임받고 버림받는 어리석은 길에서 돌이켜 있는 거기 서 겸손히 주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힘써 야합니다. 남은 안식에 들어가기 못하게 하는 외식을 경계해야합니다.(히4:9-11) 둘째, 하나 님이 친히 행하시는 심판입니다.(4) 한편으로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는 구원은 다른 편으로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십니다. 모두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마치시는 주권적 심판입니다. 그 렇게 견고한 바벨론이 하나님의 작은 지혜로 망한 것처럼 신자는 하나님의 지혜의 손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진노의 날(사13:9-22) 찬337장

바벨론 심판을 “그 날”, “여호와의 날”로 표현한 본문은 (9,13)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예고합니다. (17) 그 날은 어떤 날입니까?

첫째, 그 날에 사람이 많이 죽으며 (12), 무자비하며 (16) 메대어 바사의의 침략으로(17-18) 소돔과 고모라같이 참담해 집니다.(19) 이것은 고통의 때, 마지막 날을 알리는 경고입니다.

둘째, 심판의 원인은 교만입니다.(11) 천사가 타락한 원인인 교만은 세상 멸망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교만으로 넘어진 죄인이 겸손한 사람이 되는 길은 그리스도의 겸손인 십자가 공로를 믿는 길 뿐입니다. 어린아이처럼 겸손히 받들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눅18:17) 그러므로 즉각 교만에서 돌이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삶을 추구해야합니다. 택한 자를 위해 진노를 감하신 하나님의 자비의 손을 겸손히 붙잡읍시다.

교만의 죄(사14:12-23) 찬 372장

마귀 타락을 설명하는 본문으로 생각하는 것(세대주의) 보다 자세한 문맥 관찰을 통해 유다를 망케 한 교만한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 일차적 해석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만한 세상이 어떻게 망하는가를 배웁니다.

첫째, 교만이란 하나님이 정해 준 자리를 이탈하는 자율주의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사탄이 넘어지고 아담과 하와가 넘어진 죄입니다. 그것은 인본주의로 발전하여 하나님보다 혈육을 의지함으로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어떤 교만이라도 하나님의 판단을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20)

둘째, 그 교만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달라붙어 그 길을 가는 길 뿐입니다. 말씀만이 교만의 해독제임을 잘 아셨기에 주님은 말씀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요15:10) 자랑과 교만으로 채워진 세상에서 겸손의 길을 걸어갑시다.

겸손의 섬김 (사16:1-14) 찬324장

모압은 교만 때문에 망했지만 하나님 백성은 그의 사랑과 자비 때문에 부흥함을 보여준 본문은 겸손을 어떻게 지키리라고 말합니까?

첫째, 말씀을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말씀을 그렇게 가까이 했을지라도 교만하게 된 것은 믿음을 화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말씀 안에 거할 때만 모든 관계에서 겸손을 지킬 수 있습니다. 중생한 사람은 복음의 빛 앞에서 비로소 겸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성실한 대제사장이요, 공평의 왕이요, 의의 선지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주로 모실 때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모압의 멸망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겸손을 배워야합니다. 이것이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왜 망하는가? (사17:1-14)

본문의 요약, 아람, 다메섹 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합니다. 왜 그들이 망햇는가요?

첫째,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앗기 때문입니다. 우상에게 눈길을 주었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우상이된것은 그 자신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혈육을 의지하는 자는 저주받은자입니다.

둘째,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의 구원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거같은 상황을 허락하심은 하나님만 의뢰하게하려는 것입니다.

셋째 구원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앗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에 대한 경고(사17:1-18:7) 찬88장

열방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남은 자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은 다메섹을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첫째, 동맹을 했을지라도 하나님 중심하지 않은 연합이기에 멸하십니다. 이 연합은 바벨탑을 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우선 주님과의 교제를 중요시 여겨야 합니다. 둘째, 우상을 바라보았기에 망합니다. 오늘날 무서운 우상은 물질주의, 쾌락주의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능력으로 삼지 않는 것 자체가 우상숭배입니다. 셋째, 참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18:3절부터 종말시대의 심판과 구원의 소망을 말한 이사야 계시 는 장래의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은 모두 시온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 구원을 받습니다. 그때 유대인과 이방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동맹이 이루어집니다.

이 복된 성령의 연합 시대에 사는 자로서 그 연합을 힘써 지켜갑시다.

구스가 돌아오는 날(사18:1-7) 찬337장

구스의 강성함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죄로 인해 파멸될 것을 이사야는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멸망 중에서도 복음 안에서 예물을 주께 드리는 이변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돌아옵니까?

첫째, 하나님이 친히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 참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구스내시가 광야에서 복음을 접할 때 은혜를 받은 것은 전적인 성령의 나타남으로 된 것입니다. 둘째, 예물을 가지고 주께 바치게 됩니다. 이것은 은혜 받은 증거이고 자신이 산제물이 된 증거입니다. 셋째, 예배하게 하십니다. 시온산으로 나와 예배하는 구스의 변화는 속에서부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에게 모여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빛 안에 거한 자로 살아갑시다.

애굽에 대한 경고(사19:1-20:6) 찬252장

이사야 19, 20 장은 17:3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영광같이 되리라”는 예언의 응답으로서 애굽 멸망을 경고합니다. 이미 다메섹과 에디오피아에서 보인 남은 자의 소망이 어떻게 나타날 것입니까?

첫째, 주제권의 회복(16-17,18, 19-22). 메시야 통치의 첫째 특징은 주님이 주님 되는 위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이 두려우며(16-17),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18), 애굽 중앙에 여호와의 제단과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한 기둥이 세워집니다.(20-22) 여호와께서 애굽이 자기를 알게 되어 제물을 드리고 구할 때 그들을 치료하십니다. 둘째, 예배의 회복 (23). 그 날에 애굽에서 앗스르를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스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스르로 가서 함께 경배하게 됩니다. 셋째, 주 안에 있는 복의 회복 (24-25). 메시야 왕국의 특징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24-25) 즉, 아브라함의 약속이 실현된 상태입니다. (엡1:3) 온 세상에 흩어진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시는 원천적 복을 받은 자로 살아갑시다.

두로에 대한 경고 (23:1-18) 찬102장

“내 영혼아 영원토록 마시고 즐거워 하자” 는 어리석은 부자의 독백을 생각하게 하는 본문은 무엇을 경고합니까?

첫째, 하나님 없는 물질문명은 그 마지막이 멸망입니다.(1-14) 물질만을 믿던 두로, 다시 스, 시돈의 번영은 황무하게 되는 것은 그 것을 의지 하는 인간의 심판을 보인 것입니 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바울 사도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합니다. 둘째, 물질주의 심판이 필연적인 이유는 하나님 이 정하셨기 때문입니다.(8-9)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시고 행하셨기에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 그러나 회복의 날을 약속하 셨습니다. 물질주의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징계 기간이 지난 다음, 하나님은 은혜로서 두로와 시돈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15- 18)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구 원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주의 날 (사 24:1-23) 찬 79장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장래를 비교한 24장은. 전자는 망하지만 후자는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가 왕이 되시기 때문입니다.(21-23)

첫째, 하나님 나라(21-23)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서 교회를 통해 완성됩니다. 시온산과 예루살렘은 교회를 가리키며 그 나라의 도래와 세상 심판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둘째,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 땅에 임하였습니다. 성령 안에서 주님은 지금 이 땅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과 가정에 그 나라가 임하였는가를 살피며 항상 그 나라 열매를 맺혀야 합니다.

사도들처럼 임하나라와 장차 임할 나라 사이에 사는 우리는 영적 긴장 속에서 구원의 확신과 아울러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 (25:1-12) 찬45장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문제를 본문은 어떻게 말해줍니까?

첫째, 구원의 기쁨은 어디로 옵니까? 1-5절은 주께서 행하심으로 이루어진 구원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주의 예정을 따라서 주께서 강한 성읍을 무너뜨리듯이 원수들을 모두 낮추시고 제하시기 때문입니다.(4-5) 빈궁한 자의 보호자, 환난 중에 있는 빈핍한 자의 보장이요, 폭풍우의 피난처요,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요, 폭양을 가리는 그늘처럼 성실하고 완전한 구원입니다. 둘째, 그 구원은 어디서 일어나는가요? 산으로 비유된 교회 안에서 일어납니다. (6-8)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에서 구원의 연회가 일어납니다. 셋째, 구원이 가진 특징은 무엇인가요? (1-12) 그것은 범 세계적 (3, 7)이며 영적으로 연합되며, 겸손으로 가득 채워진 구원입니다.(10-12) 모압의 교만을 누루시는 하나님의 구원 감격이 넘치는 자로 살아갑시다.

주 안에서의 기쁨 (사26:1-21) 찬341장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 백성에게 주어진 약속은 무엇입니까?

첫째, 보장된 길을 주셨습니다. 평화 속에서의 보장(1-4)과 진노 중에서의 보호를 보장 (20-21)하셨습니다. 둘째, 평탄한 길을 주셨습니다.(7-9)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리로다” 고 했고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은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높아지는 길을 주셨습니다. (12-15)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시고 존귀한 자로 세우십니다.

4계명을 무시하는 혼란한 세상에서 주일을 성수함으로 야곱의 업을 먹으며 가장 높은 곳에 다니는 약속을 받아 누리는 건강한 성도가 됩시다. 여기에 진정한 안식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로 오는 구원 (사 27:1-13) 찬86장

주께로 오는 구원은 어째서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까?.

첫째, 주의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1 절에 리워야단, 마귀를 제하시는 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마귀를 완전히 멸하시는 손입니다. 결국날선 검을 가지신 그 분이 교회를 지키시고 심판하십니다. 둘째, 주의 보호를 즐기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2-6) 포도원의 포도나무로 비유된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힙니다.(요15:5) 셋째,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는 기이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이 자기백성의 불의를 속하는 날입니다. 주께서 적절하게 견책하시고 폭풍 중에 지키시며 (7-8) 야곱의 죄를 없이하시며 (9). 하나님이 친히 모아(10) 성산에서 여호와를 경배하게 하십니다.(13) 이 큰 구원의 날의 은혜를 받읍시다.

하나님 나라의 기초 (28:1-29) 찬269장

본문은 에브라임을 “그 기름진 골짜기의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4)”으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을 근본으로 삼지 않을 때 아무리 화려하고 기름진 땅에 산다할지라도 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습을 어떠합니까?

첫째, 쇠잔합니다. 쇠하고 망한다는 뜻입니다.(1-3) 우박, 광풍, 홍수로 면류관이 땅에 던져지고, 교만의 면류관을 발로 밟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둘째, 보장받지 못합니다. 7-22절에서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회개치 않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철저히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셋째, 시온의 기초인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16절에 약속하기를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은 이유는 그 위에 선 자는 심판 중에서 구원을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산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유일한 기초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갑시다.

징계의 손(사29:1-14) 찬 379장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어떻게 징계하십니까?

첫째, 원수의 침략으로 징계하십니다.( 1-8) 열방을 들어 이스라엘을 때리시나 그들 역시 회개치 않을 때 심판하셨습니다. 그들을 침략한 바벨론, 앗스르, 애굽은 모두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둘째, 잠들게 하는 신을 부어 징계하십니다. 9-13절에서 말하기를 “잠들게 하는 신”을 허락하심이라 했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먹어 비틀거림이 아니고 미혹의 신이 역사함으로 비틀거린다고 말씀했습니다. 스가랴의 예언은 성령의 예언이었으나 거짓선지자의 예언은 거짓 신의 역사로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자기 백성이라도 죄를 철저히 다루십니다. 외적 가시와 내적 검으로 죄를 도려내십니다.(요15:1) 그 철저한 징계의 손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회복의 손(사29:17-24) 찬246장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어떻게 회복하시는가요?

첫째, 세상의 변화로 회복시키십니다. 17절에 이것이 예언되기를 레바논이 기름진 땅으로, 기름진 땅이 삼림으로 여김을 당합니다.

둘째, 개인의 영적 삶을 변화시킴으로서 회복시키십니다. 15-16절에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는 자는 화있을 진저라고 경고했고 17-19절에 미구에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고 귀머거리와 소경에게 변화가 일어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야곱을 변화시키심으로서 회복시키십니다. 22-24절에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주께서 야곱 족속을 친히 변화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이 신약시대는 여호와의 영광의 두려운 징계(6)가 이미 시작되었고 동시에 하나님이 주도하는 영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날에 두렵고 덜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룹시다.

불신실과 신실함 (29:25-33) 찬458장

수에 칠 가치가 없는 불신실한 인간에 비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어떠했습니까?(18-33)

첫째,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하여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18) 하루가 천년, 천년이 하루처럼 기다리십니다. 둘째,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6)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외양간에 나온 송아지같이 뛰게 하십니다. 셋째, 빌립보 감옥의 바울과 실라처럼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9) 그러나 앗수르를 제하듯이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31-33)이십니다.

영적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우리 세상에서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가 복됩니다. 인간은 믿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입을 넓게 열어 믿음으로 간구합시다.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능력 (사40:27-31) 찬480장

본문 초반부는 위로와 소망과 능력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강조하면서 하반부에 “기도하라”는 주님의 간절한 초청소리를 해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와 관련된 어떤 교훈을 배웁니까?

첫째, 기도 대상은 능력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에게 기대를 걸고 도움을 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였습니다.(18) 영원한 창조자요(15,21-22), 전능자이신 하나님은 피곤과 곤비함을 알지 못하는 분이시며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시며 보호하시는 무한한 명철자이십니다. 그만이 우리의 기도 대상이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안에 있는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27절에 야곱은 자신의 탄식과 원통이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생각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셋째,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이 임합니다. 젊은이의 경주 (30-31)와 독수리의 비상에 비교한 이사야는 주를 앙모하라는 권면을 따라 하나님께 믿음으로 부르짖어 권능을 받읍시다.

용사이신 하나님 (사42:1-26) 찬391장

우리 대신 싸우시는 하나님을 볼 때 진정한 용기로 현실의 영전에 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용사로 나타난 이유. 그는 “용사처럼 행진하시고 전사처럼 분발하신다(13)”고 하셨습니다. 해산하는 여인이 소리치듯 용사이신 주님은 아무리 강할지라도 크게 파하시어(15-17) 공의를 반드시 세우십니다. (4)

둘째, 싸우시는 방법. 두가지 방법으로 싸우십니다.(1-2) 1) 겸손(humility)으로 싸우십니다.(2) 2) 긍휼(Mercy)로 이루십니다.(3) 한마디로 어린양의 원리인 사랑으로 싸우십니다.

용사로서의 주님을 바라보고 날마다 자기를 살핌으로 주를 본받아 우리 원수, 세상과 마귀와 육체 소욕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승리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의 영광 (사43:1-28) 찬340장

우리를 구하신 하나님의 구속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계획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1절은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 너를 조성하신 하나님, 너를 지명하여 부르신 분”이 행하시는 일은 바로 구속 곧 재창조의 역사를 말해 줍니다. 이것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만세 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7, 21, 25) 이 구속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계획한 것입니다.(엡1:4-6 참조)

둘째, 하나님의 개별적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절에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했고 5-7절에 남방과 북방의 열국을 불러 모으신 것은 복음 안으로 만민이 몰려 올 것을 예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선택적이기에 함부로 부르지 않으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으로 꽃을 피웁니다. 그 구원은 반드시 영광으로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의로움에서 영화로움으로 나아갑니다. 애굽에서의 구원(16-17)과 바벨론에서의 구원(18-20) 그리고 열방이 모여 연합의 풍요를 누리게 하십니다.(20) 구속의 꽃을 보고 즐거이 헌신하는 사람들로 살아갑시다.

나의 택한 여수룬아! (사44:1-28) 찬539장

여수룬이란 말은 “의로 세움 받기 위해 택한 자”란 뜻입니다.(신32:15) 여수룬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져야합니다. 2-3절에서 두려워말라고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해 오는 복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갈할 때 물을 받으며(요7:38-39)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되며 성신을 두심으로 시냇가에 버들같이 하십니다. 둘째, 우상과의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9-20절에 하나님은 자신을 우상과 비교하시면서 까지 변호하시기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9)고 했습니다. 셋째, 죄 사함의 은혜를 붙들어야합니다. 21-23절에 여수룬을 향한 구속자의 죄 사함을 약속하기를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며(21), 허물을 구름과 안개처럼 도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여수룬에 합당하게 살아갑시다.

여호와의 팔 (사51:9-16) 찬403장

능력을 비유한 여호와의 팔(9)이란 말은 구약 28회 중 이사야에만 11회 나옵니다. (30:30, 40:10 48:14, 51:5,9 52:10 53:1 59:16 62:8 63:5,12) 그 팔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그것은 창조와 구속의 근본입니다. 창조(13)와 구속(9-11)의 배후에 일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와 구원 활동이 바로 그의 능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것은 말씀을 통해 나타납니다. 말씀의 선포인 설교(preaching)는 가르침과 구분됩니다. 기록된 말씀, 성경을 바로 받은 설교자가 성령의 능력으로 그 백성에게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통해 신앙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으며 신령한 능력을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팔을 신뢰할 때 두려움이 담력으로 바꾸어집니다.(12-14) 믿음으로 사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고난의 종(I) (사52:13-53:6) 찬147장

고난의 종이 이루실 구속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창세 전에 계획된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13)”고 약속하고 그 씨를 보고 그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라(53:10)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이 구속을 미리 계획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창3:15) 둘째, 인간 상상을 초월한 계획이었습니다. 14-15절에 놀라워하는 두 사건이 나옵니다. 그 종의 고난을 바라보고 놀라는 것이고 그의 수난의 참혹함을 보고 놀라는 것입니다. 연한 순과 마른 땅의 줄기 같은 탄생(1), 멸시, 간고, 질고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귀히 여기지 않은 슬픔의 사람으로 사셨습니다.(3-4) 셋째, 믿을 때 효능을 발하는 계획이었습니다. 구속은 하나님이 많은 말씀과 사건을 통해 예고한 것이 성취된 것입니다.(1) 자아부인과 십자가를 짐으로써 우리의 구속을 이루어갑시다.

고난의 종(II) (사53:6-9) 찬144장

그 고난은 어떤 성격을 가졌습니까?

첫째, 대신 담당한 고난이었습니다.(6-7)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다는 말씀을 보면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책임지시고 까닭 없는 고난을 당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에 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고 했고 5절에 우리의 죄악, 우리의 죄악을 위해서 고난을 당한다고 했고 8절에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세상의 온갖 수모를 참는 고난이었습니다.(7) 곤욕과 심문을 당하기를 털 깎는 자 앞에 선 어린양의 침묵을 지켰습니다. 자기 털을 희생하듯 그는 잠잠하였고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모리아 제단의 이삭처럼 그 일을 성취하기 까지 아무 대답도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수난은 실제적이었습니다. 십자가 지는 것을 잘 배웁시다.

고난의 종(III) (사53:10-12) 찬146장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가져왔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만족시키셨습니다.(10-11)- 속건 제물(보상제)이 되심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적 사건과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모양과 부분으로 증거하신 유일한 속죄 제물로 오신 것입니다. 둘째, 자기 백성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처리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의로운 위치로 올려놓고 상대해 주셨습니다.(11)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심은 하나님의 속죄 표준과 방법으로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의의 하나님 앞에 의가 없으면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허물과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평화와 치료를 얻었고 했고(5) “그 씨를 보게 되고 그 날이 길 것이라(10)”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예언대로 인자로 오신 그는 죽음을 통해 자기 백성을 얻어 그들 모두 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노래할 이유 있네 (사54:1-17) 찬49장

이사야가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1)고 권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 의 장막터를 확장시키셨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그들이 거하는 장막터 확장으로 인하여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좌우로 퍼져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으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하시는 장막터 확장은 정말 놀라운 약속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때문입니다.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시며(8)) 다시는 책망받지 못하도록 (9) 허물을 책임지시고 고쳐주시고 인자를 떠나지 않게 하리라(10)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때문에 노래합니다.(13-15) 여호와의 교훈을 받으며 평강할지어다(13)고 하셨고, 학대가 멀어지고 공포가 가까이 못하리라(14)고 하셨고, 너를 치는 자는 너로 인하여 패망하리라(15)고 보장하셨습니다. 찬양이 가득 찬 천국 백성으로 살아갑시다.

물로 나오라 (사55:1-13) 찬324장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는(12-13) 구원의 은혜를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은혜임을 알아야합니다. 본문은 이 풍성함을 약속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잔치 상에는 긍휼과 사랑(7), 영혼의 소생함 (3), 3) 좋은 것과 기름진 것 (3) 4) 넘치는 잔 (12) 그리고 5) 하나님의 명예 (13)가 풍성히 준비되었습니다. 둘째, 누가 준비하셨습니까? (11) 그는 전능자, 초월자, 거룩자, 전능자, 주권자, 계시자, 명령자, 인도자 그리고 성취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어떻게 응해야합니까? 물가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곧, 회개하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물이 포도주로 바꾸어지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그런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주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내가 받을 진노를 모두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물가로 지금 나갑시다.

평강의 길 (사57:1-21) 찬478장

악인의 마지막은 멸망이지만(20), 의인의 마지막은 평강의 길입니다.(2) 이 평강을 어떻게 향유할 수 있습니까?

첫째, 통회. 14-15절에 하나님은 높은 곳에 거하지만 회개하는 자에게 함께하시고 마음을 소성시키시는 분이라 하셨고 18절에는 이런 자를 치료하신다 하셨습니다. 산상보훈에도 애통하는 자에게 하늘의 위로가 임하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마5:4)

둘째, 겸손.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함께 하십니다. 애통과 겸손은 통합니다. 7절에 “네가 높고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네가 또 그리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라는 것을 보면 우상 섬기는 자의 특징은 교만으로 나타납니다. 교만된 마음에는 이 평강이 머물지 않고 연합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오시면 언제나 평강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빌2:1-2)

성수주일의 복 (사58:3-14) 찬57장

본문은 안식에 대해 교훈을 어떻게 말합니까?

첫째, 성수주일이란 안식일을 온전하게 지키는 삶을 가리킵니다. 주님이 한 날을 안식일로 지정한 것은 에덴동산을 인간을 불러 교제의 장소로 정하신 것처럼 7일 중 한 날을 정하여 자기 백성과의 교제를 원하신 것입니다. 둘째, 어떻게 지킬 것입니까? 1) 자기 절제- “네 발을 금하라”, “오락을 금하고”. 안식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절제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이며 믿음생활에 중요한 덕목입니다.(3-4) 2) 주의 뜻을 따름- “네 길로 행치 말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며”. 그 날은 철저히 하나님 위주가 되어야합니다. 3) 예배중심을 힘씀- “그 날은 존귀한 날이라 하여 그 날을 존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셋째, 주일성수하는 자에게 세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1)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얻습니다. 2) 땅에서 존귀하게 됩니다. 3) 야곱의 기업을 누리게 하십니다. 산이 굽이침 같이 하나님의 축복이 돌아오는 원천적 축복을 받습니다.(8-12) 주일을 지킴으로 에덴동산의 축복을 누립시다.

신천 신지의 소망(사65:1-25) 찬221장

신자의 소망인 신천 신지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용서로 채워진 곳입니다. 그 세계는 “이전 것이 생각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하는(17)” 곳이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가득 찬 곳으로서 그리스도 피의 효능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히10:17) 바울이 정죄하고 대적하고 송사할 자가 없다고 한 것은 이미 신천 신지의 세계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 백성을 기쁨의 대상으로 삼는 세계입니다. 18-19절에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백성을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습3:17) 셋째. 영원한 복의 세계입니다. 장수의 복 (20),노동의 복 (21-23), 값없이 주시는 복 (24) 그리고 화평의 복(25)이 넘치는 곳입니다. 환난 많은 세상에서 산 소망으로 살아갑시다.

아모스와 함께 가정예배

작은 죄 (암1:1-8) 찬 495장

웃시야와 여로보암의 경제적 부요와 함께 갑자기 일어난 지진으로 어수선한 때, 하나님은 드고아 목자 아모스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그가 받은 일은 경고의 메시지로 그들을 회개케 하는 것입니다.

첫째, 어떤 경고를 받았습니까? 이방의 다메섹(3-5), 불레셋(10)을 향한 심판 메시지입니다. 그들이 의지하는 권위를 꺽기 위해 강국의 침략으로 사로잡히고 불로 망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존폐가 달린 심판이기에 매우 두려운 것입니다. 둘째, 심판 원인은 작은 죄 때문입니다.(6,9,11) 우상숭배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경외가 없는 모든 것이 죄의 근본입니다. 작은 죄라도 하나님 진노를 사기에 충분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나온 주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성경 통해 들려오는 세미한 주의 음성를 듣고 주를 경외하는 사람이 가장 복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죄(암1:9-15) 찬184장

두로와 에돔과 암몬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 속에 하나님이 미워하는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형제 계약을 배반한 그들을 원수에게 팔아 넘긴 죄입니다.(9) 형제 약점을 이용하여 원수에게 붙이는 인신매매 같은 죄를 경계해야합니다. 둘째, 형제에 대한 무자비한 행위 때문입니다. (11) 도망가는 형제를 칼로 죽이는 맹렬한 분노를 버려야합니다. 셋째, 탐욕을 채우기 위해 무자비한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죄입니다.(13)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르는 무자비함으로 욕심을 채우는 죄를 갚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만합니다. 이방에 대해서도 이렇게 심판하신다면 자기 백성에 대한 형제 사랑의 결핍은 더 큰 심판이 따릅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산 형제의 연약을 대신 담당하는 사랑을 표현합시다.

경건의 회복 (암2:1-8) 찬 394장

하나님은 모압과 에돔의 죄보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를 더 심각하게 다루셨습니다.

첫째, 어떤 죄를 범했습니까? 은을 받고 의인을 팔 정도로 의를 경홀히 여겼으며(6) 가난한 자와 겸손한 자가 학대를 당하며(7) 부자가 경건으로 가린 탐욕과 외식이 만연한 사회였습니다.(8) 더욱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섬기는 가증한 짓을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무너진 사람은 자연히 이웃 관계의 도덕적 부패가 일어나도록 되어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을 준비시킨 더러운 영(계16:13)은 우리 시대에도 크게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 어떻게 이깁니까? 경건 회복만이 살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사랑하는 것만이 이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자기를 지키고 고아와 과부를 환난에서 돌보는 참 경건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약1:27) 경건 회복을 위해 힘씁시다.

죄의 보응(암3:9-15) 찬338장

북 이스라엘의 중심, 사마리아성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첫째, 세 가지 죄악 즉 요란과 학대가 있었고(9) 약한 자를 억압하는 팽배한 강포와 하나님의 자비와 의가 무시되었고 포학과 겁탈이 난무하여(10)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들려는 탐욕이 가득 찼습니다. 더욱이 죄악의 뿌리인 우상숭배가 팽배하여(14) 도덕적 부패가 충만했습니다. 둘째, 그들을 대적에게 넘기어 수치를 당케 하시며(11) 벧엘의 제단을 헐어버리려고 불을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14,15)

세상 심판의 서곡인 이스라엘 심판은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 이뤄질 세상 심판을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의 의는 반드시 드러날 것입니다.(계16:17-20)

하나님 사랑의 능력 (암4:1-13) 찬416장

죄의 결과로 가뭄, 흉년, 병충해, 염병 그리고 전쟁 참화의 징계를 왜 하나님은 허락하셨습니까?

첫째,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비의 여지를 남기셨습니다. 사랑받을 건덕지가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 자신의 연광을 위해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구원도 우리 공로가 가미되지 않는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만 됩니다.(엡2:8-9)

둘째 회개를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탕자가 아비를 떠나 허랑방탕하여 비로소 궁핍하여 돌아왔을 때 상상을 초월한 은혜를 받았듯이 주께 돌아오기만 하면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은 그 사랑의 힘으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롬5:5)

이 크신 사랑 안에서 참된 능력을 누립시다.

회개와 믿음(암5:1-17) 찬 337장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언제나 별 다른 사랑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경고와 아울러 갈 길을 보여주셨는데 이것이 회개와 믿음입니다.

첫째, 회개해야합니다. 신부가 신랑을 맞아할 준비를 하듯이 하나님을 만날 준비하는 것이 회개입니다.(4-6) 이 회개만이 생명을 얻게 합니다. 이것은 세례요한을 위시하한 여러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골자였으며 예수님 복음의 내용입니다.(막1:4, 15) 통회하는 마음이 신자가 받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둘째, 믿어야합니다.(14-15) 참 회개는 반드시 참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믿음만이 회개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공로를 믿을 때 회개할 용기가 생깁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에 대한 믿음(행20:20)을 전한 바울 복음은 그 뿌리가 깊습니다. 이 복된 길에 들어선 우리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 언제나 복음의 빛 아래 살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 (암5:18-27) 찬342장

무서운 경고를 듣고도 회개치 않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것이 둘이 있습니다.

첫째 공법(justice)을 원하셨습니다.(24상)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실패한 이스라엘은 모든 일을 그르쳤습니다. 사회의 공법이 무너짐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에 문제 때문이란 것입니다. 도미노현상처럼 하나님에 대한 계명(1-4)에 바로 되지 않으면 이웃 계명(5-10)도 세워질 수 없습니다. 공법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에서 시작되어야합니다. 둘째, 정의(righteousness)를 원하셨습니다.(24하) 이스라엘의 구원의 의는 모든 사회 정의의 기초입니다. 의가 무너진 가정과 사회는 믿음의 의를 잃은 증거입니다. 이 의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앗스르 의 포로 생활의 쓴 맛을 허락하셨습니다. (25-27)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얻은 신자의 의가 생활 저변에 강같이 흐르도록 작은 일에서부터 의를 세워야합니다.

자만에 대한 징벌 (암6:1-14) 찬 347장

하나님의 요구하는 공법이 쓸개와 정의가 인진으로 바꾼 이스라엘의 죄는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12)

첫째, 안일한 마음에서 나왔습니다.(1)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열방을 의지한 저들의 평안은 일시적인 것이며 결국에는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요셉의 환난을 생각지 않고 자기 탐욕만 채우는 원수의 발아래 떨어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위험한 것이 수동적인 마음, 영적 게으름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자만에 빠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 힘을 의지하는데서 나왔습니다.(13) 우리의 뿔을 우리 힘으로 얻었다고 자화자찬하게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이 자기 신뢰로 나가는 것은 영적법칙입니다.(롐17:5-6)

“주여, 내 마음을 겸손의 영으로 채워주소서!”

먼저 의를 구하자 (암7:1-9) 찬 265장

본문에 보이는 세 가지 이상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새싹을 싺슬이 한 황충이 이상에서 약한 이스라엘을 향해 뜻을 돌이키시는 긍휼을 보였습니다. 진노 중 긍휼이 남은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중보사역 때문입니다.(히4:15-16) 둘째, 타오르는 불 이상에서 바다를 삼킨 불이 땅까지도 사르려는 심판의 맹렬함에서 뜻을 돌이키심은 선지자의 중보 사역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그러나 다림줄 이상에서 측량하신 제단의 주님은 우상숭배의 죄를 징계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의 집을 칼로 치리라는 예언대로 그 나라는 앗스르의 포로가 되어버렸습니다.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 보인 그의 의를 세우시는 열심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주 안에서 거저 얻은 의를 따라 그 의를 세웁시다. (마6:33)

소명의 본 (암7:10-17) 찬350장

주의 부르심은 사역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소명이 없는 사람은 주의 사역을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부른 자만을 통해 자기의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의 부름은 어떠했습니까?

첫째, 그는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복방 이스라엘 초기, 목자며 농부인 아모스를 예언자로 부르자 즉시 응답하였습니다.(14-15) 하나님 부르심은 절대적 효력이기 때문에 아무도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응답하는 사람도 자원해서 응한 것은 마음의 변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마4:19-20) 둘째 사명에 충실하였다. 구원을 위한 부르심에는 사역에 대한 부르심도 포함됩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관한 회개와 경고를 알리는 예언이기에 핍박을 예상하겠지만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소명 문제가 점점 소홀히 되는 이 시대에 아모스의 사역을 본받아 부르심을 굳게하는 신자가 되어야합니다.

진정한 문제 (암8:1-14) 찬340장

여름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심으로 이스라엘의 종말이 어떠함을 알려주셨습니다.(1-2) 그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가난한 마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4) 소자에 대한 경시는 하나님에 대한 강팎한 마음을 반영합니다. 경건의 분위기는 있는데 경건의 능력이 없으며 인간 존엄성이 사라진 부패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둘째, 말씀 받을 수 있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11) 양식과 식수의 기근도 심각하지만 말씀의 기갈이 더 급함을 아모스는 탄식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생명은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요6:63) 말씀을 잘 받는 옥토에 100배의 결실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경홀히 여기고 일락과 물욕과 염려로 채워진 가시나무 마음이 우리 시대의 문제입니다. 성경마저도 인간 말로 취급하기 좋아하는 치명적 위기에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성경묵상의 세계로 속히 나가야합니다. (시1:1-3)

회복의 하나님 (암9:1-15) 찬 214장

마지막으로 보인 그림 계시는 기둥을 쳐서 문지방을 흔드는 이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첫째, 종말론적 경고를 봅니다. 2-4절까지 “내가”라는 말을 6회나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4) 심지어 심판을 결단코 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다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그러나 하나님은 종말론적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8) 온전히 멸하지 않겠다는 것이며(8) 황무한 성읍에서 건축하며 들판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14) 그리고 다시는 너희를 뽑을 자가 없는 근본적 변화를 약속하셨습니다.(15)

우리 구원은 첫 복음(창3:15)에서 약속한대로 하나님이 친히 시작하시고 이루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그 분이 반드시 완성하실 것입니다. (빌1:7) 이 약속을 주장하며 삽시다.

에스더와 함께 가정예배

열방의 왕권 (에1:1-32) 찬451장

에스더서의 주제는 열방에서도 하나님은 왕이시며 자기 사람들은 왕의 백성임을 밝히 보여줍니다. 본문은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이스라엘만이 아닌 열방에서도 행사되는 하나님 왕권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복음이 들어 온 이 세상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왕권이 계속 시행되고 있습니다. 아하스에로의 왕권은 장차 올 그리스도의 왕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절대 왕권입니다. 둘째, 와스디의 교만과 아하스에로의 분노는 기회를 사지 못한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 중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세우시는 섭리의 주이십니다. 그릇되었다 할지라도 그대로 사용하여 주의 뜻을 이루시는 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릇된 것은 심판받습니다.

예수의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도록 부름받은 우리가 그의 뜻을 따를 때 언제, 어디, 어떤 악조건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왕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섭리의 손 (에2:1-18) 찬459장

“주” 혹은 “여호와” 용어가 하나도 없는 에스더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그 섭리는 어떻게 보여졌습니까?

첫째, 왕궁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 즉, 폭군의 성대한 잔치, 왕명으로 왕후가 폐위되는 일들이 제각기 단편적 일들처럼 보이지만 극한 위경에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건지도록 준비하는 하나님의 손길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아무리 절망적 자리라도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손길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전7:14)

둘째, 그 손은 기적보다 더 능력이 있고 차원 높은 손길입니다. 잔치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사건 당사자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정말 놀랍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서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는 신자에게 참 위로가 임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 그 손을 붙들 때 이전에 알지 못한 크고 기이한 일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렘33:3)

모르드개의 신앙 (에2:16-3:6) 찬343장

에스더를 통해 하나님의 왕되심이 열방에 증거되었던 배후에 모르드개라는 신앙의 사람의 역할이 컸습니다. 본문은 그의 신앙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사람에 대한 성실로 나타났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에 대한 충성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입니다. 신자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말씀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적용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둘째, 하만에게 절하지 않는 절개있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상관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제 2인자인 교만한 하만의 태도 속에서 여호와 경외 신앙을 대적하는 증거를 본것 처럼 보입니다. 우상 제물을 먹지 않기 위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결심한 다니엘의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단1:7)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을 상대로 뜻을 정하여 믿음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시고 부르짖고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다.

마귀의 궤계(에3:7-15) 찬388장

어떤 점에서 하만은 마귀를 상징합니까?

첫째, 개인감정 때문에 전 유대 민족을 몰살하려는 악랄함은 보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구약의 교회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어떤 음부의 권세라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둘째, 여호와 경외신앙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의 특이한 태도의 원인은 그의 여호와 경외신앙 때문임을 알고 그를 죽이려한 것은 그의 모든 생각의 초점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하나님 지식을 대적하며 그것을 무너뜨리려는데 능수능란합니다. 셋째,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절대 권력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만은 왕에게 뇌물을 바쳐가며 온갖 술수로 왕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불변한 법으로 유대인을 몰살하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어두움의 악령들의 치밀한 공격을 항상 예의 주시하여 대적할 수 있어야합니다.

사명감 (에4:1-16) 찬355장

에스더서는 열방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이 왕이심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왕의 분노, 왕후의 폐위, 에스더 발탁, 모르드개의 경외 신앙 그리고 하만 손에 유대 민족이 죽는 위 기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다스렸습니 다. 특히 4:14에 보여진 모르드개 신앙은 백 절불구의 사명감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첫째, 자기 백성은 어떤 장애에서도 반드 시 구원받는다는 확신입니다. 에스더의 도 움이 없다면 다른데서라도 구원의 손길이 온다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사형선거 받은 것 같은 상황을 주신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 는데 있었습니다.(고후1:9) 둘째, 왕후의 직 책이 바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한 자리라는 확신입니다. 현실의 부귀영화를 하 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섬기는 청지기라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헌신하는 기회는 복 중 복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세우 는 제물로 드립시다.

기도의 변화 (에5:1-14) 찬482장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 실천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첫째, 자신의 변화입니다. 3일 금식기도 중 왕 앞에 나갈 수 있는 담력이 생겼습니다. 모 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중 기도 중에 얼굴 에 광채가 난 것도 자신도 모르게 (출34:29- 35) 그의 영혼에 능력이 임한 것과 같습니다. 둘째, 왕의 변화입니다. 수개월을 부르지 않 던 왕이 금 홀을 내민 것은 에스더의 영미에 매료당한 행동입니다. 브니엘에서 기도한 야 곱을 볼 때, 에서의 한 맺힌 살기가 풀려 눈 물의 상봉이 일어 난 것처럼 기도는 원수를 녹입니다. 셋째, 상황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라 절반이라도 줄 터이니 소원을 말하라는 왕의 배려는 에스더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 으로 초점이 맞춰지게 했습니다. 기도는 만사 를 변화시키고 만능의 열쇠라는 말이 진리입 니다. 하나님과 만 상대로 부르짖는 은밀한 기도로 문이 열립니다.(마6:6) 반드시 구하는 자는 좋은 것 곧 복의 원천인 성령을 받습니다.(눅11:13)

믿음의 기도 (에6:1-13) 찬480장

한 날 한 시에 유대인들을 멸하려는 하만의 궤계 앞에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기도가 어떤 상황을 만들었습니까?

첫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이 보다 더한 문제도 해결하며 큰 역사를 낳습니다.(약5:16) 둘째, 기도 후 모든 환경이 에스더 쪽으로 쏠렸습니다. 불면 때문에 왕이 궁중일기를 보았고 그 많은 기록 중 모르드개가 행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도를 통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만이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을 살해할 날에 관해 왕의 재가를 받으러 왔다가 엉겁결에 모르드개 일에 협력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친히 이끄시는 손이셨습니다. 요행이나 우연이라고 말하는 찰나의 상황까지라도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의 영향권에 넣으셨습니다. 기도의 위력을 맛봅시다.

죽음을 없앤 죽음 (에6:14-7:10) 찬193장

에스더서에 나타난 일련의 사건을 복음 빛 아래서 묵상할 때 우리는 우리 주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하만의 궤계처럼 마귀가 주의 백성을 한 날 한 시에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단번에 죽으심으로 마귀를 없이하신 것이 복음입니다.(히2:14) 둘째, 완전한 우리의 구원을 알면서도 마귀는 우리의 죄와 죄책과 옛사람을 빌미로 온갖 유혹으로 죄의 길을 가게 하여 영적사망에 떨어뜨리려 했지만 우리 주님은 십자가 죽음으로 완벽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죽음을 없애신 죽음이셨습니다. (롬5:8)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친히 일하시는 주님을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 볼 때 우리가 지고 가는 모든 연약과 질고와 죄와 저주와 사망이 해결되어 참 자유를 얻습니다. 바울의 확신처럼 평강의 주께서 사탄을 나의 발아래 속히 상하게 하시리라는 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롬16:20) 이 사랑을 깊이 묵상합시다.

반포된 새로운 법 (에8:1-17) 찬177장

하만은 죽었으나 그가 저질러 놓은 유대인 죽이는 법은 그대로 살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에스더는 하만을 죽인 것으로 끝내지 않고 자기 민족의 죽이는 법 철폐를 구했고 마침내 새 법 곧 한 날에 죽게 될 유대인이 구원받고 높아지는 법이 반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원수 마귀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그 마귀로 인한 옛사람과 사망과 저주를 모두 제하는 것입니다.(갈5:24) 성령을 보내 거듭난 마음에 새 법을 새겨 영원한 변화를 일으키셨습니다.(롐33:3) 예수의 죽음 부활 승천의 공로는 이처럼 우리 구원을 완벽하게 이룬 것입니다.

유대인이 높아지듯이 거듭난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가장 높은 승리의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이 복된 자리를 주장하며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성결한 싸움(에9:1-19) 찬186장

우리의 싸울 대상 셋은 사탄, 세상 그리고 육이란 사실을 본문이 보여줍니다.

첫째, 하만을 죽인 것처럼 사탄은 그리스도 의 죽음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 도와 그의 십자가 중심한 생활을 가르친 것 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고전1:23) 둘째, 그의 아들들을 모두 죽인 것처럼 세상과 육 도 그리스도 십자가 위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이제 신자 앞에는 승리에 승리, 면류관에 면 류관이 약속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반드시 이길 자이기에 예수의 이름으로 이 면류관을 주장해야합니다. 반드시 백마 탄 자의 승리를 누리게 하십니다.

이와같이 유대인 모르드개의 청원에 따 라 주변 원수는 모두 처리되었지만 재산에는 아무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신자가 승리 신 앙을 잘못 관리하면 명예, 탐욕이 작용하여 그리스도를 떠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간, 게하시 그리고 발람처럼 말입 니다. 바울처럼 일체 순종함으로서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섬겨야합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에9:20-10:3) 찬213장

슬픔이 기쁨으로 애통이 즐거운 날로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본문에 어떤 점이 복음의 성격을 보여줍니까?

첫째, 죽을 부림이 살아나는 부림으로 바꾸어졌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최대의 기적을 만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만하면 죽을 자가 살아납니다. 흑암에서 광명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입니다. (행26:18)

둘째,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기도를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빌4:6-7) 모르드개의 높아짐은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를 보여줍니다. 모르드개가 하나님의 은혜로 온 세상을 다스림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인하여 온 땅을 다스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복음을 믿음으로 얻은 이 놀라운 승리를 실 생활에 누리기 위해 하나님만이 나의 힘으로 의지하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