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왕이 자기 백성의 마음을 시작에서 결과까지 능력으로 다스리심이 자연계를 말씀으로 다스리심으로 보여졌다. 구약에서 홍해에 길을 내시거나(출14:21) 요단강을 가르거나(수4:7) 천둥으로 원수를 파하는 일이나(삼상7:10) 3년 6개월 가문 땅에 비를 내리시는 기적(왕상18:1)의 목적은 자기 백성을 믿게 하시려는데 있었다. 신약에도 각종 질병들의 치료(마4:24)와 오병이어로 대중을 먹이시고(요6:1-15) 물 위로 걷는 사건(요6:16-24)을 통해 법칙을 초월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어 자신의 신성을 들어내셨다. 특히 마가복음 4:35-41에 나온 광풍을 잔잔케 하시는 계시 속에 두 가지 사실 즉, 하나는 능력이고 다른 것은 그 통로인 믿음이 강조된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말씀을 대입할 때 능력이 나타났다. 어두운 바다 위를 배를 저어 항해하는 평범한 상황에 광풍이 일어나(37) 거친 파도로 두려워하자(40)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는 수고(39)가 어우러진 다양한 행위 속에 그 나라는 능력으로 나타난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교회 그리고 세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들이다. 구원 속에 무수한 문제가 있음을 보인 것이다. 문제없는 구원은 가짜이다. 마귀는 기적주의, 요행주의 및 한탕주의의 길을 택하게 한다. 성경에 아무 문제없이 살아간 사람이 누구인가? 모두 문제가 있었다. 위대할수록 큰 시험을 통과한 자들이다. 이것은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넓은 길의 평안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주와 함께 죽으러 가는 사람들이다.(요11:16)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14:22) 신자는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함으로 도약의 기회로 삼는 지혜를 가진 자이다.
둘째, 믿음을 통해 능력이 나타났다. 주님께서는 깨우는 제자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시기를 “어찌 믿음이 없느냐?” (다른 사본에는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로 되어있음)고 말씀하셨다. 그들 속에 믿음을 찾으신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다면 위태로운 상황을 지켜보며 인내함으로서 신앙의 유익을 더 많이 얻었을 것이다. 인내가 결여된 믿음은 능력을 상실한다. 연약한 자리에서라도 주님은 온전한 진리를 배우기를 원하셨다. 믿음은 오직 주님과 그의 말씀에만 뿌리를 내리고 연합하는 것이다. 그때 주님은 풍랑을 꾸짖으심으로 잠잠하게 하셨다. 말씀의 권능은 대단한 것이다. 이것을 신실히 믿고 따라 가는 것이 신앙이다.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도 앞선 법궤를 따라 그 주변을 돌면서 마지막에 소리쳤을 뿐이다. 메시야를 만난 시므온과 안나의 믿음 역시 받은 성령의 계시를 따라 한 것뿐이다. 일상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믿음의 삶이다. 한 날의 괴로움을 그날로 족하게 여기며 내 속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믿음이다. 신자는 문제가 일어날 때 더욱 더 말씀을 붙들어야한다. 그때 능력과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광풍이 일어날 때 우리는 주 안에 거하는 일에 익숙해야한다.(요15:5 사46:4) 하나님의 나라는 이 믿음으로 성장하고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도전하여 역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