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기도 향연

잘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있다. 홍해 앞에서의 이스라엘처럼 진퇴양난에 가로 놓일 수 있다. 믿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다 잘되어 가고 고난과 문제가 하나도 없더라고 하는 말은 정말 진리가 아님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그렇게 능력 많은 바울에게도 가시가 있었고 그렇게 믿음 좋은 아브라함에게도 고난이 언제나 따랐다. 성령의 능력 받은 사도들, 초대교회의 불덩어리 같은 그들의 현장에는 도리어 고난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이룬 것이 더 많았다. 신자들의 이러한 말은 자칫 잘못하면 거짓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주의해야한다. 구약의 경건의 사람, 승리의 사람, 지혜의 사람인 히스기야에게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앗수르의 18만 5천 군사를 죽이는 대승리를 이룬 직후에 생긴 문제이기 때문이다.

“네가 병들어 죽으니 네 집을 처치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최후통첩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작정이다. 누가 하나님의 작정을 회피하겠는가? 그런데 이 고난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뜻을 정하시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고난이란 통로를 지나가게 하신다. 히스기야의 개인에게는 신앙의 연단을, 이스라엘에게는 더 큰 승리를 주시려는 뜻이 계셨고 또한 하나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엘샤다이” 하나님(전능자) 이심을 만 천하에 증거하는 기회였다. 그런데 고난에는 정말 괴롭고 답답하고 가슴을 도려내는 각고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열왕기하 20장을 읽다 보면 히스기야가 어떻게 이 고난을 대처했나를 살핌으로 하나님은 어떻게 그의 뜻을 드러내셨으며 그 축복의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나를 배운다.

첫째, 그는 은밀한 기도를 드렸다. 벽을 향하여 하나님만을 상대로 기도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응답을 받는 기도의 중요한 조건이다.(마6:6)

둘째, 그는 자신의 진실과 헌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그의 평상 헌신이 기도 응답의 공로는 아니지만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는 동기가 된 것이 확실하다. 사실 이것이 그의 믿음의 표현이다. 이 믿음의 태도는 그 과정을 지나면서 생긴 것이다.

셋째, 그는 통곡했다, 그만큼 진실했다. 하나님은 진실의 기도를 들으신다. 자기 목숨 하나 구하는 것도 있었겠지만 먼저 하나님 나라를 걱정한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그의 병만 고치신 것이 아니고 그 나라를 구원하심을 보기 때문이다. 이런 기도의 과정을 통하여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았고 분에 넘치는 축복을 받았다. 태양이 15도나 물러가는 증거를 볼 수 있었다.

현재의 어려움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때야말로 하나님 보좌 앞에 가까이 나가 돕는 은혜를 받는 기회임을 알고 무릎을 꿇자.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부르고 부르짖자. 그만을 상대하여 나아가자. 기도의 향연이 내 속에서 보좌를 향하여 계속 솟아오르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