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이 무시될 때

기독교의 신앙은 식물의 성장처럼 작은데서 큰 것으로, 씨앗에서 열매로 나아가는 자연적 생명운동이다. 그래서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는 생각과 태도와 섬김은 결코 바른 열매를 나타낼 수가 없다. 이것을 성경은 수많은 비유와 직접 언급할 뿐 아니라 신자의 실제 삶에서 배워지는 중요한 진리이다. 겨자씨 한 알의 위력이 큰 산을 옮길 수 있으며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주인의 상을 받고 즐거움에 참여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스룹바벨 앞에 놓인 큰 산은 평지가 되리라고 하신 약속은 작은 일에 대한 성실함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하셨다.“작은 날이라 하여 무시하는 자가 누구뇨?”라고 반문한다.

신앙의 승패는 큰 일 보다 작은 일들 곧,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지며 주님을 매일 따름에 좌우된다. 죄 고백도 작은 죄부터 시작될 때 참 용서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작은 일을 무시할까? 기독교가 하나의 운동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작은데서 솟아나는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문지방 밑에서 스며 나온 물이 온 세상에 흘러 생수의 강을 이룬 것처럼 기이한 생명의 역사는 언제나 최소한의 작은 단위 곧, 겸손에서 시작된다.

작은 일이 무시되는 것은 기독교의 길이 아니다. 말씀묵상이 작은 일일까? 기도하는 일이 작은 일일까? 자기 영혼을 건사하겠다는 몸부림에 많은 시간을 드리는 것이 작은 일일까? 자아부인이 작은 일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도리어 큰 일 중 가장 큰 일이 바로 현실의 작은 일에 성실하려는 행동이리라. 달란트 비유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지극히 작은 일을 충성한 종에게 상이 주어진 것은 기독교의 생명이 작은 일에 대한 성실함에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불경기로 고생하는 이 때, 신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작은 일을 경멸한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돌이키는 일이어야 한다. 규칙적인 성경읽기, 정기적인 예배참석, 말씀 묵상 시간 지키기, 기도하기. 십일조 내기, 교회 봉사하기, 전도하기 … 등,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점검해야한다. 마치 의사가 어떤 질병의 최소의 원인인 바이러스를 중요하게 여기듯이, 수학문제를 푸는 학생이 플러스와 마이너스 부호를 제대로 붙였는가를 살피듯이 자기의 영적 상태를 현미경을 통해 보듯이 작은 하챦은 일들을 살피는 일을 할 때 이미 문제는 해결과 새로운 길을 보게 될 것이다. 반면에 큰 일을 한다고 야단법석이면서도 지극히 작은 일을 경멸히 여긴다면 거기서부터 실패가 시작될 것이다. 아름다운 포도원의 구멍을 내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만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곱 고을을 점령한 자보다 자기 마음을 제어한 사람이 진정한 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