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가라사대

창조의 아름다움은 성령의 뜨거운 사랑의 역사와 함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 하라”할 때 “…하게 되었다”. 말씀의 능력이 이 세상을 무에서 유로 만들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으로 만물이 이루었다고 말한다.(히11:3)

동서양을 막론하고 창조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답답한 사상들이 많다. 진화론을 주장하거나, 유출설을 주장한다. 유출설이란 이 세상있기 전, 만물의 원인, 태원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 태원에서 잡다(만물)가 나왔다고 한다. 플라톤도 만물 전에 있던 이데아(Idea)에서 만물이 나왔다 한다. 이데아니 태원이니 하는 것은 그 이상의 세계를 모르는 어두움에서 온 생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사색으로 이 세계를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물의 근본을 아는 것은 오직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설명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믿지 않는 자는 근본을 모르기 때문에 이 고민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계시인 성경을 믿기에 그 속에 보인 만물 창조의 시작이 말씀으로 시작되었음을 안다. 그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음을 믿는다. 그 말씀은 무엇이 아닌, 누구인가에 해당되는 인격적 신을 예상케 한다. 우리는 요한복음 1:1절에 “태초에 계신 말씀” 이 창조자임을 본다. 그 분은 육신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만물이 그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고 그분을 위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마음에 있는 사상을 말로 전달하듯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는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의 역사를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창조된 이 세상은 말씀으로 다스려지고 말씀을 중심에 둘 때 질서가 생기고, 의미가 생기며, 밝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창조의 왕관인 인간은 그 말씀으로 인해 살도록 되어있다. 이 말씀을 떠난 인생은 그 시작부터가 잘못되지만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먹고 사는 자는 에덴의 복을 누리는 세계를 알게 된다. ”가라사대“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듯이 가라사대이신 그리스도가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시고 그 구원의 말씀을 인간 언어로 기록한 성경(written words)을 주어 말씀으로 거듭난(벧전 1:23) 그리스도의 사람을 아름답게 하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이다. 내가 구원받은 자라는 고백은 바로 이 복을 값없이 받은 자라는 뜻이다. 이것이 내 가슴에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다.(요4:14)

우리는 가라사대를 많이 사용함으로 우리 구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조금 조금 알게 된다. 말씀 앞에 바로 서서 말씀이 열릴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말씀이 어둠을 헤치고 새 역사를 이룬 창조적 도구였음을 알게 된다. 지금 그 자리에서 그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창조의 역사를 기대하라. 엠마오 제자들의 마음에 드리운 흑암의 장막을 벗겨주시듯이 흑암은 물러가고 현재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정녕 주의 말씀이 현재의 나의 빛이요 나의 등불임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