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처음 캄보디아를 갔을 때의 메콩강 주변은 파리 떼가 득실거리는 곳으로 지저분한 빨간 흙탕물이란 인상만 남았는데 이번에 갔더니 많이 변화되어 있었다. 번화가에 있는 한 식당에서 미국식 저녁을 먹으면서 바라 본 밤거리는 마치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라라 식의 유럽 풍경을 생각할 정도였다. 원래 이 나라가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건설된 건축양식이 유럽풍이 많았다. 간지 2주 만에 귀국하는 이근철 목사님과 함께 그곳에서 식사했는데 왕궁 앞에 있는 메콩강 주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불과 1-2년 사이란다. 거기서 월남의 호치명시까지 버스로 6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한다. 그 강은 위로는 중국에서 시작되어 남쪽의 월남과 연결된 메콩강 지류로서 고기를 잡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관광도 하고 심지어 먹기도 한다. 문맹이 70%로 가난한 나라 지저분한 나라 불교의 니라, 그리고 킬링필드의 아픔을 가진 나라인 캄보디아에 말씀의 바람이 불고 성령의 강수가 흘러 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날이 속히 오려면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진정한 경건의 본이 필요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일에 나를 부르시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의 물결처럼 복음의 생수의 강이 그들의 마음에 흘러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고 즐거워하며 동남아시아의 죽어가는 영혼들 속에 그들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놀라운 일을 꿈을 꾸어 보았다.
귀국 하루 전에 뚝뚜기(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이발소에 갔다. 미국에서 15불 주어야 깎을 수 있는 것을 1불에 깎았다. 원래는 75세트 인데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1불을 받았다. 같이 간 기스나도 1불, 마사지로 1불을 주었다. 미용실을 같이 하는 곳으로 미용은 5불 남자 미용은 2불이란다. 정말 달러의 힘이 우세한 것을 느꼈다. 자동차 수리도 150불 정도의 일이 5불이면 해결되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1000불이면 외국인들이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한 달에 50불 혹은 100불 정도로 산다고 한다. 다음에 오면 운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학교가 있는 곳은 프놈펜 국제 공항에서 15분정도 되는 거리에 삼층 건물로 잘 지어져 있다. 학교 동네에 시장이 들어서 있어 학교식사 재료를 사기위하여 교수나 학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작년에는 피사이와 함께 그 시장 안을 걸어 다니면서 살펴보니 꽤 먹을 만한 재료들이 많이 눈에 띄였었다. 과거 영등포시장과 수산시장을 생각하게 했었다. 쌀도 팔고 코코낫도 깎아서 팔고 생선도 팔고 돼지고기 오리알 그리고 열대 과일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바나나도 여기처럼 큰 것이 아니라 작은 애플 바나나이고 수박도 작은 것이고, 사과, 리찌, 파파야 ,듀리안 등을 팔았다. 마직막 날이라하여 유목사님 내외 분이 과일의 황제라는 듀리안과 여왕이란 망고스텐을 가져와 맛있게 먹었다. 여기서도 듀리안은 간혹 먹어 그 맛을 아는데 그곳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제철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유목사님 내외분의 따스한 섬김으로 모기 한번 물리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왔다. 선배 선교사들의 사랑으로 용기가 솟아난다. 9월에 다시 올 때에는 나도 무엇인가 섬겨야 할 것을 생각해 보면서 그들에게 주 영광을 위하여 장수와 평강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했다.
가기 한 달 전부터 피부 알러지가 생겨 요란을 떨다가 완치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갔기 때문에 온갖 약을 준비하고 갔는데 더운 지역에서 땀이 나니까 더 가려웠다. 혈압약을 빼 먹어서 구하기가 힘이 들었다. 마침 동역자 에스라 목사님의 사모님이 병원 원장이라서 같은 것을 구하기가 어려웠으나 겨우 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긍휼로 피부 알러지도 한약을 2주 먹고 완치할 수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