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그의 제롬(Jerome of Prague 1416)

독일의 콘스탄스에서 쟌 후스가 죽기 3개월 전, 제롬이라는 보혜미야 학자가 그 도시를 은밀히 찾아갔다. 벌써 비엔나 감옥에서 도망쳤던 그는 그의 친구 후스를 돕기 위하여 아무 보호도 없는 독일에서 자기 길을 담대히 걸어갔다. 제롬은 후스가 믿고 따르던 존 위클리의 문서를 체코말로 번역하였다. 곧 잡힐 수밖에 없는 사실을 느낀 제롬은 안전한 활동과 후스에 대해 들은 바를 탄원하는 편지를 담대하게 황제와 콘스탄스회의에 보냈다. 그러나 거절되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한 그는 보혜미야로 돌아갔다.

그는 결코 그 곳을 본향으로 생각지 않았다. 독일의 작은 마을을 통과할 때 슐츠바하 공작이 불법적으로 그를 체포하라고 한 집행관을 보냈다. 목을 감싸며 채워진 사슬에 묶인 그는 마치 자신이 퍼레이드 중심에 있는 것처럼 콘스탄스로 돌아가게 되었다. 말 탄 사람들과 다른 경호인들에게 둘러싸여 환난이 기다리는 저질 감옥으로 끌려갔다.

쟌 후스가 순교를 당한 후에 콘스탄스 회의는 제롬이 말하는 것을 모두 거절했다. 그들은 그가 설득하는 지혜를 가진 학자인 것을 알고 크리스챤 믿음을 방어하는 그의 능력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의 변호를 요청했으나 다시 기각을 당했다.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얻지 못한 그는 이렇게 소리쳤다.

“이것이 잔인한 일이 아니면 무엇이냐? 나는 340일을 감옥에 있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비참과 궁핍이란 없다. 너희들은 나에게 자신을 변호할 최소한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너희들은 이 세상의 지혜와 위엄과 거룩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말이나 모습이 매우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너희의 성품이 더 지혜로와 지면 질수록 어리석은 곳으로 떨어지려고 더욱 주의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나 자신의 변호와 사람들의 변호와 크리스챤의 변호를 위한 것이다. 아무리 그 어떤 방법으로 내게 시련의 과정이 적용된다 해도 그것은 장래에 영향을 미칠 변호로다.”

교황권을 우롱하고 핍박한 6가지 죄목과 크리스챤 신앙을 혐오한다는 죄로 고소당한 후, 그들은 11일 동안 그의 발꿈치를 묶어 달아두었다. 더 악한 고문으로 위협 당한 그는 묶여있었다. 그는 구두로 후스와 위클맆의 문서가 거짓되다고 했으나 감옥으로 돌아가 더 나은 진술로 반박했으며 후스와 위클맆을 충분히 지원하기로 맹세했다. 종교회의는 그를 반박하는 107개의 새로운 죄 몫을 만들어 그가 화형을 당하기 전 마지막 말을 하게 했다.

제롬은 역사를 통한 진리의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과 차이를 밝히 말한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거했다. 제롬이 행한 모든 것, 위클맆이 행한 모든 것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자기 나라 백성들에게 로마교회가 오도한 교훈들을 벗기는 일이었다. 그들은 복음 자체만이 모든 신자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가르쳤다. 즉 교황은 다른 사제와 다를 바가 없고 성찬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피와 살과 뼈가 아니라는 사실과 프로테스탄트 사상을 따르는 많은 다른 교훈들을 가르쳤다.

그 때, 로마 교회는 벌써 쟌 후스를 죽게 하여 위클맆 교훈을 사라지게 했고 지금 프레이그 제롬을 화형시켰다. 불을 붙이는 화형대 장작더미 위에서 찬송하는 그의 마지막 말은 “불 속에 있는 나의 영혼을 그리스도 주께 드립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후스와 위클맆 같이 제롬은 성경이 실제로 말하는 것을 알고 기독교 위에 있는 어떤 권위들을 따르지 않도록 사람들을 격려했다. 제롬, 후스 그리고 위클맆의 일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틴데일 같은 인물들이 성경을 영어와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