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선교 (6)

선교여행도 여행이니 만치 많은 것을 보게 하고 새로운 정보를 알게 하고 무거운 짐을 잠시나마 덜어버리는 여유를 가짐으로 홀가분하게 했다. 갈 때 14시간, 올 때 12시간을 한국에 체류하며 보지 못한 내 조국의 발전을 보니 신나는 일이다. 갈 때는 여동생 부부의 배려로 서재운 목사님의 목회지인 의정부 제일 교회에서 잠시 교제를 나누고 백화점처럼 잘 지은 교회의 옥상에 자리 잡은 게스트 룸에서 쉬었다. 내가 이런 곳에서 대접을 받아도 되는가라는 생각으로 황송했다. 조국을 떠난 지도 거의 30년이 다 되어온다. 그 때만하더라도 교회가 돈이 없이 버둥거리고 유신정권, 광주사태 등이 휘몰아친 정국이라서 답답했는데 지금은 위치가 달라진 것이 공항 건물부터 그 증거가 보인다. 캄보디아에서도 영어 못지않게 한국어를 배우려 하고 한국에 가서 돈 버는 것이 그들의 꿈이라니 얼마나 그 위상이 높아 졌는가? 교회 건물도 보통 좋은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바로 살려고 발버둥 치며 성경공부, 기도하는 일에 특심을 보이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올 생각을 갖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 서비스가 너무 좋았다. 불편한 몸에 휠체어 서비스를 받으니 너무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내가 걸을 수 있고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으나 들어가며 나오며 보안 검사받느라 벗고 짐을 열고 점검받는 일이 너무 번거로워 혹시 몸에 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 도움을 받았는데 너무 대접이 융숭했다. 쌈밥을 비행기 속에서 먹을 정도로 너무 다양해 진 서비스를 보았다. 서비스는 그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돌아올 때 12시간 호텔에서 잠깐 쉴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 점심도 공짜다. 마침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황정식 목사님께서 친히 오셔서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가셨다. 항상 조용하고 묵직하고 인내심이 많고 진실한 그의 인격을 대할 때마다 포근함을 느낀다. 혼란의 때에 성문교회를 목회하며 오늘의 열매를 나타낸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군대 제대하자마자 처음 교육전도사로 부름 받아 갔을 때 처음 만나 그의 자취방에서 손수 라면을 끓여 대접하시던 따스한 섬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강 목사님은 기도의 경지를 따를 수 없는 분이라면 황목사님은 견디는 경지를 따를 수가 없는 분으로 생각할 정도이다. 나도 캄보디아 사역에서 그들을 견디며 기도와 말씀으로 잘 섬길 것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 또래들은 큰 교회 목회하고 신학교 총장하고 야단인데 나는 왜 이런 자리에 있는가? 나의 중풍 후유증 치료는 이제 막바지에 달했나?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지금이라도 열심히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은데 건강으로 제약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답답한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활동에 좀 느릴 뿐 지장이 없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번에는 온종일 6시간 강의했는데도 건강하니 정말 많이 좋아진 것이 확실하다. 다음번에는 한국에 들러 적절한 강의를 하는 기회를 가지고 싶었다. 목회의 설교, 성경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는 일, 크리스챤 신문사에 가정예배 설교를 격월로 내는 일도 있지만 그동안 훈련된 나의 신학과 나의 신앙을 정리하여 온 세계에 나가 교회를 견고하려는 소원이 있다. 브니엘 신앙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일이다. 디모데전후서, 호세아서, 설교와 그리고 성경해석학은 우리 교회에서 먼저 한 것이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온 세계에 전하고 싶다. 주여 내게 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