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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탄의 지혜 제 2권

48. Judging a Person’s Experiences I. “Look to see :1) That the influence be upon the will or heart, not on the imagination, nor on the speculative understanding or thought processes of the mind, even if these processes sweep the emotions along with them as a consequence. That the disturbance in their thinking not be excessive, in that their thinking is [actually] bothered by those things it has reason to be disturbed about; and that the troubling of their minds seems to function in such a way, with the kind of troubling and exercising of the mind that is thoughtful: meaning that it is based on reasonable, solid consideration; a solid perception and conviction of truth, that is, of things as they really are.(Jonathan Edwards)
(영적체험을 분별하는 법) (1) 체험과정에 좋은 감정이 동반되어도 의지나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상상과 깊은 깨달음과 사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주의하라. 분산된 생각, 잡다한 생각, 그리고 이성적, 실제적 일들의 규범이나 진리의 확신에 근거를 둔 기능처럼 보이는 고민과 활동 역시 조심해야 한다 – 요나단 에드워드)

49. ‘See that your chief study be about heart, that there God’s image may be planted, and his interest advanced, and the interest of the world and flesh subdued, and the love of every sin cast out, and the love of holiness succeed;and that you content not yourselves with seeming to do good in outward acts, when you are bad yourselves, and strangers to the great internal duties. The first and great work of a Christian is about his heart.” (Richard Baxter)
(하나님 형상이 심겨지고 그것에 대한 관심이 증진되고, 세상과 육체적 관심이 질식당하며 모든 죄에 대한 애착이 던져져 거룩에 대한 열망이 계속되기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펴라. 그리고 그대 자신이 곤경에 처할 때 외적으로 선을 행하는체하는 행동에 만족하지 말고 외인에 대해 내적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살펴라.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우선되며 위대한 일은 마음의 일이기 때문이다.-리차드 빽스터)

50. ‘Luxury and gluttony is a sin exceeding contrary to the love of God: it is idolatry: it hath the heart, which God should have; and therefore gluttons are commonly and well called belly-gods, and god-bellies, because that love, that care, that delight, that service and diligence which God should have is given by the glutton to his belly and his throat.”(Richard Baxter)
(사치와 탐욕은 하나님의 사랑에 맞선 지나친 죄악이다. 그것은 우상 숭배로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마음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자기 배를 신으로 삼는 것이라고 했다. 이 탐욕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사랑, 관심, 기쁨 그리고 섬김과 근면을 자기 배와 자기 목구멍으로 삼켜버린다.- 리차드 빽스터))

51. ‘In the Scripture there is a portrait of God, but in Christ there God himself. A coin bears the image of Caesar’s son is his own lively resemblance. Christ is the living Bible.”(Thomas Manton)
(성경 안에 하나님의 초상화가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 자신이 있다. 동전 속에 새겨진 가이사 화상과 가이사 아들이 닮은꼴이지만 리스도는 살아있는 성경 자체이시다.- 토마스 맨톤)

52. ‘Our mind is where our pleasure is, our heart is where our treasure is, our love is where our life, but all these, our pleasure, treasure, and life, are resposed in Jesus Christ.”(Thomas Adams)
(우리 생각에 우리 즐거움이 있고, 우리 마음에 우리 보화가 있으며, 우리 사랑이 우리 생명에 있으나 이 모든 즐거움과 보화와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토마스 아담스)

53. ‘For every look at self take ten looks at Christ.” (ROBERT MURRAY MCCHEYNE)
(자신을 한번 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열 번 보는 사람이다.- 맥췌인)

54. “Despair is hope stark dead, presumption is hope stark mad.” (THOMAS ADAMS)
(절망은 굳어버린 소망이며 선입견은 굳어버린 미친 소망이다. -토마스 아담스)

55. “Assurance grows by repeated conflict, by our repeated experimental proof of the Lord’s power and goodness to save; when we have been brought very low and helped, sorely wounded and healed, cast down and raised again, have given up all hope, and been suddenly snatched from danger, and placed in safety; and when these things have been repeated to us and in us a thousand times over, we begin to learn to trust simply to the word and power of God, beyond and against appearances: and this trust, when habitual and strong, bears the name of assurance; for even assurance has degrees.”(JOHN NEWTON)
(확신은 계속되는 갈등과 구해주시는 주의 능력과 선하심에 대해 거듭되는 체험적 증거에 의해 자란다: 매우 낮은 자리에서 도움을 받고 상처를 치료받으며, 던져질 때 다시 일으키시며, 모든 소망을 포기 하게하는 갑자기 몰려온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옮기심; 이런 일들이 수천 번 반복될 때 우리는 보이는 것에 대항해 더 멀리 단순히 하나님 말씀과 능력의 신뢰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런 신뢰가 습관적이고 강할 때 확신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확신에도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존 뉴톤)

56. “Oh, better were it for you to die in a jail, in a ditch, in a dungeon, than to die in your sins. If death, as it will take away all your comforts, would take away all your sins too, it were some mitigation; but your sins will follow you when your friends leave you, and all your worldly enjoyments shake hands with you. Your sins will not die with you as a prisoner’s other debts will; but they will got to judgment with you there to be your accusers; and they will go to hell with you there to be your tormentors.” (JOSEPH ALLEINE)
(오, 죄 가운데서 죽는 것보다 감옥과 시궁창이나 거름더미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 만일 죽음이 모든 위로를 가져가 버리는 것처럼 어떤 경감함이 있었다면 당신의 모든 죄도 가져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죄는 당신 친구들이 떠난다 해도 그대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당신과 악수할 것이다. 죄수의 다른 채무처럼 당신의 죄는 당신과 함께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죄들은 당신의 고소자로서 당신과 같이 심판 자리에 설 것이다. 그리고 그 죄들은 당신을 괴롭히는 자로서 지옥에도 함께 갈 것이다.- 죠셉 얼라인)

57. “If a wicked man seems to have peace at death, it is not from the knowledge of his happiness, but from the ignorance of his danger.” (THOMAS WATSON)
(만일 악인이 임종시 평안을 갖는다면 그것은 행복의 지식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당할 위험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이다.- 토마스 왓슨)

58. “Let us not satisfy ourselves with a knowledge of God in the mass; a glance upon a picture never directs you to the discerning the worth and art of it.” (STEPHEN CHARNOCK)
(덩어리로 된 하나님의 지식으로 만족하지 말자. 왜냐하면 한 폭의 그림을 한번 보는 것으로 그 가치와 기술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테반 챠르낙)

59. “Nothing is more contrary to a heavenly hope than an earthly heart.”(WILLIAM GURNALL)
(세속적 마음만큼 하늘 소망을 대적하는 것이란 없다.-윌리엄 거널)

60. “Sin hath the devil for its father, shame for its companion, and death for its wages.” (THOMAS WATSON)
(죄의 아비는 마귀이고 수치는 그의 친구이고 죽음이 그 값이다.- 토마스 왓슨)

61. “Christ did not die for any upon condition, if theydo believe; but He died for all God’s elect, that they should believe.” (JOHN OWEN)
(그리스도는 믿든지 믿지 않든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지 않으셨다. 다만 그는 택한 자들을 믿게 하려고 죽으셨다. – 존 오웬)

62. “God hath work to do in this world; and to desert it because of its difficulties and entanglements, is to cast off His authority. It is not enough that we be just, that we be righteous, and walk with God in holiness; but we must also serve our generation, as David did before he fell asleep. God hath a work to do; and not to help Him is to oppose Him.” (JOHN OWEN)
(하나님은 세상에서 일하고 계신다. 어렵고 꼬이기 때문에 일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우리가 공평하고 의롭고 거룩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다윗이 죽기 전에 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세대를 섬겨야만 한다. 하나님은 일하시기 때문에 그를 섬기지 않는 것은 그를 반대하는 것이다.- 존 오웬)

63. “My brethren, when God first began to love you, He gave you all that He ever meant to give you in the lump, and eternity of time is that in which He is retailing of it out.”(THOMAS GOODWIN)
(나의 형제들이여, 하나님이 먼저 당신을 사랑하실 때 그대에게 모든 것을 송두리채 주신다. 또 그는 영원 안에 그대에게 영원히 주신다.-

64. “If a man were invited to a feast, and there being music at the feast, he should so listen to the music, that he did not mind his meat, you would say, Sure he is not hungry; so when men are for jingling words, and like rather gallantry of speech than spirituality of matter, it is a sign that they have surfeited stomachs, and itching ears.” (THOMAS WATSON)
(잔치에 초대를 받은 한 사람이 잔치 음악이 있을 때, 음식에 과념치 않고 음악을 듣는 자는 배고프지 않은 자다. 사람들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신령한 말씀보다 웅변적인 말을 더 좋아한다면 이것은 배가 부르고 귀가 가렵다는 증거이다. – 토마스 왓슨)

65. “Temptations, when we meet them at first, are as the lion that reared upon Samson; but if we overcome them, the next time we see them we shall find a nest of honey within them.”(JOHN BUNYAN)
(유혹, 우리가 그것을 처음 만날 때는 삼손을 향해 울부짖던 사자 같으나 이기 다음, 우리는 그 속에서 꿀 송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존 번연)

66. Advice to a Young Minister
“It is easy for me to advise you to be humble, and for you to acknowledge the propriety of the advice; but while human nature remains in its present state, there will be almost the same connection between popularity and pride, as between fire and gunpowder: they cannot meet without an explosion, at least not unless the gun powder is kept very damp.”(JOHN NEWTON)
(젊은 사역자에게 하는 충고
“내가 당신에게 겸손하라고 충고하는 것과 당신이 적절한 충고를 인정하기란 쉽다. 그러나 인간 본성이 있는 한 인기와 자만과의 관계는 마치 불과 화약 관계와 같아 같이 있으면 반드시 폭발할 수밖에 없다. 화약이 많이 젖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 존 뉴톤)

67. “None so empty of grace as he that thinks he is full.” (THOMAS WATSON)
(은혜가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은혜가 고갈된 사람은 없다.- 토마스 왓슨)

68. “A sermon is not made with an eye upon the sermon, but with both eyes upon the people and all the heart upon God.”(JOHN OWEN)
(한편의 설교는 설교 위에 있는 한 눈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사람들을 보는 두 눈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온전한 마음으로 만들어 진다.- 존 오웬)

69. “Every thing that a man leans upon but God, will be a dart that will certainly pierce his heart through and through. He who leans only upon Christ, lives the highest, choicest, safest, and sweetest life.” (THOMAS BROOKS)
(한 사람이 하나님만 의뢰하는 모든 일은 그의 마음을 온통 찌르는 창과 같다. 그리스도만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자란 가장 고상하고 구별되며, 가장 안전하고 달콤한 삶을 사는 것이다.-토마스 브룩스)

70. “The doctrine of repentance is right gospel doctrine. Not only the austere Baptist, who was looked upon as a melancholy, morose man, but the sweet and gracious Jesus, whose lips dropped as a honey-comb, preached repentance; for it is an unspeakable privilege that room is left for repentance.” (WILLIAM PLUMER)
(회개의 교리는 바른 복음의 교훈이다. 침울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우러러 보는 근엄한 세례 요한이나 송이 꿀이 떨어지는 입술로 달콤하고 은혜롭게 말씀하시는 예수님도 회개를 전파하셨다. 회개할 여지가 있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플러머)

71. “Faith lives in a broken heart. ‘He cried out with tears, Lord, I believe.’ True faith is always in a heart bruised for sin. They, therefore, whose hearts were never touched for sin, have no faith. If a physician should tell us there was a herb that would help us against all infections, but it always grows in a watery place; if we should see a herb like it in colour, leaf, smell, blossom, but growing upon a rock, we should conclude that it was the wrong herb. So saving faith always grows in a heart humbled for sin, in a weeping eye and a tearful conscience.” (THOMAS WATSON)
(믿음은 상한 마음 안에 살아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는 눈물로 부르짖었다.” 참 믿음은 항상 죄 때문에 상한 마음에 머문다. 그러므로 죄를 만진 일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믿음을 갖지 못한다. 만일 의사가 모든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약초가 물 속에서 자란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색깔, 잎, 냄새, 꽃이 그 약초와 같아도 바위 위에 자란다면 잘못된 약초라고 결론내릴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하는 믿음은 항상 죄 때문에 겸손한 마음과 우는 눈과 슬퍼하는 양심 안에서 자란다.- 토마스 왓슨)

72. “There are three things that earthly riches can never do; they can never satisfy divine justice, they can never pacify divine wrath, nor can they every quiet a guilty conscience. And till these things are done man is undone.”(THOMAS BROOKS)
(세상의 부요가 할 수 없는 세 가지 일이 있다. 그들은 거룩한 공의를 만족할 수 없고 거룩한 진노를 잠재울 수 없고 죄책을 가진 양심을 쉬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일이 다 되기까지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토마스 브룩스,)

73. “Question: How shall we know that we love the reproofs of the Word? answer 1: When we desire to sit under a heart -searching ministry. Who cares for medicines that will not work? A godly man does not choose to sit under a ministry that will not work upon his conscience. Answer 2: When we pray that the Word may meet with our sins. If there is any traitorous lust in our heart, we would have it found out and executed. We do not want sin covered, but cured. We can open our breast to the bullet of the Word and say, ‘Lord, smite this sin.'”(THOMAS WATSON)
(질문: 우리는 말씀의 책망을 사랑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대답1. 우리가 마음을 살피는 일을 하고 싶어 할 때이다. 효력이 없는 약을 누가 사용하겠는가? 경건한 사람은 자기 양심에 효력이 없는 일에 머무는 것을 결코 택하지 않는다. 대답2. 말씀이 우리의 죄를 만나도록 기도할 때이다. 만일 우리 마음에 어떤 욕망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 제하고 싶어 할 것이다. 우리는 죄를 가리기보다 치료받기를 원한다. 우리의 가슴을 말씀의 거울 앞에 열어놓고 “주여 이 죄를 제하소서” 라고 말할 수 있다.- 토마스 왓슨)

74. “True union makes a true Christian: many close with Christ, but it is upon their own terms; they take and own him, but not as God offers him. The terms upon which God in the gospel offers Christ, are, that we shall accept of a broken Christ with a broken heart, and yet a whole Christ with the whole heart. A broken Christ with a broken heart, as a witness of our humility; a whole Christ with a whole heart, as a witness of our sincerity. A broken Christ respects his suffering for sin; a broken heart respects our sense of sin; a whole Christ includes all his offices; a whole heart includes all our faculties. Christ as King, Priest, and Prophet, and as a Mediator. Without any one of these offices, the work of salvation could not have been completed.” (MATTHEW MEAD)
(참된 연합이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든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하지만 자기 말만하고 그를 영접했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처럼 드리지 않는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는 말은 우리가 상한 마음을 가진 상하신 그리스도를 겸손의 증인으로 영접하며 온전한 마음을 가진 온전한 그리스도를 신실한 증인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상하신 그리스도는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다. 그 이유는 온전한 마음에는 그의 제사장 ,선지자. 그리고 중보자의 온전한 기능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직무가 없이 구원 사역은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매티유 미드)

75. “Heart-work is hard work indeed. To shuffle over religious duties with a loose and careless spirit, will cost no great difficulties; but to set yourself before the Lord, and to tie up your loose and vain thoughts to a constant and serious attendance upon him: this will cost you something. To attain ease and dexterity of language in prayer and to be able to put your meaning into appropriate and fitting expressions is easy; but to get your heart broken for sin while you are actually confessing it; melted with free grace even while you are blessing God for it; to be really ashamed and humbled through the awareness of God’s infinite holiness, and to keep your heart in this state not only in, but after these duties, will surely cost you some groans and travailing pain of soul.”(JOHN FLAVEL)
(마음의 일이란 정말 힘이 든다. 느슨하고 부주의한 영으로 종교적 의무를 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느슨하고 헛된 생각을 묶어 그에게 끊임없이 심각하게 시중들기란 쉽지 않다. 기도에 빈틈없고 용이한 말을 쓰는 경지에 이르거나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꼭 맞게 적절히 표현하기는 쉽다. 그러나 실제로 죄를 고백하는 동안 상한 마음이 되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유로운 은혜의 감동을 받으며 무한하신 하나님의 거룩함을 알 때는 정말 부끄러워하며 겸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의 마음을 지키며 그 의무를 다하려면 일연의 고통이 따르고 영혼의 진통을 갖게 될 것이다.- 존 훌라벨)

76. “My brethren, when God first began to love you, He gave you all that He ever meant to give you in the lump, and eternity of time is that in which He is retailing of it out.”(THOMAS GOODWIN)
(나의 형제들이여, 하나님이 먼저 당신을 사랑하실 때 그대에게 모든 것을 송두리채 주신다. 또 그는 영원 안에 그대에게 영원히 주신다 . -토마스 굳윈)

77. “What fools are they who, for a drop of pleasure, drink a sea of wrath.”(THOMAS WATSON)
(한 방울의 즐거움 때문에 진노의 바닷물을 마시는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토마스 왓슨)

78. “RULE. Hold this as a fixed verity, that is best which God wills. All that have come to God believe this, else they would have not come; for what could draw the heart from all its good but that which is greater than all? But though this is habitually in them, yet they do not always actually believe it; for what should be the cause of their excursions and deviations but because at present they think it better to walk in another way than the way of God.”(JOSEPH SYMONDS)
(법.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상의 것으로 요약된 다양성을 붙들어라. 하나님께 오는 모든 이들은 이것을 믿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에게로 오지 않는다. 무엇이 모든 선에서부터 마음을 끌 수 있으며 어느 것이 만유보다 더 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비록 법이 그들에게 습관화 되었어도 그들 은 항상 그것을 믿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의 탈선과 타락의 원인이겠는가? 현재 그들은 하나님의 길보다 자기 길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셉 사이몬드)

79.“There are no men more careful of the use of means than those that are assured of a good issue and conclusion, for the one stirs up diligence in the other. Assurance of the end stirs up diligence in the means. For the soul of a believing Christian knows that God has decreed both.”(RICHARD SIBBES)
(어떤 선한 문제와 결론을 확신하는 사람만큼 방법 사용에 주의 깊은 사람이란 없다.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 안에서 근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결론에 관한 확신은 방법으로 근면하도록 분발시킨다. 믿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이 둘을 명령하셨음을 안다.- 리차드 시브스)

80. “I am tempted to think that I am now an established Christian,–that I have overcome this or that lust so long,–that I have got into the habit of the opposite grace,–so that there is no fear; I may venture very near the temptation–nearer than other men. This is a lie of Satan. One might as well speak of gunpowder getting by habit of resisting fire, so as not to catch spark. As long as powder is wet, it resists the spark; but when it becomes dry, it is ready to explode at the first touch. As long as the Spirit dwells in my heart, He deadens me to sin, so that, if lawfully called through temptation, I may reckon upon God carrying me through. But when the Spirit leaves me, I am like dry gunpowder. Oh for a sense of this!” (ROBERT M M’CHEYNE)
(나는 든든한 신자로서 이런 저런 정욕을 오랫동안 이겨온 사람인양 생각하도록 유혹받아 은혜를 대적하는 길로 나가게 되었는데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어 다른 이보다 더 유혹에 가까이 노출되어 있을지 모른다. 이것이 사탄의 속임수이다. 마치 이것은 불에 저항하도록 습관되 어 다루어지는 그래서 불이 붙지 않는 화약이야기와 같다. 화약이 젖어있는 한 불이 붙지 않지만, 마르기만 하면 건드려 폭발할 준비가 완료된다..성령이 내 마음에 내주하는 한 죄에 대해 죽도록 해 주시므로 법적으로 유혹에 연결되어도 하나님이 나로 난관을 극복하게 해 주심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이 나를 떠나시면 나는 마른 화약처럼 된다. 오 이것을 느낀다면! – 로버트 맥췌인)

81. “It was a particular condescension of the Son of God, to be born of any of Adam’s sinful children. True honour in God’s account consists in holiness, and sin is to Him the vilest disgrace. Original sin in Christ’s mother had made her more contemptible and ignoble than anything else could; had she been an empress, it would yet have been to Christ an abasing of himself to derive his humanity from her. That a clean thing should come out of an unclean is strange; for though she was sanctified by grace, nevertheless she had not attained spotless perfection, but still had the stain and pollution of sin on her. As it is a disgrace to have a traitor as one’s father, so it is no less to have a sinner for one’s mother. Thus Christ, though without sin, would be intimately related to sinners, for whose sake he came into the world.” (SAMUEL WILLARD)
(아담의 죄를 가진 사람으로의 출생은 하나님 아들의 독특한 겸손이다. 하나님의 경영가운데 참된 명예는 거룩함에 있고 죄란 그 분에 대해 가장 악한 불명예가 된다. 그리스도 모친의 원죄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경멸되고 도외시 할 수밖에 없다. 불결한 데서 깨끗한 것이 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녀가 은혜로 헌신했다 할지라도 흠 없는 완전에 도달하지 못한다. 여전히 죄의 흠과 점이 그녀에게 있다. 사람의 아버지로 배신자를 갖는 것은 불명예가 되는 것처럼 사람의 어머니로 죄인을 잉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죄가 없다 해도 그리스도는 죄인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는 죄인을 위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 사무엘 윌라드)

82. “Though our private desires are ever so confused, though our private requests are ever so broken, and though our private groaning are ever so hidden from men, yet God eyes them, records them, and puts them upon the file of heaven, and will one day crown them with glorious answers and returns.” (THOMAS BROOKS)
(우리 개인 욕망이 너무 혼란스럽고 개인 요구가 거절당하며 개인의 탄식이 사람들에게 숨겨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보시고 기록하시고 하늘 파일에 정돈하신다. 어느 날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응답의 관을 씌우시고 보답하신다.- 토마스 부룩스)

퓨리탄의 지혜 제 1권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 “걸어 다니는 성경”, “성경대로 믿고 생활한 사람”으로 통한 16세기 말-17세기 초의 청교도들은 사도 시대 이래 복음을 가장 잘 표현한 세상의 성자들로 알려졌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신학적 지식과 신앙적 삶의 자취는 모든 방면에 도사리는 어두움을 몰아내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퓨리탄의 세계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그들의 진수를 맛보기에는 너무 많은 수고가 따릅니다. 이 퓨리탄들의 성경 묵상과 성경 강해와 설교 속에서 영감을 주는 말들을 하나 하나 생각하는 것이 그들을 알고 우리 삶에 적용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어떤 개인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달아 그대로 행하여 경험한 지혜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들은 개혁주의 퓨리탄 웹사이트의 하나인 Fire & Ice: Puritan and Reformed Writing에 나온 것들의 일부를 번역한 것입니다. 총 26명의 퓨리탄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의 책에서 발췌한 47 개의 말들을 정리하여 [퓨리탄의 지혜]란 제목으로 묶어 보았습니다. 영적 거장들이 믿고 따른 지혜를 접하여 신선한 도전을 받는 기회가 된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된것입니다. 혼란한 교훈의 광풍에 휩쓸려 가는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샘솟는 위로와 활력을 즐것입니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리라(사60:22)”는 주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는 우리는 먼저 나 자신 이 천의 왕국을 체험하고 나아가 우리 이웃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가득 채우기를 소원합니다. 선한 싸움으로 약하여 지쳐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퓨리탄의 지혜]를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1. “Christ is the sun, and all the watches of our lives should be set by the dial of the motion.”(Thomas Brooks)
(그리스도는 태양이다. 생활의 모든 시계를 그 분의 움직임의 다이얼에 맞추어야 한다.)

2. “Guilt is to danger what fire is to gunpowder.” (John Flavel)
(죄책감은 화약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위험하다)

3. “Neither be idle in the means, nor make an idol of the means.” (William Secker)
(수단은 소홀히 여겨도 안 되고 우상이 되서도 안 된다.)

4. “It is better to have a sore than a seared conscience. (Thomas Brooks)
(화인 맞은 양심보다 고통을 당하는 양심이 더 낫다.)

5. God sees us in secret, therefore, let us seek his face in secret, Though heaven be God’s palace, yet it is not his prison.(Thomas Brooks)
(하나님이 은밀한 가운데서 우리를 보시기에 은밀한 중에 그의 얼굴을 구하자. 하나님의 왕국인 천국은 그의 감옥이 아니기 때문이다.)

6. “The two poles could sooner meet, than the love of Christ and the love of the world.”(Thomas Brooks)
(그리스도의 사랑과 세상의 사랑이 만나는 것보다 기둥의 양 끝이 더 빨리 만난다.)

7. “Faith, without trouble or fighting, is a suspicious faith; for true faith is a fighting, wrestling faith.” (Ralph Erskine)
(고난이나 싸움 없는 믿음은 수상한 믿음이다. 왜냐하면 참 믿음은 싸 우고 씨름하기 때문이다.)

8. “Christ is the most cheap physician, he takes no fee, He desires us to bring nothing to him but broken hearts: and when he has cured us he desires us to bestow nothing on him but our love.”(Tomas Watson)
(그리스도는 가장 싼 의사이다. 그에게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필요 없고 단지 상한 마음만 가지고 오면 된다. 그는 우리를 치료하시고 우리의 사랑 외에 아무 댓가도 원치 않으신다.)

9. “All The Spirit’s operations, how rough so ever some of them may appear, are always useful to believers, and tend to make them fruitful. To this end the most sharp influences contribute as well as the more comfortable.” (James Durham)
(성령의 모든 역사가 어떤 때는 거친 것처럼 나타나지만 신자에게 항상 유익이 되며 열매를 맺힌다. 마침내 이것은 가장 세밀한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더 많은 위로를 안겨준다.)

10.“The law breaks the hard heart, but the gospel melts it. A stone duly broken, may be still a hard stone; but the gospel melt.”(Ralph Erskine)
(율법은 강팎한 마음을 부수지만 복음은 그것을 녹인다. 날카로운 돌이 단단한 돌을 부술지 모르지만 복음은 굳은 마음을 녹여버린다.)

11. “If we would talk less and pray more about them, things would be better than they are in the world; at least, we should be better enabled to bear them.(John Owen)
(우리가 그들에 관해 적게 말하고 더 많이 기도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최소한의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더 잘 참게 하기 때문이다.)

12. “No heart can conceive that treasury of mercies which lies in this one privilege, in having liberty and ability to approach unto God at all times, according to his mind and will.”(John Owen)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항상 그 분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자유롭고 능력있는 특권을 소유한 긍휼의 보화를 언제나 생각해야만 한다.)

13.“Christ is the most tender-hearted physician. He hath ended his passion but not his compassion. He is not more full of skill than sympathy, ‘ He healed the broken in heart, and bindeth up their wounds'(Psalm 147:3) Every groan of the patient goes to the heart of the physician.”(Thomas Watson)
(그리스도는 가장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신 의원이시다. 그의 고난은 끝났 지만 동정은 계속된다. 그는 기술보다 동정이 가득 차신 분이시다. 그는 상한 마음을 치료하시고 상처를 싸매신다.(시147:3) 병자의 신음 소리는 모두 그에게 들려진다.)

14.“O. Come! Kiss the Son, by believing in Him, and applying the benefits of this glorious transaction to yourself: and be who you will, if you kiss and embrace the Son, you shall find the glorious attitudes of kissing and embracing you, and hugging you in their arms, as a darling of heaven and a favorite in the house of God.” (Ralph Erskine)
(어서 오라 ! 그를 믿고 그의 영광스러운 공로를 자신에게 적용함으로 그 아들에게 입 맞추고 가슴에 품는다면 도리어 당신에게 입 맞추고 그의 가슴에 품고 팔로 쓰다듬으시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천국의 애인이나 하나님 집에서 사랑받는 자들처럼 말이다.)

15.“Sense of sin may be often great, and more felt than grace: yet not be more than grace. A man feels the ache of his finger more sensibly than the health of his whole body : yet he knows that the ache of s finger is nothing so much as the health of the whole body.”(Thomas Adams)
(죄의식은 은혜의식보다 더 크고 더 많이 느낀다. 사람이 자기 몸의 건강보다 손가락의 아픔을 더욱 예민하게 느낄 수 있지만 손가락의 고통은 몸 전체의 건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안다.)

16 “God dwells as glorious in a saint when he is in dark, as when he is in light, for darkness is His secret place, and His pavilion round about Him are dark waters.”(Wlliam Erberry)
(하나님은 어떤 성도가 빛 가운데 있을 때처럼 어두움에서도 영광스럽게 함께 하신다. 왜냐하면 어두움은 그의 비밀스러운 장소이며 어두운 바다는 그를 둘러싼 장막이기 때문이다.)

17.“Knowledge alone is like a winter sun, which hath no heat or influence; it doth not warm the affections, or purify the conscience, Judas was a great luminary, he knew God’s will, but he was a traitor.”(Thomas Watson)
(지식만은 열기도 영향도 없는 겨울 태양과 같다. 그것은 애정을 따스하게도 못하고 양심을 깨끗하게도 못하기 때문이다. 유다는 매우 총명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았지만 배반자가 되어버렸다.)

18. “God keeps open house for hungry sinner(Isa. 45:1,2). ”(Thomas Watson)
(하나님은 배고픈 죄인들에게 항상 집을 열어 놓으신다.)

19 ”Christ is the most bountiful physician. Other patients do enrich their physicians, but here the physician doth enrich the patient. Christ elevates all his patients: he doth not only cure them but crown them (Revelation 2:10). Christ doth not only raise them from the bed, but to the throne: he gives the sick man not only health but also heaven.”(Thomas Watson).
(그리스도는 가장 풍부한 의사이다. 다른 환자들은 의사를 부자가 되게 하지만 그리스도는 환자를 부요케 하신다. 그리스도는 자기 환자를 모두 높이신다. 이는 그들을 치료할 뿐 아니라 면류관을 씌워주기 때문이다. (계2:10) 그리스도는 침상에서 일으키실 뿐 아니라 보좌에 앉혀주신다. 병자를 건강하게 하실 뿐 아니라 천국에 올려주신다.)

20. In natures, we see God, as it were, like the sun in a picture; in the law, as the sun in a cloud, in Christ we see Him in His beams; He being ‘the brightness of His glory, and the exact image of His person.”(Stephen Charnock).
(우리는 자연 속에서 그림의 태양처럼 그리스도를 보고 율법에서는 구름에 가려진 태양처럼 그를 보지만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영광의 밝음과 분명한 인간적 형상을 본다.)

21.“Seek not to grow in Knowledge chiefly for the sake of applause, and to enable you to dispute with others; but seek it for the benefit of your souls, and in order to practice… Practice according to what knowledge you have. This will be the way to know more…[According to Ps. 119:100]’l understand more than the ancients, because I keep thy precepts.”(Jonathan Edwards).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거나 경쟁하기위해 지식을 추구하지 말고 당신 영혼의 유익과 실행을 위하여 구하라. 당신이 가지는 지식을 따라 살아가라 이것이 더 많은 것을 알게 하는 비결이 될 것이다. ( 시119:110) 내가 주의 규례를 지킴으로 노인보다 승할 수 있음을 깨달아라.)

22.“Whatsoever is good for God’s children they shall have it; for all is theirs to help them towards heaven; therefore if poverty be good they shall have it; if disgrace or crosses be good they shall have them; for all is ours to promote our greatest prosperity.”(Richard Sibbes).
(하나님 자녀에게 유익된 것은 무엇이든지 소유해야한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천국 향해 나아가는 그들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만일 가난이 유익하다면 그대로 받아야하고, 불명예나 십자가가 유익하다면 그대로 당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최대 번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23.“Examples do strangely charm us into imitation. When holiness is pressed upon us we are prone to think that it is a doctrine calculated for angels and spirits whose dwelling is not with flesh. But when we read the lives of them that excelled in holiness, though they were persons of like passions with ourselves, the conviction is wonderful and powerful.”(Cotton Mather).
(본이란 우리로 모방하게 하려는 이상한 매력을 끈다. 우리에게 거룩이 압도할 때 우리 육체와 함께하지 않는 천사나 영들에 적합한 교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그들의 뛰어난 거룩의 삶을 볼 때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되고자 하는 놀랍고 능력있는 확신을 갖게 된다.)

24. It is truth alone that capacitates any soul to glorify God.”(John Owen)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영혼으로 자라게 하는 것은 오직 진리뿐이다.)

25. “It is an undoubted truth that every doctrine that comes from God, leads to God ; and that which doth not tend to promote holiness is not of God.(George Whitefield)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께 이끄는 모든 교훈은 확실한 진리이지만 거룩을 증진시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26.”Pride is the shirt of the soul, put on first and put off last.”(George Swinnock)
(교만은 영혼의 셔츠다. 먼저 입고 마지막에 벗기 때문이다.)

27. “Most of God’s people are contented to be saved from the hell that is without; they are not so anxious to be saved from the hell that is within.”(Robert Murray Mccheyne)
(대부분의 하나님 백성은 밖에 있는 지옥에서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지 안에 있는 지옥에서 구원받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28. “The godly have some good in them, therefore the devil afflicts them; and some evil in them, therefore God afflicts them.”(Thomas Watson)
(경건한 사람은 그 속에 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가 괴롭히고 또한 그 속에 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괴롭힌다.)

29. “As God delightly in his own beauty, he must necessarily delight in the creature’s holiness which is a conformity to and participation of it, as truly as the brightness of a jewel, held in the sun’s beams, is a participation or derivation of the sun’s brightness, though immensely less in degree.”(Jonathan Edwards)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름다움 안에서 기뻐하시는 것처럼, 정도의 차이는 달라도, 태양의 밝음에 어떤 보석이 참여하여 비취는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에 순응하고 참여시킨 피조물의 거룩 안에서 기뻐하신다.)

30. “The Christian’s life should put his minister’s sermon in print.(William Gurnall)
(크리스챤 생활은 자기 목사의 설교를 자기 삶에 각인시켜야한다.)

31. “Thy sorrows outbid thy heart, thy fears outbid thy sorrows, and thy thoughts go beyond thy fears; and yet here is the comfort of a poor soul: in all his misery and wretchedness, the mercy of Lord outbids all these, whatsoever may, can, or shall befall thee.”(Thomas Hooker)
(슬픔이 마음보다 앞서고 두려움이 슬픔보다 앞서고 그리고 생각이 두려움보다 더 앞선다 할지라도 넘어뜨릴 수 있는 불행과 파멸 가운데 있는 어떤 가련한 영혼이라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긍휼은 준비되어 있다.)

32. “Christian Direction(그리스도인의 지침) (Samuel Rutherford)
(1) That hours of the day, less or more time, for the Word and prayer, be given to God; not sparing the twelfth hour, or mid-day, howbeit it should then be the shorter time.”
(그 날의 시간이 적든지 많든지 12시든지 혹은 정오든지 상관없이, 아니 더 짧은 시간일지라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바쳐야한다.)

(2) In the midst of worldly employments, there should be some thoughts of sin, death, judgement, and eternity, with at least a word or two of ejaculatory prayer to God.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께 기도 할 때, 죄, 죽음, 심판 그리고 영원에 관한 내용을 한 두 마디라도 반드시 아뢰어야한다.)

(3) To beware of wondering of heart in private prayer.
(개인기도 시간에 마음의 방황을 조심해야한다.)

(4) Not to grudge if you come from prayer without sense of joy. Downcasting, sense of guiltiness, and hunger, are often best for us.
(만약 기쁨이 없이 기도한다하여 꺼리지 말 것. 가끔 버림받은 의식과 죄감과 갈급증은 우리를 위해 최선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That the Lord’s Day, from morning to night, be spent always either in private or public worship.
(주의 날에는 항상 개인 예배와 공예배로 시간을 보내야한다.)

(6) That words be observed, wandering and idle thoughts be avoided, sudden anger and desire of revenge, even of such as persecute the truth, be guarded against; for we often mix our zeal with our wild-fire.
(진리가 핍박받는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갑작스러운 분노나 보복하는 마음을 경계하고, 말씀을 살핌으로서 방황하는 게으른 생각들을 피해야 한다.)

(7) That known, discovered, and revealed sins, that are against the conscience, be avoided, as most dangerous preparatives to hardness of heart.
(강팎한 마음에 이르는 가장 위험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양심에 맞서 알려지고 발견되고 드러난 죄를 피해야 한다.)

(8) That in dealing with men, faith and truth in covenants and trafficking be regarded, that we deal with all men in sincerity; that conscience be made of idle and lying words; and that our carriage be such, as that they who see it may speak honourably of our sweet Master and profession.
(사람과의 거래는 언약의 신실함과 진리로 대하고 양심이 게으름과 거짓된 말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모든 사람과 참신한 교제를 하여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아름다운 우리 주님과 그 신앙고백을 칭찬하게 해야 한다.)

33. “A proud faith is as much a contradiction as a humble devil.”(Stephen Charnock)
(자랑하는 믿음은 겸손한 척하는 마귀처럼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34.“Tis no easy matter to be saved. ‘Twas difficult work to Jesus Christ to work redemption for us. ‘Tis difficult work to the Spirit to work grace in us, and to carry it on against corruption, temptations, distractions.”(Philip Henry)
(구원받는 일은 쉽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구속 사역을 이루는 것은 어렵다. 우리 안에서 부패성과 유혹과 혼란과 맞서 은혜로 이끄시는 성령의 사역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35.‘Use thy duties, as Noah’s dove did her wings, to carry thee to the Ark of the Lord Jesus Christ, where only there is rest.”(Issac Ambrose)
(유일한 안식처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방주로 나아가기 위하여 노아의 비둘기의 날개처럼 그대의 의무를 다하라)

36.“When we love things baser than ourselves it is like a sweet stream that runs into a sink. As our love therefore is the best thing we have, and none deserves it more than God, so let him have our love, yea, the strength of our love, that we may love him’ with all our souls, and with all our mind, and with all our strength,’Lev 19:18″ (Richard Sibbes).
(우리가 물질을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달콤한 물줄기를 싱크로 흘 러가게 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인 사랑을 아무도 하나님 보다 더 가질 자격이 없다. 고로 우리의 혼과 마음과 힘을 다하여 그 분을 사랑하여 나오는 사랑의 능력을 그 분께 드리자.(레19:18)

37.“Christ heals with more ease than any other. Christ makes devil go out with a word (Mark 9:25). Nay, he can cure with a look: Christ’s look melted Peter into repentance; it was a healing look. If Christ doth but cast a look upon the soul he can recover it. Therefore David prays to have a look from God, “Look Thou upon me, and be merciful unto me'(Psalm 119:132)(Thomas Watson)
(그리스도는 다른 것보다 더 쉽게 치료하신다.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귀신을 좇아내시고(맛9:25) 그가 쳐다보기만 해도 고치신다. 베드로를 주목할 때 그의 마음이 녹아 회개했다. 이것이 그의 치료하는 눈이시다. 그리스도가 주목함으로 영혼이 회복됨을 알았던 다윗은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시119 :132)라고 간구했다.)

38. “Seek not to grow in knowledge chiefly for the sake of applause, and to enable you to dispute with others; but seek it for the benefit of your souls, and in order to practice…. Practice according to what knowledge you have. This will be the way to know more…[According to Ps. 119:100] ‘I understand more than the ancients, because I keep thy precepts.”(Jonathan Edwards)
(주로 박수갈채를 받고 이웃과 논쟁하기위해 지식 안의 성장을 구하지 말고 다만 자기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배운 지식을 따라 살기 위하여 그것을 구하라. 이로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119 :100에 의하면 ”주의 법도를 지킴으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고 말했다.

39. Remember the perfections of that God whom you worship, that he is a Spirit, and therefore to be worshipped in spirit and truth; and that he is most great and terrile, and therefore to be worshipped with seriousness and reverence, and not to be dallied with, or served with toys or lifeless lip-service; and that he is most holy, pure, and jealous, and therefore to be purely worshipped; and that he is still present with you, and all things are naked and open to him with whom we have to do. The knowledge of God, and the remembrance of his all- seeing presence, are the most powerful means against hypocrisy.”(Richard Baxter)
(그대가 예배하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기억하라. 그는 영이시며 신령과 진리 안에서의 예배를 받으시며 가장 위대하고 존엄하신 분이기에 장난 치듯 하는 생명 없는 말이 아닌 심각성과 경외의 예배를 받으신다. 그러 므로 순전한 예배를 받기위해 지금 그대와 함께 계시고 그대가 행하고 자하는 모든 것을 밝히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지식과 그의 임재에 관한 묵상은 외식을 이기는 가장 놀라운 수단이다.)

40.“The rattle without the breast will not satisfy the child; the house without the husband will not satisfy the wife; the cabinet without jewel will not satisfy the virgin; the world without Christ not satisfy the soul.”(Thomas Brooks)
(젖이 없는 달램이 젖먹이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남편 없는 집이 아내를 만족시킬 수 없고 보석없는 캐비넷이 신부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 없는 세상은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

41.“Neither place, parts, nay, nor graces, will exempts any man from falling. O believers, what need is there to be watchful and humble!” (James Durham)
(오 신자들이여, 어떤 장소, 어떤 부분, 어떤 은혜라도 타락의 자리에서 아무 누구도 제외시킬 수 없다. 다만 근신과 겸손이 필요할 뿐이다.)

42. “It is sure mark of grace to desire more.”(Robert Murray Mccheyne)
(더 많은 것을 사모하는 것은 은혜 받은 자의 확실한 표식이다.)

43. “Oh, Christians, look to your steps! When you have prayed against sin, then watch against temptation. Such as are more excellent than others, God expects some singular thing from them. They should bring more gloly to God and, by their exemplary piety, make proselytes to religion. Better fruit is expected from a vineyard than from a wild forest.”(Thomas Watson)
(오 신자들이여! 그대의 발걸음을 살펴라. 죄와 맞서 기도할 때 그대에게 몰려오는 유혹을 경계하라. 이 일은 다른 일보다 더 귀한 일이다. 하나님 은 이런 사람에게서 어떤 귀한 열매를 기대하신다. 그들은 경건한 본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더 많이 가져올 뿐 아니라 초신자를 신앙으로 살게 한다. 더 나은 열매는 들판 보다 포도원에서 따기 때문이다.)

44. “a ministry may fill his pews, his communion roll, the mouths of the public, but what that minister is on his knees in secret before God Almighty, that he is and no more.”(John Owen)
(목회는 교인들을 모아 성찬 떡을 주며 공적 요구를 채우는 일이지만 목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은밀히 기도하는 사람이다.)

45. “A faithful minister must see before he say.”(Edward Marbury )
(신실한 목사는 말하기 전에 먼저 봐야 한다.)

46. “He doth preach most that doth live best.”(John Boys)
(최상의 삶을 사는 목사가 가장 많은 것을 설교한다.)

47. “Antichrist is Mammon’s son.”(John Milton)
(적그리스도는 맘몬(물욕)의 아들이다.)

욥기와 함께 가정예배

욥의 경건(욥1:1-12) 찬 27장

아브라함시대로 추정되는 욥은 경건의 본이 되는 인물입니다. 에스겔과 야고보는 욥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어떤 점이 본받아야 될 것입니까?

첫째, 경건한 인격을 본 받아야합니다. 2절에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했습니다. 그의 지정의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인 공의와 공도를 행하는 인격을 욥에게서 보기 때문입니다.

둘째, 작은 죄를 두려워한 인물입니다. 자기 자녀들의 생일잔치에 마음에 지을 가능한 죄를 찾아 제사 드리는 경건의 수준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항상 그러했습니다. 생활에 정착된 것이란 말입니다.

셋째, 하나님도 인정하는 경건이었습니다. 사단 앞에서도 하나님이 칭찬할 정도였습니다(8). 복음 받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수준은 욥과 같아야합니다. 성령과 말씀을 순종하는 경건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눈에 드는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차 시험(욥1:13-25) 찬 247장

욥의 고난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한 면은 하나님이 연단하기위해 허락하는 것이고 다른 면은 죄를 짓게 하려고 마귀가 던지는 유혹입니다.

첫째, 소유물에 대한 시험. 네 차례의 긴급한 보고는 생각 만해도 아찔합니다. 도둑이 와서 약탈했고, 벼락 맞아 죽고, 떼거리의 의도적 공격을 받았고, 열 자녀들이 잔치석에서 압사당한 것입니다. 연거푸 당한 시련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둘째, 신앙의 태도. 재를 무릅쓰고 내려앉아 하는 말이 “주신 자도 하나님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오니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셔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의 손을 잡는 길이 그가 피하는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셋째,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온전할 때 온전하다는 야고보의 말이 욥에게 해당됩니다. 불평과 원망하기 쉬운 입술을 지켜 감사와 찬송을 했으니까요. 경건의 훈련이 그를 견고하게 만든 것입니다.

2차 시험(욥2:1-1-13) 찬 197장

욥의 경건은 또 한번 드러났습니다. 강도 높은 2차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입니까?

첫째,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악창으로 온 몸의 가려움증이 극심했습니다. 소유물 시험보다 더 예민한 시험입니다. 그러나 욥은 재에 앉아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살폈습니다.

둘째, 아내가 경멸했습니다. 마귀는 아내를 통해 그를 찌릅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말이 큰 고통으로 다가 왔습니다. 아내마저 신앙의 순전을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욥은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 가운데 하나같다”고 응수했습니다. 복도 받고 재앙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셋째, 친구 통한 공격입니다. 세 친구가 소문 듣고 와 온갖 예의를 갖추며 권고가 욥의 고통을 더하게 했습니다. 같이 금식하고 같이 있는 것이 위로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계시를 알기 전에는 그들의 권면이 도리어 큰 짐이 되었습니다.

어떤 시험 앞에도 살 수 있는 길은 주권을 인정하는데 있습니다. 이 신앙으로 나아갑시다.

욥의 탄식(욥3:1-26) 찬 337장

욥이 생일을 저주합니다. 왜 이런 약한 소리를 했는가요?

첫째, 하나님 앞에 선 인간 존재가 철저한 무능자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1-12)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영안을 열어 인생 밑바닥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 아래서 자기를 본 것입니다.(시36:7)

둘째,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가장 복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13-19) 동시에 그 빛 아래서 임마누엘이 최고의 행복임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를 아는 사람은 절대로 자살할 수가 없습니다. 도리아 창조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셋째, 일상생활 자체가 귀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평강과 안온과 안식이 이 연속되는 탄식과 아픔 속에서도 그 날의 사는 것 자체가 복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고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나로 족하다는 주님의 경지에 들어간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의 욥의 탄식을 소유하는 성도가 됩시다

엘리바스의 1차 권면(욥4:1-21) 찬 189장

욥의 고난을 목격하고 함께 재에 앉아 동참만 세 친구 중 연장자인 엘리바스가 욥을 처음으로 권면했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첫째, 은밀한 중에 저지른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건과 선행에 가리워진 죄를 회개하라고 다그칩니다.(6-7) 드러난 의를 기준삼아 진실을 토하라고 말합니다. 욥의 이성에 호소하여 은밀한 외식주의의 죄를 겨냥했지만 은혜의 안목이 부족했기에 욥을 진리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둘째, 그는 신령한 체험과 인생 경험과 해박한 신학 지식으로 접근했습니다. (12-15)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욥을 위로하고 권면하기에는 부족했고 도리어 죄를 범하는 자리로 나갔습니다.

셋째, 그는 욥의 경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계시의 조명만이 실상을 밝히 보고 해결의 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의와 은혜가 입맞추는 복음 안에서만 욥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빛 안에 거합시다(롬1:16-17).

엘리바스의 2차 권면(욥5:1-27) 찬 181장

엘리바스는 욥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주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 같으면 전능자의 경책을 경홀히 여기지 않고 그에게 구하여 환난에서 벗어나겠다고 말합니다. 그 기도응답으로 장수하다가 무덤에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짓을 하지말고 하나님께 의탁하라는 진리지식으로 권했습니다. 역시 그의 권면에는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간과하여 욥에게 적중하지 못하여 괴로움만 더했습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17) 는 그의 말이 진리였지만 개인에게 적용될 때는 또 다른 차원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교육과 진정한 카운슬링은 전적으로 성령의 몫입니다. 복음의 권면자로 부름받은 신자는 성령을 전적으로 의존하여 진리를 적용하는 법을 터득해야합니다. 그것은 골방기도로 성령이 역사하실 여지를 남겨놓고 겸손히 기다리는 일이 되어야합니다.

욥의 변증(욥6:1-30) 찬 144장

엘리바스의 능숙한 권면은 문제해결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무거운 짐을 더했습니다(15, 21-24). 그 때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자기의 분한과 재앙을 저울에 달면 바다 모래보다 무겁다고 탄식합니다(2-3). 자신이 당한 현실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음식을 보거나 만지는 것도 싫어했습니다(7). 그가 당한 고난은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바산의 황소에 눌린 것처럼 사람에게 버림을 당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까지 버림받는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대속의 고난으로 우리가 살아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그림자로서의 욥은 경외신앙을 유지하며 그의 말씀을 지키고 있었습니다(10). 그리스도가 큰 고통 속에서도 성경을 이루려고 “내가 목마르다(요19:28)”고 말씀 하신 것과 같습니다. 어떤 고난이 몰려와도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며 말씀을 지킬 때 반드시 소망을 체험합니다.

인간의 실상(욥7:1-21) 찬366장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에게 참 위로가 되기 위해 성도의 고난을 사용하십니다(고후1:4-5). 욥이 당한 고난이 어떠했습니까? 육체의 고통으로 불면에 시달리며 (4)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가 잠깐 사이에 놀라는 꿈을 꿉니다(14) .살은 썩어가고(5)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5,8).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숨이 막히기를 원했겠습니까?(15) 육체적 고난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정말 지옥같은 시간임을 당해 보지 않은 자는 모릅니다.

이런 중에서도 욥은 하나님의 주권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분초마다 시험하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을 의지한 것입니다(18). 그리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 그의 기도는 은혜 받을 그릇이 어떠함을 잘 보여 줍니다(21). 하나님 앞에 선 참 인간으로 돌아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성도로 삽시다.

빌닷의 권면(욥8:1-22) 찬337장

욥의 영적 경지를 이해 못한 빌닷은 여전히 율법의 잣대로 욥의 고난을 사정없이 비판합니다. 그가 한 말은 진리였습니다. 전능자를 구하면 살려주시며 빌고 또 빌면 돌아보시고 미약하나 창대한 날을 본다는 말로 위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갈대가 물 없이 자랄 수 없고 왕골이 진펄에서 날 수 없음같이(11) 욥의 고난은 은밀한 죄 때문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회개치 않으면 망하게 된다는 논리였습니다(22). 욥이 당한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한 그는 위로보다 중압감을 더해 주었습니다.

율법의 의는 복음 안에서만 꽃을 피웁니다. 율법의 의로는 결단코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무력을 안 바울은 곤고한 자신을 탄식하였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믿음으로 찬송했습니다(롬7:24-25). 형제의 고난을 복음의 빛 안에서 이해하는 지혜자가 되어야합니다.

주권의 손(9:1-34) 찬535장

모진 비판 속에서도 욥은 자아성찰을 통해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며(2) 지혜로우시며 전능하신 창조주요 나와 관계없이 모든 일을 은밀한 가운데 행하시는 섭리주 되심을 깨달은 것입니다(2-10). 그 분 앞에 선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말합니다.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이유 없는 고난으로 상처를 많게 하시며 숨쉬기가 힘들 정도의 괴로움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을 의식했습니다.(17-18). 욥은 친구들보다 더 높은 진리 안에서 자기 실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또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는 자리에서 욥은 하나님의 주인 됨을 알고 그만이 주시는 구원을 갈구했습니다(34).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이란 모든 일을 세밀한 사건까지 친히 다스리시는 주님의 주님되심을 인정하는 마음상태입니다.

비참에서의 기도(욥10:1-22) 찬363장

본문은 괴로운 심정에서 기도한 욥을 보여줍니다. (1) 그의 곤고함은 어떠했습니까?

첫째, 그는 고난을 허락하신 구체적인 이유를 알기위해 하나님께 따지듯이 질문했습니다(2). 주 앞에 선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전제로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 그 이유를 알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결백을 겸손히 주장하며 진토 같은 인생을 기억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4-9). 둘째, 그는 자신의 비참함을 여러 가지로 증거했습니다. 사자의 공격을 받은 사냥감 같으며(16) 군대 침략을 당한 전쟁 포로 같으며(17) 겨우 살아난 갓난 아이 같으며(18) 무덤에 던져진 시체(18)같은 비참함을 토로했습니다. 셋째, 그런 중에서도 욥은 겸손한 마음으로(15) 기도하기를 죽기 전에 자기를 구하여 영광 돌릴 기회를 달라고했습니다(21-22). 마치 죽기 전에 살려달라는 다윗이나(시41:13) 히스기야의 간구처럼(사38:16) 환난 날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 것입니다.

소발의 단견(욥11:1-20) 찬369장

역시 나아마 사람 소발은 경솔한 판단으로 욥을 책망하며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는 욥을 허망한 사람이라 했습니다(11-12). 겉모양만을 보고 자기 신앙지식과 자기의 경험의 빛으로 볼 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비취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욥을 악인으로 단정했습니다(20). 하나님과 죄와 언약에 관한 그의 지식은 모두 맞는 말이지만 욥에게는 자유보다 짐이 되었습니다. 마치 비료를 너무 가까이 주면 식물이 타 죽듯이 선한 율법이 성령의 빛을 통과하지 않을 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형제에 대한 권면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사귐이 전제되어야합니다. 진정한 빛은 하나님 앞에 만 머물러있기 때문입니다(요일1:7). 오직 계시의 빛 안에서 되어져야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허황된 분위기 따라 살지 말고 오직 참 빛이신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자기 들보를 뺀 후, 형제의 티를 뺄 수 있다는 주님의 원리를 반드시 기억합시다.

욥의 자아발견 (욥13:14-22) 찬 82장

욥은 고통 중에서도 어릴 때의 죄를 기억하며 “내 허물과 죄악을 알게 해 달라(23)”고 기도합니다. 회개는 책임감으로 나타납니다. 십자가 우편 강도가 같은 주님을 조롱하다가 “우리가 당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고백하며 책임을 느끼며 주님을 의지했을 때 그 날 즉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욥은 진정한 영적부요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고통 속에서 자아의 실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입니까?

1) 인생은 낙엽과 가시덤불 같다는 사실과 2) 하나님의 소망이 끊어진 인생은 나무보다 못하다는 사실과 3) 썩은 물건과 좀 먹은 의복 같다는 사실과 그리고 4) 하나님을 잃은 영혼은 전혀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 경지를 맛보셨습니까?

성령의 빛을 구하자(욥15:17-35) 찬177장

엘리바스는 욥의 부친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인생경험이 많고 신령한 체험이 깊은 신학자처럼 권고했습니다. 그 권고는 위로보다 욥의 고통을 더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나무랄 데 없는 전통적인 진리를 소개하고 지혜자의 말을 전합니다. 악인의 일생은 고통이며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었으며 환난과 고통이 침략하는 왕처럼 홀연히 오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마침내 그는 부요치 못하며 산업이 망하고 흑암에 처하고 하나님의 입 기운에 소멸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적응성있는 진리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성령의 조명이 없는 정통 신학은 거듭난 영혼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조명을 겸손히 구합시다.

은혜 안에서의 변화(욥16:1-17) 찬178장

섭리적 고난 가운데 있는 욥에게 그의 세 친구는 번뇌케 하는 위로자였습니다. 과녁삼아 쏜 화살에 적중한 희생물처럼 욥은 비참에 처했지만 그런 중에서도 놀라운 변화를 얻었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첫째, 주님의 주인되심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당하기 전, 제 잘난 멋에 살던 철부지한 인생은 하나님의 손아래서 연단됨으로서 자기의 주재권을 그리스도에게 양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둘째, 정결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연합이 일어난 증거입니다. 진정한 거룩과 정결함은 인간 속에는 건더기가 없고 오직 하나님과의 연합됨으로서만 얻어집니다. 성령이 오신목적주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셋째, 정결한 기도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른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참 기도는 고난의 구덩이에서 골방을 찾을 때 배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영생의 길을 가는 자의 체험입니다. 이 변화를 추구하는 성도가 됩시다.

고진감래의 소망(욥19:1-12) 찬539장

욥이 당한 고난을 더 자세히 묘사하는 본문은 주 안에서의 고생은 의미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무응답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이것은 시편에 나온 다윗 고난의 특징입니다. 그의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의 무응답의 고난을 예견하는 그림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뽑힌 식물처럼 소망이 없는 자신을 보고 괴로워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무 소망 가운데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바울의 심각한 약점은 요긴하게 쓰임받는 강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셋째, 군대가 침입하는 것처럼 중압감이 압도했습니다. 욥은 수치심, 외로움 같은 절대 고난을 인내와 수고와 견딤으로 이긴 것인가요? 결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당할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주 안에서 고진감래를 추구하는 성도가 됩시다.

순수한 믿음 (욥21:1-16)

욥에게도 다른 사람과의 비교함으로 오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악인은 부귀와 장수를 누리며 잘 되는데 자기는 고난 가운데 있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욥의 확신은 자신은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자기는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며 오직 그 만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박국 선지자의 확신처럼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밭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줄거워 한 그 믿음을 지켰습니다. 아삽처럼 종일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원수의 조롱 속에서도 낙망치 않고 하나님을 바라는 소망으로 충만했던 것입니다. 죄악문화로 세속화된 이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길은 오직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하는 믿음을 견지하는 것입니다. 이 순수한 믿음을 지키는 가정이 됩시다.

원망을 이기자 (욥23:1-17)

탄식하다 보니 욥은 원망하는 시험에 빠졌습니다. 어떤 원망입니까?

첫째, 하나님 보좌 앞에 나가 호소하며 변명하여 하나님의 대접을 알아 그의 뜻을 깨닫기 원했습니다. 왜 이런 원망이 일어났습니까? 그가 당한 재앙 때문이었습니다. 원망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만 해결됩니다.

둘째, 그는 다투지 않으시고 들으셔서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실 분은 정직자와 변론하시는 하나님뿐임을 확신하고 그의 의로운 판단으로 난관에서 벗어날 것을 예측했습니다.

셋째, 현실은 그가 계시지 않으시고 전후 좌우로 보이지 않으시고 만날 수 없고 뵈올 수 없게 됨으로 욥을 탄식시켰지만 연단 받아 정금처럼 되어 나오는 확신으로 충만케 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따라가며 입술의 명령을 음식 먹는 것처럼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를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경외 신앙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경외 신앙으로 원망의 유혹을 이깁시다.

욥의 깨달음(욥24:1-25) 찬337장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진 욥은 전능자의 때에 무지함을 탄식하면서도 그 중에서도 그 분의 의에 대한 지식을 소유했습니다.

첫째, 사람의 악행을 기억했습니다(2). 경계선을 옮기고, 양떼를 빼앗고, 고아의 나귀와 과부의 소를 빼앗고, 빈궁자를 몰아내며 세상의 빈궁 자가 숨어 지내는 악행을 보았습니다. 악의 비참함을 살필 때 겸손해지며 하나님에 대한 눈이 열립니다.

둘째, 소자들의 고통을 헤아렸습니다. 들나귀 같이 광야에서 식물을 먹고 남긴 곡식을 빼앗으며, 악인이 남긴 포도를 따며, 의복없이 밤울 세워 추위에 떨며 바위를 안고 자는 소자의 고통을 알았습니다(5). 고난이 이웃에게 눈을 돌리게합니다.

셋째, 고아의 옷을 전당잡고,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은 무자비한 악인 곧 광명을 배반한 자의 심판을 확신했습니다. 의의 하나님을 보는 눈이 뜨여진 것입니다.

고난은 나쁜 것만이 아닙니다. 도리어 고난은 인간의 실상과 하나님을 알게 되는 수련의 기회인 것입니다(9,13).

온전한 진리로 나가자 (욥26:1-14)찬547장

욥은 세 친구의 부분적 진리의 깨달음이 해가 됨을 말하면서 그것이 어디서 나왔느냐고 묻습니다.

첫째, 온전한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욥에게 만족을 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뿐입니다. 신자의 만족의 원천인 진리 지식에 있어서 차선책은 해를 끼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고인 물이 썪는 것처럼 온전한 진리의 자리로 나가지 않으면 쉽게 타락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사도는 온전한 자리로 나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하였습니다.(히6:1-2).

둘째, 욥의 연단된 인격은 창조주 섭리주 구속주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오직 예수 안에만 쉼이 있고 소망이 넘칩니다. 진리는 오직 예수뿐이기 때문이며(요14:6) 그의 말씀(성경)만이 진리이고 우리를 거룩케 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요17:17). 온전한 진리 안에 머무는 성도가 됩시다.

선한 양심의 능력 (욥27:1-23) 찬93장

욥의 순전을 지키는 삶은 그 안에 있는 선한 양심의 표현입니다. 본문에는 어떻게 말합니까?

첫째, 결단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며 순전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5). 선한 양심에서 나온 선한 결심은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근거였습니다. 정말 그는 궁창의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은 에스겔 앞에서 노아, 다니엘과 함께 욥을 교회의 본으로 삼으셨습니다(겔 14장)

둘째, 고난 속에서도 그는 은혜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6). 자기 평생 하나님의 의를 놓지 않겠다는 양심의 증거를 보입니다.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기에 성령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반드시 의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7-23). 선한 양심은 의의 길을 따라 갑니다. 고난 속에서도 욥이 선한 양심을 지키는 것을 볼 때 이미 감당할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선한 양심을 따라 삽시다.

섭리를 믿는 신앙(욥30:1-15) 찬455장

욥은 자기 친구들의 상황과 자신을 비교함으로 탄식합니다. 친구들의 아비는 자기의 경건만 못하며 그들의 경건 역시 욥에게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처지는 풀리지 않고 고생 구덩이에 떨어져있습니다. 이 때 욥은 하나님의 섭리의 손을 붙잡으며 하나님을 겸손히 바라보았습니다.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첫째, 11절에서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괴롭힘을 토로했습니다. 연단을 거친 정금 같은 욥의 신앙은 수천 년이 지난 후 신약교회의 경건의 모델이며 경건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허다한 증인에게 둘러싸인 복된 자였습니다. 둘째, 친구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당해도 하나님 섭리의 범위 안에 들어있음을 믿었습니다(1-11). 성을 파괴하고 군사들이 몰려오는 극한 상황에서도 자기 본분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의 보호의 호주머니 속에서 참 위로를 받았습니다. 섭리의 신앙에 참 위로가 있습니다.

환난이 주는 복 (욥30:16-30) 찬383장

욥이 당한 환난을 열거하는 본문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소망이 모두 무너진 상태(1), 뼈가 쑤시는 육체의 고통(2), 환자복 처럼 누추함(3) 그리고 티끌과 재에 앉아 기진맥진한 자리에 있었지만(4) 인생은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배운 것이 복이었습니다.

둘째, 기도 응답이 없어 바람에 휘날리는 영적 방황, 검은 가죽과 열기로 타는 뼈만 남았습니다. 자신은 불쌍한 자를 도와주었건만 하나님이 재앙을 허락하신 사실로 탄식하며 애곡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대로 되는 전적 무능을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고난의 순간에도 그를 헛되이 다루지 않으셨고 그의 자상한 사랑의 손길로 정금처럼 빚어 가셨습니다.

마음이 정결한 삶 (욥31:1-23) 찬202장

본문에 또 다시 나타난 욥의 삶은 얼마나 정결했습니까?

첫째, 그의 개인적 삶이 정결했습니다. 눈과 언약을 세워 허탄과 궤휼이 없었으며 공평한 저울로 자기 걸음과 마음과 손을 깨끗이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극성이 있는 죄악을 이겼습니다. 여인에게 유혹된 적이 없었습니다(9) . 둘째, 소자를 적극적으로 돌아보았습니다. 남종과 여종의 사정을 듣고 가난한 자의 소원을 들어 주었으며 부모처럼 고아와 과부를 돌보았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고아를 적극적으로 후대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재앙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경건의 생활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가 당한 고난을 통해 욥은 하나님을 더욱 더 두려워했습니다. 이 경외심이 욥을 정결하게 만든 것입니다. 마음이 정결한 자가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을 보는 자만이 정결한 마음을 갖습니다(마5:8).

욥의 의의 수준(욥31:24-40) 찬 265장

욥은 과거의 부요를 회상하며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는 어떤 순전함이 있었습니까?

첫째, 물질주의를 극복했으며 우상숭배를 금지했으며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원할 정도로 악을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자기 하인들에게까지 그의 순전을 인정받았습니다. 둘째, 나그네를 대접하며 큰 무리를 향해 의를 주장했습니다. 소송자가 없을 정도로 걸음마다 의로 가득 찼습니다. 농경사회의 일터인 밭도 그의 의를 안다고 할 정도로 의의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사도행전 20장에 나온 바울의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탐욕주의를 경계하고, 이타주의의 삶을 살았으며, 모든 면에 일절 깨끗했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으셨던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이면서 동시에 원수를 사랑하는 높은 수준으로 사셨기에 누구에게든지 허물을 찾으라고 도전할 수 있으셨습니다. 욥을 순전하게 만든 고난이 우리도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밤중에 노래하자(욥34:31-35:16) 찬43장

역사 속의 교회는 무수한 고난의 밤을 맞습니다. 영국의 퓨리탄, 프랑스의 위그노, 화란의 거지들 그리고 한국의 신사참배에 맞선 옥중 성도들은 모두 밤에 노래한 사람들입니다. 역대기서와 열왕기서의 역사도 세상 역사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난 중의 노래한 자들을 통해 그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욥에 대한 엘리후의 말대로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영혼의 밤, 건강의 밤, 시대의 밤, 환경의 밤에서도 말씀과 기도를 잊지 않는 사람은 노래하게 됩니다. 빌립보 감옥의 바울과 실라도 고난의 자리에서 찬미할 때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육체에 기적이 없어도 먼저 찬미할 때 영혼의 구원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도가 겪는 칠흑 같은 많은 밤은 값진 진리와 기도를 배울 수 있기에 정말 복됩니다.

모세의 노래

  • 본문: 요한계시록 15:1-8
  • 제목: 모세의 노래
  • 설교: 전화령 목사
  • 날짜: 2008년 4월 6일

본문의 한편에는 구원받은 자가 모세의 노래를 부르며 다른 편으론 정죄 받은 자가 일곱 대접 재앙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의 관심은 구원받은 자가 부르는 노래 곧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에 있습니다. 어린양의 노래란 그리스도가 구원의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모세의 노래입니까? 본래 이것은 이스라엘이 출애굽(15장)할 때 이스라엘이 노래한 것인데 여기에 왜 그 노래가 나왔습니까? 구약이 그리스도를 중심한 기록이란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밧모섬에서 요한이 받은 계시는 구약이 그리스도 안에 어떻게 완성이 되었는가를 보인 것입니다.

첫째, 모세 노래에서 어린양의 구원이 어떻게 완성되는지요? 심판이 완료되면서 완성되었습니다. 7-8 절에 하늘 성소에서 심판의 천사가 나오고 그 심판이 마치기까지 성전에 들어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심판 완료는 구원의 마지막 순서입니다. 이 둘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애굽 군병이 물에 빠져 죽을 때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신자들은 나사로처럼 불신자의 심판을 목격하나 서로 왕래할 수 없는 세계에 들어갈 것입니다.(눅24:44) 이 땅에 살며 억울한 일 당한 것이 그 때 다 들어납니다. 주님은 그 때에 모든 것을 다 드러내실 것입니다. 은밀한 기도, 은밀한 말, 은밀한 선행, 은밀한 죄가 하나 숨김없이 드러나서 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심판 사실 앞에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구원의 어떤 점을 찬양했습니까? 1)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사실을 찬양했습니다. 3절에 나옵니다. 창세기 3:15절의 원시복음에 보인대로 하나님이 친히 그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엘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하셨습니다.(창17:1) 모세 사역에도 계속 사람은 할 수 없다는 한계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이루십니다.(빌1:7,롬8:29) 2) 그리스도만이 거룩과 의라는 사실을 찬양했습니다. 4절에 보면 구원은 반드시 거룩과 의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두리뭉실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요구에 만족하셔야만 하십니다. 마귀의 참소를 막고 자기 백성을 완벽하게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완전한 죽음과 부활로 이 거룩과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그만이 중보자 대속자가 되실 수 있으십니다. 모세의 의와 거룩은 언제나 불완전했지만 그리스도의 의는 모두가 완전하십니다. 3) 열방 중 구원이란 사실을 찬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적 타락은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선민의식은 그들을 저주로 떨어뜨리는 독이었습니다. 교만하게 되고 하나님의 의보다 자기 의를 세우려는 에덴동산의 죄를 반복하며 극도로 치닿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모세이신 그리스도의 노래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