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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26:9 성령의 길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삼상26:9)

[설명]

기름부음이란 성령을 가리킨다. 구약의 3직분 왕, 선지자, 대제사장에게만 부은 기름부음은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울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어도 그의 왕권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을 알았다. 성령에 대한 경외심이다. 그만큼 성령의 인도에 예민했다는 것이다. 신약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소유한다.(요일2:27) 그래서 기름부음을 존중하는 다윗처럼 신자 하나 하나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성령의 세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겸손히 따라 갈 때 죄를 벗어나 의를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은 많은 사역보다 성령의 소리에 순종하는 마음을 더 원하신다.

이해할 수 없는 바울

바울은 다메섹 체험 이후 초대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로 쓰임 받았다.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이요, 율법학자요, 경건한 유대인이요, 헬라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삼층천 체험 및 많은 은사를 체험한 사람으로 신약의 절반 가량을 기록한 계시의 도구이다. 이만하면 얼마나 많은 것을 얼마나 재빠르게 응답을 받을만한가? 현대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일사천리요, 만사형통이요, 백전백승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로마서를 읽다보면 바울의 이해할 수 없는 면모를 본다. 그것은 그의 기도 제목과 그의 사업이 너무나 인간적이라는데 있다는 점이다. 세계의 수도, 로마에서 복음 전하는 것이 그의 기도 제목이었다. 그러나 단번에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 해 기도하면서 여러번 길이 막힌 경험을 했다. 믿사오니 하고 나갔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여러 해를 인내로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그것도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는 것이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 역시 당하는 고생이 많았다. 어려운 시험 틈바구니에서 고독과 난관과 싸우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었다. 우리도 주님 섬김에 기적, 능력, 희한한 일만을 추구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여러 고난 속에서도 인내함으로 주님 나라를 세우는 것을 더 좋아 해야 한다.

그는 로마 교인들에게 기도 부탁을 한다. 대사도 역시 성도의 도움이 필요한 약한 인간이다. 다메섹의 체험을 했다고 해서 자기 멋대로 나간 것이 아니다. 아라비아 3년의 연단, 예루살렘 교회의 원사도들에게 자기 교훈을 점검 받고 확인된 다음 나아갔다. 그리고 교회의 기도를 존중히 여기고 하찮아 보이는 일에도 기도를 부탁하였다. 그 기도 제목은 유대의 순종치 않는 자의 손에서의 구원과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김을 성도들이 받음직 하게 되기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는 것이 기도 제목이었다. 얼마나 실제적이요 얼마나 겸손하며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엿보이는가? 오늘날처럼 큰 비죤, 적극적 사업, 큰 목표, 큰 열매, 세대를 주름잡는 교회 능력,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여 자만에 차있거나 없으면 한숨 쉬는 가치관과는 얼마나 대조를 이루는가? 그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없는 자처럼, 겸손히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의 주시는 힘으로만 하려했다.

물량주의, 기적주의, 그리고 기복주의의 그릇됨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좋겠다. 바울의 인간적 섬김의 사역을 바라보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어야한다. 성경의 밝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 교회의 모습을 바로 발견하고, 우리 모두 바울처럼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인간이 되자! 인간은 인간이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적 깨우침이기 때문이다.

삼상 6:1-7:2

1. 블레셋 진영에 들어간 법궤는 여전히 일한다. 하나님 임재는 거기서도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권위를 높인다. 신자의 곤경 속에서도 주님은 손을 놓지 않으신다. 바벨론 포로 생활, 애굽의 포로 생활을 허락하심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열방에 증거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사모하게 하심에 있다. 고난은 조롱당함과 고통만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사모하게 하는 기도로의 초청이기 때문이다.

2. 인간의 고안된 우상은 무력하다. 인간은 자기의 난관을 주목하고 온갖 수단으로 막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위에서 일하신다.

3. 구원받은 우리의 할 일은 성령의 검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가장 복되다.
(2008.05.26)

소망의 하나님

미얀마에 사이클론의 재난에 이어 금주에는 중국에 진시황의 왕릉 관광지로 유명한 쓰촨성(四川省)에 진도 7.8도의 강진으로 4만여명이 죽고 실종된 사태가 일어나 세상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진정한 소망이 어디 있는가를 찾게됩니다. 로마서 5장 8절-13절에 바울은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았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소망은 한마디로 완성된 구원이었습니다. 구원 혹은 구속을 빼 놓은 소망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망, 비죤을 꿈꾸고 나간다 할지라도 죄에서의 구원이 없는 소망은 참 소망이 아닙니다. 그 마지막은 허무이기 때문입니다. 밭의 소출이 풍성하여 창고를 짓고 영원토록 즐기리라는 한 부자의 터지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보내 열방에 흩어진 택한 자를 구원하는 경륜(계획)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경륜이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안에 있는 자는 아브라함의 복의 근원이 되어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삼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소망을 이룹니다. 구속 역사가 모두 마치는 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골자입니다.

또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 중요한 소망을 이루려고 성부는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끊임없이 일하십니다. 영원토록 떠나지 않으시고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때로는 보슬비처럼, 때로는 불처럼 일하십니다. 이 사역으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현실화됩니다. 제일 큰 문제는 언제나 우리 자신입니다. 자신 속에는 언제나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정욕과 부패성이 돌덩이처럼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때로는 보이게, 때로는 보호색을 띄고 나타납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왕국을 꿈꿉니다. 경건을 이용하며 직분을 이용하여 소망 아닌 소망의 신기루를 따르는 것처럼 됩니다.

그러나 택한 자의 마음에 계신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심으로 참 소망의 길을 걷도록 능력으로 도와주십니다. 성령을 좇아 갈 때만 우리는 참 소망과 참 비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소망을 가진 자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산 소망입니다. 영원히 남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일시적 기쁨이 아닌 영원한 기쁨을 맛봅니다. 이것이 영생의 체험이며 이것이 성령 충만의 맛입니다. 이 땅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 소망과 기대를 거는 자가 아니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입니다. 이런 소망을 아는 자에게는 찬송이 흘러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처럼 이런 산 소망을 갖고 성경에서 샘을 파며 기도 속에서 소망을 꿈구며 성령의 인도가 무엇인지를 배우기 바랍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때야말로 우리으 소망이 더 선명해지는 순간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우리를 잘 인도하실 것입니다. 정해 놓으신 영원한 목적지를 향해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29편-50편 )과 함께하는 가정예배

여호와의 소리(시29:1-11)

시인은 온 우주와 세상만사에 꽉 찬 여호와의 권위(authority)의 영광(glory)과 말씀(words)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1) 여호와에게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 분명한 이유는 그만이 모든 영역에 왕으로 좌정하셔서 온 세상을 친히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3-9절에는 자연현상 가운데 친히 간섭하심을 지적하여 그의 왕되심을 밝힙니다. 그 분의 크고 깊고 넓고 높은 세심한 통치는 대양의 물결이나 뇌성, 꺾이고 부서진 레바논의 백향목, 폭풍우에 흔들리는 산림, 광야를 진동하는 천둥과 화염을 가르는 번개같은 자연법칙의 운행 뿐 아니라, 암사슴 한 마리의 낙태하는 일까지도 다 포함합니다.

이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하나님은 치료하시고 구원하셔서 의를 세우시는 절대 왕이십니다. 노아시대에 전면적으로 임한 홍수로 인해 일그러진 땅을 하나님의 입김으로 회복시키셨듯이 그분은 약속하신 말씀대로 자기 백성을 억만 죄 가운데서 구하시는 구원의 왕이십니다.(10)

그런데 다윗을 더욱 감동시킨 것은 이 놀라운 일을 이루실때 그 왕은 자신의 소리 곧 말씀으로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한 것이 그의 말씀이 온 우주에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성문화 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성경의 권위를 믿고 순종하는 이유는 말씀으로 만사를 친히 다스리시는 만군의 왕 여호와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그 주권과 왕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반드시 권능을 받고 평강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11) 누구든지 현재 있는 거기서 성경을 순종하기만 한다면 다윗처럼 그를 진실로 경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원한 감사(시30:1-12)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시작된 우리 구원은 자아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 생각을 공격하며 십자가를 팽개치도록 유혹합니다. 구약의 다윗도 이 유혹과 자아부인과 십자가 지는 과정을 거침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고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다윗의 처지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잠깐의 노염과 저녁의 울음이 있었습니다. 무슨 죄 때문이지 잘 드러나진 않지만 그는 진정으로 슬퍼하며 회개합니다. 그런 처지를 당할 때야말로 자아부인을 배우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목숨(자아)을 잃는 진리를 잘 배워야합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주로 높이고 그가 자기를 진토에서 건지셨음을 말함으로서 자아부인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주님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영혼깊이 배워 자기를 종으로 철저히 인정할 때 자기 목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은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마5:3)

둘째, 그는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자기를 죽이는 용광로의 불과 같습니다.(9-10) 기도의 골방에서 우리는 새롭게 빚어지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도 내용을 보십시오. 여호와만이 왕이시고 하나님의 긍휼과 도움만이 자기를 살리는 것을 알고 전적으로 그에게 매달립니다.(9-10)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를 나타내는 시간임을 봅니다. 생각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빌4:6-7)

셋째, 그 결과는 풍성한 삶이었습니다. 살아나 많은 열매가 맺히는 것은 죽을 때 오는 것입니다. 요동치 않는 신앙(6), 슬픔이 춤으로, 베옷이 기쁨의 옷으로 바뀌고(11) 영원한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12)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감사와 찬양은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노염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한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담대한 신앙 (시31:1-24)

신앙의 생명은 담력입니다. 또한 바울은 “너희 믿음을 스스로 시험하라”고 하며 확증이 없으면 버리운 자라고 까지 말합니다. 그래서 담력이 없는 작은 믿음은 불신앙이고 의심하는 믿음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고전13:5) 그래서 우리 주님의 우리에 대한 최대관심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신앙을 갖는데 있었습니다. 본문의고난 중에 보인 다윗의 모습이 그런 담대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담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첫째, 그는 하나님과 연합되어있음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믿음은 주님과의 연합입니다.(요1:12) 연합되었기에 고난당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는 두 번이나 자기를 구해달라고 그것도 속히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으며 자신을 지도하고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1-3,15-18) 예수와 연합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모든 좋은 것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영적부요로 인해 어떤 고난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감찰하심을 알고 담력이 생겼습니다. 다윗이 기도에서 원수의 흉악한 궤계로 그가 난관을 겪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허탄을 숭상하고 거짓입술로 은밀한 그물을 쳐 다윗을 궁지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께서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자기 영을 아셨고 그의 발을 넓은 곳에 두셨음”을 알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즐거움이고 찬양의 근거였습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14) 셋째,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담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연합된 주님이 자기를 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문제를 모두 주님께 위탁한 다윗은 담대한 신앙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강하고 담대하라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23)

담대한 신앙의 목표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맛본 하나님의 얼굴과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다루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환난을 이길 수 있게 합니다.

죄 사함의 은총(시32:1-11)

앞선 시편에는 고난 속에서의 구원을 감사하는 찬송이 많았지만 본문은 죄로 인한 절망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훗날 바울은 로마서에서 구원을 설명할 때 죄 가리움을 받은 자의 행복에 관한 다윗의 체험(롬4:7-8)을 인용하여 속죄의 은총을 설명합니다. 다윗이 맛본 죄 사함의 은총이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 그는 죄 사함의 은혜가 복중의 복임을 확신했습니다. (1-2) 허물이 용서되고 정죄를 당치 않는 자가 복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진정한 구속은 죄 사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엡1:7) 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진실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습니다. 그 행복을 누리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둘째 죄를 고백했습니다.(3-4) 죄 고백하지 않을 때는 종일 신음하며 심령이 메말랐습니다. 재갈을 물여 통제하는 말이나 노새처럼 미련한 삶을 살았습니다.(9) 그런 다윗이 죄를 토해낼 때 모든 악이 즉시 사해졌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으며 자기의 갈 길을 친히 알게 되었습니다. 홍수가 범람해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며 여호와만이 은신처임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6-8) 자기 죄를 인정하고 숨기지 않고 자복하였을 때 기억지 아니하시고 즉시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죄 자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2000년 전,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의 모든 죄가 처리된 것을 믿고 진실되이 죄를 시인하고 그 공로를 감사함으로 받을 때 죄 사함의 은혜는 내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죄 사함의 은총이란 하나님사랑의 체험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신뢰함은 하나님자신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성령이 부어지고 사랑의 경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10) 그 결과 여호와만을 즐거워하고 그를 찬송하는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에 거하기 위해 진정한 회개의 사람이 됩시다.

여호와를 찬양할 이유(시33:1-22)

시편 33편은 구원받은 성도의 찬양입니다. 형식적 찬양이 아닌 생명체의 움직임 같은 반응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찬송입니다. 구원받은 감격으로 영적 기능이 활발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어떻게 왜 찬양했습니까?

첫째,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것은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1)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인 하나님을 즐기는 것(enjoying God)은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맛 볼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의는 믿음으로만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으면 자연히 감사가 나오고 찬양하게 되고 그를 즐거워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감격으로 찬양이 가득 찬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둘째, 무엇으로 찬송해야했습니까?(2-3) 수금과 열줄 비파와 같은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했으며 무엇보다 영혼에서 구원의 감격으로 터쳐 나온 새 노래와 즐거운 소리와 공교한 연주로 찬양했습니다. 문화적 수단을 총동원하여 찬양하되 특히 자기 영혼으로 노래할 때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마리아처럼(눅2:), 빌립보 감옥의 바울과 실라처럼(행16:) 모든 지체를 찬양의 도구가 되게 해야합니다.

셋째, 왜 여호와를 찬양해야만 합니까?(4-5) 말씀의 정직 성과 하나님의 진실한 행사 곧, 정의, 공의, 사랑이 충만한 것을 보고 찬양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자신의 성품을 온 세 상에 가득 채우시기 원하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그의 진실과 의와 사랑을 나타내기 원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천지 와 바다, 만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그의 도모는 견고하며 영영히 섭니다. 바로 이 창조와 섭리의 말씀 에 사로잡힐 때 찬양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우리들은 모든 인생의 행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디어 그의 구원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여호와 경외 자의 노래(시34:1-22)

세상 사람들의 그릇된 경외와 달리 그리스도인은 마음 속의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경외심으로 인해 항상 여호와를 찬송할수 있습니다. 그 본중 하나가 시편 34편의 다윗의 경우입니다. 아비멜렉 앞에서 혹심한 고난을 당하는 중 드린 그의 찬송과 기도를 살펴보면 경외심이란 어떤 것이며 이 경외심을 가진 자에게 일어나는 체험과 이것을 증진시키는 길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첫째, 여호와 경외자란? 1-2절에 보면 경외란 참 믿음의 골자이기에 다윗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하며 환난 날에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만이 유일한 피난처이며 그 안에 있는 은혜 맛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영혼 깊은데서부터 여호와를 자랑하며 송축하게 되는 것이 산 믿음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리에서라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높이고 최고 경의를 드릴 때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경외가 회중의 경외로 나가기를 그렇게 원했던 것입니다.(3)

둘째, 경외자에게 임하는 복은? 1) 모든 두려움에서 건짐을 받습니다.(4-7) 앙망하는 자에게 여호와의 빛이 임하고 여호와 사자가 나타나 보호해주십니다. 2) 부족함이 없는 모든 좋은 것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9-10)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그의 선하심과 사랑을 맛보고 누립니다. (8) 3) 생명의 풍성함과 장수와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11-17)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는 절대 보호를 받습니다.

셋째, 그러면 어떻게 경외심이 증진됩니까? 자기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랑을 고백하며 환난 날에 그의 말씀을 묵상과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증진됩니다. 그리고 상한 마음으로 통회할 때 경외심이 생깁니다. 여호와 앙망하는 심령위에 임하는 능력을 체험하는 성도로 자라갑시다.

원수를 이긴 기도(시35:1-14) 찬393장

하나님의 원수는 성도의 원수이기 때문 에 다윗은 그들의 뜻이 좌절되고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기를 반복해서 구했습니다. (1-6, 19-24) 몰려오는 원수의 공격 앞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첫째, 원수의 실상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은밀하게 친 그물에 졸지에 죽이려는 공격을 먼저 알때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싸움의 대상인 악령은 주로 까닭 없이 찾아 오기 때문에 억울한 일, 원망과 불평이 터지 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둘째, 믿음으로 이깁니다. 13절에 다윗은 원수가 병들 때 금식기도하며 간구했습니다.

원수갚음이 주님 손아래 있음을 알기에 그의 주권에 맡기고 그 안에서 쉬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기도로 다윗의 품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평안을 빌 때 합당치 않으면 빈자에게 돌아온다는 원리입니다. 공연히 하 나님 자리에 서서 좌지우지 하면 실패합니다. 멸망할 원수의 공격을 받을 때 죄를 범치 말고 기도로서 복 받을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복된 삶의 실상(시36:5-14) 찬28장

다윗은 악인의 죄를 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과 의 안에 거하는 복된 사람이었 습니다. 그가 받은 복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그의 인자를 맛보는 것입니다.(7) 극 에 달한 죄악이 엄습해도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맛보며 누렸습니다. 둘째, 그의 의의 피난처에 숨는 것입니다. (7) 원수의 궤 계가 자기를 어지럽혀도 그는 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에게 주신 믿음의 의 때문에 절대 보호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그는 하나 님의 의로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셋째, 하나 님의 빛 아래서 자기를 보는 것입니다. (9) 자기의 빛으로는 정확히 볼 수 없습니다. 오 직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만 자기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칼빈이 말한대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 때만 자기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믿음을 가진 우리는 복락 의 강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의인의 보장된 삶(시37:1-40) 찬265장

다윗은 악인의 삶과 대조하면서 의인의 삶이 어떠해야 됨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악인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행악하는 자는 반드시 끊어지고(9) 팔은 부러 지고(17),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잠시 후에 없어지고(10,35), 타는 기름의 연기처럼

없어지고 끊어집니다.(20,38) 둘째, 그러나 의인은 반드시 복을 받습니 다. 그의 의는 정 오의 빛처럼 빛나고(6), 땅을 차지하며(9,11, 29,34) 풍부한 화평을 즐기며(11) 적은 소유로도 풍부를 맛보며(16) 기근에도 풍족하며 (19), 아주 엎드러지지 않으며(24) 절대 보호 안에서 (32 -33)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39) 셋째, 그러므로 의인은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를 바라며 참아 기다려야 합 니다. (1-3) 행 악자로 인해 불평하지 말고 그를 의뢰하며 선을 행하고 그를 기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의인의 낙입니다. 금생과 내생에 절대 보장받는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가정이 됩시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시38:1-22)찬421장

시인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고통을 당합니다. 아프고 구부러지고 온 종일 슬퍼하는 비참함에 떨어졌어도(6) 하나님의 구원만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본문은 탄원으 로 시작 하여 탄원으로 마칩니다.(1,22) 첫째, 징계는 사랑의 증표이기에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버림받은 자는 덤덤하여 절 망으로 마치지만 사랑받는 자는 현실을 정결 케 하려는 소원으로 행동합니다. 죄에 대해 자기를 찌르고 누르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2) 동시에 그는 자기의 죄를 고하여 생명에 이르는 회개로 나갔습니 다. (18) 마음에 불안과 초조를 느끼며 신음 합니다. 자기 탄식을 토로하며(9) 심장이 뛰 고 기력이 쇠하고 눈빛을 잃습니다.(10) 하나 님 앞에 침묵하며 반박하지않고 죄를 슬퍼 하며 고합니다.(13-14,18) 악인의 조롱을 그 대로 받으며 하나님께 살려고 부르짖습니다. (16) 참 회개의 자리가 소망의 시작입니다. 이 자리에 바로 서는 가정이 됩시다.

소망의 하나님(시39:1-13) 찬 539장

건강의 위기에 떨어진 다윗은 하나님께 회복을 구합니다.(13) 어떻게 구했습니까?

첫째, 그는 진실한 말로 아뢰었습니다. (1 -2)“혀로 범죄치 않기 위해 입에 자갈을 먹이 리라”고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말, 선한 말을 들으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래 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정미로운 기도를 드리기 위해 겸손하고 진지하게 문을 두드려 야합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시기 때문 입니다.(마7:7-9) 둘째, 그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습니다.(7) 이런 진실은 오직 하나님과만 상대로 기도하는 자에게 생깁니다. 골방 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는자 에게 응답하십니다.(마6:6) 셋째, 그는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12) 자기 질병이 죄의 결과인 줄 알고 진실로 회개했습니다.(8,11) 그래 서 용서를 구하며 자기가 없어지기 전에 회 복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모든 병에서 건지시는 하나님만이 우리 가정의 소망입니다.

새 노래의 하나님(시40:1-17)찬49장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만나 주시는 하나님 임을 다윗을 수렁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통 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상태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떨어져서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영적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연단하여 귀하게 쓰시려는 뜻이 있기 때문입 니다. 그때 그가 한 일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찾았습니다. 큰 긴장을 가지고 속히 구해달라고 부르짖 으며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산 믿음입니다. (롐33:3) 하나님은 4가지 응답을 주셨습니다. 1) 그의 발을 반석위에 두게 하셨고 2) 새 노래를 부르게 하셨고 3) 하나님의 뜻을 즐기 게 하셨으며 4) 주의 사랑과 진실로 충만케 하셨습니다.

가정이 어려운 지경에 있다면 다윗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으면 기이한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치료의 하나님(시41:1-13) 찬 530장

죽을 병에 걸린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구원받아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13) 그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는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원수들은 그 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며(7-8) 간악한 마음 으로 악담하며 이를 널리 알렸습니다.(5-6) 그때 다윗이 한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빈약한 자를 권고 하며 원수의 불의가 무너지기를 간구했습니 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기를 구하며 (11-12)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10)

그의 믿음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 만이 구원자임을 찬송하였기 때문입니다.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 며 겸손히 보좌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반 드시 응답하십니다. 약이나 의사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는 가정이 됩시다.

하나님을 바라라(시42:1-11) 찬 409장

본문에는 낙망할 때 하나님을 사모하는 진리를 가르쳐줍니다.(5,11)

첫째, 갈구의 동기(3,4). 원수의 조롱과 영 혼의 낙망과 불안이 주님을 갈구하게 했습니 다. 원수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고 조 롱할 때 시인은 주야로 눈물이 음식이 되었 습니다. 둘째, 갈구의 내용. 어떤 물질이나 세상이상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생존하시는 하나님(2), 반석이신 하나님(9), 생명이신 하나님(8)을 구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갈구했습니다. (1) 최소한 세 장소를 옮겨 다니며 기도하기 를 힘썼습니다.(6) 셋째, 갈구의 결과.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잠기게 되었습니다.(7- 8) 폭포와 파도 소리 속에서 주의 사랑을 느꼈 습니다. 그리고 밤중에 찬미의 기도가 저절 로 흘러나왔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바울과 실라처럼 터쳐 난 것입니다. 이런 갈구로 채워진 가정이 행복합니다.

극락의 하나님(시43:1-5) 찬117장

그리스도인 삶의 활력소는 육적인 즐거움 (pleasure)이 아니라 영적인 즐거움(joy)에 있 습니다. 어떻게 이 내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나요?

첫째, 하나님을 힘으로 삼을 때 생깁니다. (2) 육신의 건강, 명예, 권력, 정신세계에서 오는 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힘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도 하나님만을 자기 힘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진리의 빛에 거할 때 생깁 니다.(3) 3절에 나온 빛은 은혜(사랑)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은혜와 진리의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의 말씀인 성경에 있다는 것은 정말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시편기자처럼 빛 과 진리를 보내달라고 기도할 때 성령으로 참 희락을 얻습니다.(롬13:14) 셋째, 하나님을 만날 때 찾아옵니다. 빛과 진리가 성령으로 임하기 위해 우리는 가만히 있지 말고 나아 가야합니다. (마7:7-9) 이것이 믿음 입니다.

은혜의 원천(시44:1-8) 찬178장

성도가 원수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하나님 의 구원을 어떻게 사모했습니까?

첫째, 과거 역사를 회고함으로 구원방법 을 배웠습니다. 스펠죤은 3절을 가리켜 “은 혜의 원천”이라 했습니다. 오른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며, 팔은 하나님의 절대능력을 가 리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은 혜를 이미 받은 자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그들은 현재 구원을 확신 하였습니다.(5-8) 이 성도는 “하나님만을 의 지하리라(5-6)”, “구원은 주께 로 온다(7)”, “주님만을 자랑하리라 (8)”는 확신으로 충만했 습니다. 어두움의 압제가 몰려올 때 자기의 아집 에 머물지 말고 은혜의 원천, 생명의 원 천, 평강과 보호의 원천이신 삼위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합시다. 처음 받은 은혜의 때를 회상하며 현재의 확신으로 무장하는 가정이 됩시다.

왕이신 그리스도(시45:1-14) 찬352장

고라자손은 다윗, 솔로몬 같은 인간 왕을 예찬하지 않고 인간 왕의 상징을 통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찬양한 것입니다. 메시야 왕 에게 주어진 은혜는 어떤 것입니까 ?

첫째, 충만한 은혜입니다. “그 왕은 인생보 다 아름다워 입술에 은혜를 머금었다”고 했 습니다. 성경은 은혜가 사무친 왕의 말씀입니 다. 둘째, 절대승리를 얻습니다. 원수의 염통 을 뚫도록 영전에 능하신 왕이기에 항상 이 기고 또 이기십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뱀의 머리를 부순 후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셋째, 그 왕은 만왕의 왕으로 경배를 받으십 니다.(11) 이스라엘의 경배는 온 세상에 있는 자기백성의 경배의 본입니다. 5-6절에 만민 이 엎드리고 성부가 하나님이라고 호칭한 것 이나(히1:8) 만세에 기억되고 영영히 찬송받 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기 때문 입니다.(17) 그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 든 보화는 신자의 것입니다. 이 약속이 성취 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그 왕께 절대 순종 함으로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어 야합니다.

환난 날의 도울 분(시46:5-14) 찬463장

성도가 환난 당할 때 담대할 이유는 진정 으로 도울 왕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 구이기에 현실의 도움이 되십니까?

첫째, 그는 피난처시기 때문입니다. (1 -3)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고 바다가 흉용해도 우리를 붙드신 그 분의 손은 요동치 않고 실 패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거하는 성은 온 세 상의 중심이며 모든 능력의 근원입니다. 둘 째, 그는 전능하신 통치자이기 때문입니다 . 활을 꺾고 창과 수레를 부수어 스스로 하나 님 되심을 드러내십니다. (9) 열방과 세계에 가장 높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셋째, 이 왕을 어떻게 섬길까요? 새벽을 깨워야합니다. 그는 첫 시간과 첫 자 리를 바친 종들의 기 도를 반드시 들으시고 도와주십니다. (2) 그 리고 은밀한 중에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10) 모든 구원을 친히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 분께 맡기고 쉬 어야합니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시47:5-14)찬512장

본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밝힙니 다. 왜 찬양해야합니까?

첫째, 그는 만유의 주임이기 때문입니다. (2)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친히 다스 리는 분이십니다. 온 우주의 일월성신을 간섭 하실 뿐 아니라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까 지 아실 정도로 자상하게 다스리십니다. 둘 째, 그는 택한 자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3-4) 그런 중에 특히 선택한 일부의 사람들 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에서 환경오염, 심지어 지구 온난 화 현상도 그리스도인의 책임소관입니다. 셋 째, 그는 열방을 다스리시는 왕이기 때문입니 다.(8) 그의 통치는 이스라엘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해당됩니다. 핵 문제도 하나님 손 안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 든 방패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9) 유일한 왕이신 그 분께 우리 자신을 드리며 모든 악기와 지혜로운 시와 그리고 손뼉치며 즐거운 소리로 찬양을 돌려야합니다.

영원하신 우리 하나님(시48:1-13)찬421장

일반적으로 여호사밧 왕 때 일어난 사건으 로 알려진 본문은 암몬과 모압과 에돔 연합 군을 기도로 승리한 것을 찬양하는 노래입니 다. (대하 20:19, 25,36) 그 주제는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영원히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2) 어떻게 보호하십니까?

첫째, 하나님이 친히 피난처가 되십니다. (1-8) 1-2절에는 여호와와 시온산을 찬양 하 고, 3-6절에는 방어도 하시고 공격도 하시는 유일한 피난처라는 사실을 보이며, 8 절에는 하나님이 견고케 하셨음 찬양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로 인도하십니다.(9-13) 하나님은 인자와 공의가 충만하십니다. 오늘 날 이것을 맛보고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세상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그의 사랑과 공의를 사모하며 그의 형상을 보고 그렇게 변하는 것을 인생의 제일 목표로 삼아야합니다.

말씀 의뢰자의 영광(시49:1-12)찬219장

고라자손의 찬송시인 본문에는 물질주의 자와 하나님 경외자를 대조하여 하나님 계 시(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삶을 살라고 권고 하고 있습니다.

첫째,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은 교만하여 물질을 하나님처럼 섬깁니다.(6) 그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으며 모든 명예와 소유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며 장래의 빛은 일시 동안 반짝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11)

둘째, 이와 달리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의인은 장래의 보장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영접하여 환난 중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 습니다.(5) 이 담력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지혜 와 명철과 비유와 오묘한 말로 표현된 성경 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는 자에게는 죄악의 물결이 엄습할지라도 영적 담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환난 날에 주를 찾아라(시50:1-23)찬480장

다윗의 음악장, 아삽의 12시편들 중 최초 의 찬송시인 본문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 께 나아갈 방법과 결과를 가르쳐줍니다.

첫째, 예배함을 나가야합니다. 하나님과 제 사로 언약했기에 제사로 나오기 원십니다. (1-5) 하나님 앞에 드린(8) 감사의 제사를 (14) 하나님은 영광스럽게 받으십니다.(23) 둘째, 감사와 서원과 기도로(14) 나갈 수 있습니다. 감사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반 응하는 것이고 서원은 언약에 대한 반응이며 기도는 이 둘의 실제적 표현입니다.

셋째,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 앞에 드린 산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셔서 고난에서 건져 주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리에 서게 합니다.

모든 제사의 총화인 기도로 나가는 성도는 반드시 광야에 백합화가 피고 오아시스가 터지는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환난 날 에 낙심치 말고 주를 찾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