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와 함께하는 가정예배

하나님의 탄식(사1:1-17) 찬317장

구약 복음기자로 일컫는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자상하게 보여줍니다. 초두부터 이스라엘의 배은망덕한 죄에 대한 선지자의 탄식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합니까?

첫째, 배은망덕의 죄는 신지식과 관계된다는 사실입니다.(2-4) 양육 받은 자식이 은혜를 잊고 거역한 짐승보다 못한 그들의 죄는 하나님 아는 일에 힘쓰지 않을 때 생긴 것입니다. 문을 열어 놓으시고 지금도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 외식의 죄는 기도응답을 가로 막습니다.(12) 그렇게 정성스러운 제물을 가져왔으나 경외신앙을 상실은 그들은 성전마당만을 밟는 외식에 떨어졌기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진실위주의 삶만이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일을 추구하며 그와의 교제를 힘쓰는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이 뱀독 같은 무정한 세상에서 진정 자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치료책(사1:18-31) 찬187장

불 경건, 외식, 배은망덕이 경건과 진실과 감사생활로 회복되려면 하나님의 치료를 받아야합니다. 어떻게 치료하셨습니까?

첫째, 소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주홍같고 진홍 같이 붉은 죄라도 눈과 양털처럼 정결케 됩니다. 아무리 막히고 도저히 치료될 수 없을 지라도 주께 나오면 소망이 생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만이 치료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요일1:9)

둘째, 주와 교제함으로 치료됩니다. “와서 변론하자”는 말은 교제하기 위하여 믿음과 순종의 자리로 오라는 초청입니다. 주님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우리는 완전한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로서 그에게 부지런히 나갈 때 소망이 일어납니다.

말라기 예언대로 치료하는 광선이 발하는 이 시대에 의로운 태양이신 그리스도께 부르짖어 완전한 치료의 자리로 나갑시다.

말일에 일어난 구원(사2:1-22) 찬313장

이사야서에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강림이 예언되었습니다. 말일에 일어날 그리스도의 구원은(2-3) 어떻게 나타납니까?

첫째, 높은 곳에 우뚝 선 예루살렘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교회를 가리키며 만방이 거기로 몰려오며 온 땅을 진동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의 가정교사인 율법이 거기서 나옵니다. 이것은 복음 안에서 온 세상에 흩어진 자기 백성이 몰려 올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둘째, 그 빛 안에 사는 교회로 이루어집니다. 5절에 여호와의 빛 안에 거하는 교회는 주님만이 높아지고 우상이 철폐되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22) 성령 충만한, 진동치 않는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 세계 중심인 미국도 여러 이유로 흔들릴 수 있으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서 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 속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해야합니다.

말일의 징조(사3:1-12) 찬335장

유다의 심판 직전에 일어날 사건을 보인 본문은 복음 운동과 함께 일어날 어떤 징조를 보입니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 유다의 의뢰하는 것을 끊어 버린신다고 했습니다. (1-3) 양식, 물, 선지자, 용사, 전사를 제하심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영광의 눈을 촉범할지라도(8)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영광을 다른 것에게 뺏기지 않으십니다.

둘째, 지도력을 약하게 하십니다. 아이와 적자가 지도자가 되거나(4) 아이가 학대하는 일은(12)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증거입니다.

셋째, 의인과 악인의 기준은 믿음에 놓였습니다. 말일에는 복음의 빛이 더 밝히 드러나기 때문에 믿는 자와 불신자로 나누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말세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복음 노선을 따라 겸손히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심판의 조건(사3:13-4:1) 찬334장

심판징조인 우상숭배와 역리적 행동 외에 심판의 어떤 다른 조건을 볼 수 있습니까?

첫째, 지도자의 탐욕(13-15), 가난한 자를 짓밟고 불의로 치부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지도자는 언제나 주님의 마음을 가져 신령과 진리의 예배에 집중해야하지, 재물이나 명예를 따르지 말아야합니다. 언제나 탐욕의 올무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시온 딸의 교만(16), 모든 윤리적 죄는 교만에서 나옵니다. 교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데서 자연히 생깁니다. 결국 아담의 자율주의의 전철을 답습함으로서 중심 잃은 자동차처럼 엉뚱한 것에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리스도 중심하여 겸손으로 충만한 삶 곧 가난한 마음을 지키는 길뿐입니다.(마5:3) 이 일을 인도하기 위해 오신 성령님을 좇는 일에 힘씁시다.

정결케 하시는 분(사4:2-6) 찬190장

이번에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구원 핵심인 죄를 하나님이 친히 어떻게 해결하시는 가를 보였습니다.

첫째, 2절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란 그리스도가 구원의 싹으로 오심을 예고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자신만이 완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실 뿐 아니라 그의 공로로 자기 백성을 아름답게 하십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로 그 완성을 은혜로 얻은 교회는 여호와의 싹이 돋아남으로 점점 아름다워 집니다. 내가 할 일은 그 안에 달라붙어 그리스도가 그 열매를 나타내시도록 겸손히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둘째, 4절에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시온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심은 성령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구속의 전주곡처럼 이사야 시대에 일하신 성령은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더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죄 많은 세상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은혜 위에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로 살아갑시다.

포도원의 노래(사5:1-12) 찬315장

유다의 죄악과 그 참상을 포도원관리로 비유한 이사야는 어떻게 회개할 것을 촉구했습니까?

첫째 비유의 초점, 포도원에 심겨진 극상품포도나무가 들 포도를 맺힌 점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1-2) 최상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최하의 열매를 맺혔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최고의 은혜를 받은 신자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힘써야합니다. 둘째, 비유해석, 3절에 보인대로 하나님과 예루살렘 간에 일연의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울타리와 담을 허시고 질려와 형극이 나게 하시고 구름을 명하여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3-6) 공평이 포악으로, 의로움이 부르짖음으로 나타났습니다. 탐욕과 황폐와 고독이 지배하며(8) 생산품이 없으며(10) 세상 연회에 빠져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게 되었습니다.(11-12) 육 주의로 나가는 사람의 결국은 이러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하여 영광스러운 약속을 확신합시다.

은혜의 양면성(사5:13-23) 찬332장

이사야서에도 인간의 전적부패와 불가항력적 은혜의 흐름이 그 바닥에 흘러갑니다. 인간은 부패로 연단되었으나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행사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이 진리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첫째, 하나님의 높으심,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고 거룩하고 의로우십니다.(16) 어린양 이 초장에서 먹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가난의 가치를자랑하고 현실의 부요가 주께로 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낮아짐을 자랑하는 자로 살아야합니다. (약1:9-10) 둘째, 인간의 전적 부패함, 거짓(19), 무분별(20), 교만(21), 그리고 탐욕(22)으로 충만한 유다의 비참은 복음의 빛 안에서만 소망이 있습니다. 흑암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런 진리를 아는 자리로 점점 나아갑니다. 그 기반을 분명히 함으로서 영적 풍성한 삶을 영위합시다.

말씀을 버릴 때(사5:24-30) 찬334장

만성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회복의 소망을 잃은 것처럼, 본문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의 원인과 그 결과를 보여줍니다.

첫째, 어떤 결과입니까? 24절에 근본적인 심판입니다.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킨 것같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치십니다.(25) 외적 침략을 당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평화가 임했으나 죄를 범함으로 따끔한 징계를 받았습니다. 둘째, 왜 그랬는가요? 생명의 근원인 율법과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24) 말씀과 인간의 성격상, 사람은 말씀에 푹 젖을 때 소망이 생깁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란 거기에 관심을 쏟고 집중하고 연합하여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진정한 복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버리면 광야 건조한 땅의 떨기나무처럼 영적 고독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른 교훈인 성경에 착념하는 성도가 됩시다.

성령의 비젼(사6:1-13) 찬355장

세상에서의 꿈은 보장을 받지 못하나 성령의 비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선지가 받은 비젼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고난을 당해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 볼 때 위로부터 임한 비젼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1-4) 날에 주를 바라보았을 때 기이한 은혜가 임했습니다. 둘째, 정결한 그릇 위에 임한 비젼입니다. 이사야의 체험은 마음의 변화였습니다. 그가 깨달은 입술로 범한 죄(롬3:13-18)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적용될 때 사해졌습니다. 정결한 그릇을 쓰시는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겸손히 살펴야합니다. 셋째, 분명한 비젼이었습니다.(9-10) 마음을 둔하게 하고 눈을 감기게 하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황폐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성령의 비젼을 따라 자기 정결에 힘씀으로 주께 쓰임 받읍시다.

임마누엘의 징조(사7:1-16) 찬342장

캄캄한 밤일수록 별빛이 더 빛나듯이 혼란한 시대일수록 하나님의 구원징표는 더 확실해 집니다. 아람과 합세한 북 이스라엘이 유다를 공격할 때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증표를 주셨습니다. (14)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성취되었고 하나님백성의 위로의 원천이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은 왜 신자에게 위로가 됩니까?

첫째, 모든 영적 싸움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발판입니다. 아하스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제껴두고 열방을 의지할 때 생긴 결과입니다. 둘째, 복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복의 내용을 요약하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거기 뻐터와 꿀의 풍성함이 있고 견고함이 있고 뻗어나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노란 자위 은혜를 받은 성도는 힘써 기도함으로 그 열매를 나타내야합니다.

심판하시는 지혜(사7:17-25) 찬337징

우리는 제한된 인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을 화로, 어두움을 빛으로, 그리고 악을 선으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안목을 가진다면 모든 일을 올바로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불신앙을 심판하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파리와 벌로 비유된 애굽과 앗스르를 불러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18) 둘째, 잔인한 앗스르의 침략으로 수치를 당케 하셨습니다.(20) 셋째, 그리고 황폐케 하셨습니다. 번성이 중단되고 포도나무 1000주에 질려와 가시가 나게 하심은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23)

의뢰하는 모든 것을 미리 끊어버리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나가는 것이 성령의 지혜입니다. (롐17:5-6) 그 길을 걸어갑시다.

임마누엘의 은혜(사8:1-8) 찬337장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배은망덕 죄를 큰 문제로 삼아 근본적 해결에 심혈을 쏟으셨습니다. 이사야의 가정을 통해 약탈이 신속해 질 것을 보이셨으며(3) 진실한 증인들을 부르심으로(1-2) 견책하셨습니다. 우리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첫째, 임마누엘의 은혜를 귀히 여길 때는 풍성과 번성과 생명을 비유한 버터와 꿀을 먹게 하시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감사하는 삶이 우리에게 복입니다.

둘째, 그러나 임마누엘의 은혜를 경멸할 때는 앗수르 침략이 그들을 덮어 버립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존중히 여기고 그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 그의 말씀을 잘 들어야하며 작은 것부터 진실되이 순종해야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약속된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립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사8:9-22)찬360장

유다의 불신앙의 뿌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앗수르를 두려워하는데 있었습니다. 신자의 생명인 영적 두려움은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나요?

첫째, 하나님을 나의 거룩의 표준으로 삼아야합니다. (13) 거룩한 삶이란 모든 생각, 활동, 관계 그리고 말에서 구별된 삶을 가리킵니다. 이사야의 체험처럼 속임과 악독과 미워하는 말을 버려야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다리며 바라보아야합니다. (17-18) 죄 때문에 낯을 가리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서 그를 기다려야합니다. 사울의 경망된 행동과 달리 불레셋 침략을 받는 위기 속에서도 제사를 끝가지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사무엘의 태도를 배워야합니다. 셋째, 그의 말씀을 좇아야합니다. (20) 하나님 말씀에 맞지 못하면 아침을 보지 못합니다.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반드시 광명의 날을 만날 것입니다. 경외신앙으로 충만한 산 신자가 됩시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사9:1-7) 찬391장

흑암에 비추이는 빛처럼 유다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소망을 갖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창성케 하는 나라가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이사야 예언이 성취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2절이 성취될 그 나라를 성령은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첫째, 기적으로 세우는 나라입니다. 기묘자와 모사란 “놀라운 상담자(wonderful counselor)란 뜻입니다. 전능자의 지혜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둘째, 영원한 나라입니다. 단7:13절에 예언된 인자 같은 이가 세우시는 그 나라는 영존하신 아버지가 왕이신 나라입니다. 셋째, 평강의 나리입니다. 공평과의가 세워질 때 평강이 임합니다. 성령은 이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성령이 운행하심으로 새 창조의 역사가 충만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선 우리는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진노하는 이유(사9:8-10:4) 찬92장

임마누엘 탄생의 소망과는 달리 본문은 심한 징계로 나타난 하나님의 극심한 진노를 보입니다. (12, 17, 21, 10:4) 왜 이런 진노가 일어납니까?

첫째, 경고를 듣고도 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8) 겸손한 마음은 말씀 앞에 바로 설 때 생기는 열매입니다. 바른 교훈인 성경을 묵상하지 않는 사람의 심령에는 마귀가 악한 교훈을 쉽게 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를 겸허히 받아드리고 돌이키는 용단을 내림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둘째, 영적지도자의 타락(14-15, 10:1-2)때문입니다. 진실은 진리인 하나님 말씀 위에 서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많은 열매를 맺으려는 기대보다 먼저 말씀의 대접을 잘 받기위해 힘써야합니다. 옥토 같은 마음에 떨어진 말씀의 씨는 그 자체의 능력 때문에 최소한 30배의 결실을 가져옵니다. 최대의 심판이 곧 도래할 시대를 사는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를 즐기며 살아가야합니다.

겸손일관(사10:5-19) 찬 185장

앗수르가 창성하여 이스라엘과 아람을 멸망시키고 유다를 멸하려는 수고가 모두 하나님의 일시적인 도구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헛된 자랑 때문에 심판을 받습니다. 아수르의 교만을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첫째, 앗수르의 교만. 자기의 총명과 힘센 손을 자랑하며(13) 열국에서 재물을 얻었음을 과시하며(154) 전쟁무기인 도끼와 톱을 자랑했습니다. (15) 그 교만이 신상을 세웠습니다. 자랑이 모든 죄악의 뿌리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모든 일에 장해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망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눅6:26)

둘째, 하나님의 벌은 불과 불꽃으로 황폐해지는 심판입니다. 겸손이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시킵니다. 기도하는 마음과 말씀 순종하는 마음에 겸손이 자라납니다. 기도는 죄를 죽이지만 죄는 기도를 못하게 합니다. (번연) 겸손의 도를 따름으로 복수의 영과 배교의 영을 단절하고 겸손의 영의 인도를 따라갑시다.

남은 자가 세우는 나라(사10:20-34) 찬410장

본문은 심판 중의 기이한 소망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남은 자의 구원과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배은망덕과 앗수르의 무자비한 억압 속에서도 하나님나라는 세워집니다. 어떻게 세워집니까?

첫째, 하나님을 진실히 의뢰하게 하심으로(20) 세우십니다. 남은 자에게 은혜를 주어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 헌신의 자리로 나가게 하십니다.(롬12: 102) 언제나 그 나라는 산 제물 삶 속에 세워집니다. 둘째, 속에서의 변화로 그 나라가 세워집니다. 27절에 어깨에 기름이 끼게 하심으로 멍에를 부러지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 쉼을 얻는 길은 먼저, 주께 나와야하고 다음, 말씀을 배워야합니다. 그럴 때 그의 영혼 속에 변화가 일어나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알게 됩니다. 그 자리로 나갑시다.

메시야 예언 (사11:1-9) 찬 94장

남은 자가 구원을 얻는 것은 메시야 강림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지상에 펼쳐지는 천년 왕국으로(역사적 전천년주의) 신약 전체의 영적 통치로(무천년주의) 보는 본문에서 메시야는 어떤 모습으로 오시며 어떻게 다스리십니까?

첫째, 메시야가 오신 방법. 땅에서 돋아나는 작은 새싹처럼 연약한 인간 모습이지만 (1) 성령의 능력으로 오셔서(2) 여호와를 경외함과 순종을 즐거움으로 삼으시며(3), 공의, 정직, 성실의 권위로 사실 것입니다.(4-5) 정말 메시야 예수님은 그렇게 오셔서 모든 구속을 이루시고 지금은 성령 안에서 일하십니다. 둘째, 메시야의 다스림, 그는 화평(6)과 온유(7-9)로 다스리시고 충만한 신지식으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십니다.(9) 역시 우리 주님은 성령 충만으로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으로 성부의 뜻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이미 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성령 충만함으로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주의 구원(사11:10-16) 찬 93장

여전히 참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심으로 성립됩니다. 그런 구원만이 처음에는 미약하나 이후에 반드시 창대케 됩니다. 한 싹이 나와 죽음과 부활을 만민의 기호가 되게 하시고(11) 한 싹이 나와 결실하게 하시며(1) 마침내 열방이 그에게 돌아오게 하는 구원을 이루시는 (창12:1-2) 구원은 어떤 승리를 약속합니까?

첫째, 남은 백성만이 구원을 받는다 했습니다.(11-12) 비록 흩어져 좌절 속에 있지만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돌아오게 하여 아브라함의 약속(창12:2)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가 성령의 약속을 받는 것으로 완성 되었습니다 (갈3:14)

둘째, 화목케 하는 구원을 이루십니다.(13) 유다와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는 투기가 사라지고 하나가 되는 사건이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마침내 이 화목은 원수가 정복되어 회복케 도심으로 완성됩니다.( 14 -16) 복음 안에 완성된 이 회복의 은총을 누립시다.

구원의 샘물(사12:1-6) 찬19장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의 샘물은 어떻게 솟아납니까?

첫째,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를 통해 솟아납니다. 1-2절에 보인 구원은 참 안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원, 나의 힘, 나의 노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수가 성 여인에게 약속한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려고 힘쓸 때 계속 일어나는 은혜입니다.(요4:14)

둘째, 그리스도를 만민에게 선포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5) 온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이 솟구치는 샘물 같은 구원입니다. 주님의 지상 사명을 순종함으로 이 샘물을 사회로 흘러나게 하여 사도행전 현장을 만들어야합니다. (마28:19-20)

먼저 영원히 솟아나는 영생을 맛보고 이 영광스러운 사명에 성실한 가정으로 살아갑시다.

바벨론심판 (사13:1-8) 찬 400장

이사야 13-23장은 열방의 심판을 경고합 니다. 바벨론 심판과 멸망은 전능자에게서 나 온 것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나 라의 흥망성쇠와 개인의 생사화복은 종말 심 판의 어떤 성격을 보여줍니까?

첫째, 교만 때문에 심판 받음을 보여줍니 다. 교만 때문에 망한 이스라엘 처럼 교만 때 문에 바벨론은 또 다른 나라에 의해 망하리 라는 예언입니다.(3) 일시적으로 쓰임받고 버림받는 어리석은 길에서 돌이켜 있는 거기 서 겸손히 주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힘써 야합니다. 남은 안식에 들어가기 못하게 하는 외식을 경계해야합니다.(히4:9-11) 둘째, 하나 님이 친히 행하시는 심판입니다.(4) 한편으로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는 구원은 다른 편으로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십니다. 모두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마치시는 주권적 심판입니다. 그 렇게 견고한 바벨론이 하나님의 작은 지혜로 망한 것처럼 신자는 하나님의 지혜의 손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진노의 날(사13:9-22) 찬337장

바벨론 심판을 “그 날”, “여호와의 날”로 표현한 본문은 (9,13)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예고합니다. (17) 그 날은 어떤 날입니까?

첫째, 그 날에 사람이 많이 죽으며 (12), 무자비하며 (16) 메대어 바사의의 침략으로(17-18) 소돔과 고모라같이 참담해 집니다.(19) 이것은 고통의 때, 마지막 날을 알리는 경고입니다.

둘째, 심판의 원인은 교만입니다.(11) 천사가 타락한 원인인 교만은 세상 멸망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교만으로 넘어진 죄인이 겸손한 사람이 되는 길은 그리스도의 겸손인 십자가 공로를 믿는 길 뿐입니다. 어린아이처럼 겸손히 받들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눅18:17) 그러므로 즉각 교만에서 돌이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삶을 추구해야합니다. 택한 자를 위해 진노를 감하신 하나님의 자비의 손을 겸손히 붙잡읍시다.

교만의 죄(사14:12-23) 찬 372장

마귀 타락을 설명하는 본문으로 생각하는 것(세대주의) 보다 자세한 문맥 관찰을 통해 유다를 망케 한 교만한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 일차적 해석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만한 세상이 어떻게 망하는가를 배웁니다.

첫째, 교만이란 하나님이 정해 준 자리를 이탈하는 자율주의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사탄이 넘어지고 아담과 하와가 넘어진 죄입니다. 그것은 인본주의로 발전하여 하나님보다 혈육을 의지함으로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어떤 교만이라도 하나님의 판단을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20)

둘째, 그 교만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달라붙어 그 길을 가는 길 뿐입니다. 말씀만이 교만의 해독제임을 잘 아셨기에 주님은 말씀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요15:10) 자랑과 교만으로 채워진 세상에서 겸손의 길을 걸어갑시다.

겸손의 섬김 (사16:1-14) 찬324장

모압은 교만 때문에 망했지만 하나님 백성은 그의 사랑과 자비 때문에 부흥함을 보여준 본문은 겸손을 어떻게 지키리라고 말합니까?

첫째, 말씀을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말씀을 그렇게 가까이 했을지라도 교만하게 된 것은 믿음을 화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말씀 안에 거할 때만 모든 관계에서 겸손을 지킬 수 있습니다. 중생한 사람은 복음의 빛 앞에서 비로소 겸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성실한 대제사장이요, 공평의 왕이요, 의의 선지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주로 모실 때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모압의 멸망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겸손을 배워야합니다. 이것이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왜 망하는가? (사17:1-14)

본문의 요약, 아람, 다메섹 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합니다. 왜 그들이 망햇는가요?

첫째,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앗기 때문입니다. 우상에게 눈길을 주었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우상이된것은 그 자신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혈육을 의지하는 자는 저주받은자입니다.

둘째,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의 구원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거같은 상황을 허락하심은 하나님만 의뢰하게하려는 것입니다.

셋째 구원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앗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에 대한 경고(사17:1-18:7) 찬88장

열방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남은 자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은 다메섹을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첫째, 동맹을 했을지라도 하나님 중심하지 않은 연합이기에 멸하십니다. 이 연합은 바벨탑을 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우선 주님과의 교제를 중요시 여겨야 합니다. 둘째, 우상을 바라보았기에 망합니다. 오늘날 무서운 우상은 물질주의, 쾌락주의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능력으로 삼지 않는 것 자체가 우상숭배입니다. 셋째, 참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18:3절부터 종말시대의 심판과 구원의 소망을 말한 이사야 계시 는 장래의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은 모두 시온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 구원을 받습니다. 그때 유대인과 이방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동맹이 이루어집니다.

이 복된 성령의 연합 시대에 사는 자로서 그 연합을 힘써 지켜갑시다.

구스가 돌아오는 날(사18:1-7) 찬337장

구스의 강성함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죄로 인해 파멸될 것을 이사야는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멸망 중에서도 복음 안에서 예물을 주께 드리는 이변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돌아옵니까?

첫째, 하나님이 친히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이 참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구스내시가 광야에서 복음을 접할 때 은혜를 받은 것은 전적인 성령의 나타남으로 된 것입니다. 둘째, 예물을 가지고 주께 바치게 됩니다. 이것은 은혜 받은 증거이고 자신이 산제물이 된 증거입니다. 셋째, 예배하게 하십니다. 시온산으로 나와 예배하는 구스의 변화는 속에서부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에게 모여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빛 안에 거한 자로 살아갑시다.

애굽에 대한 경고(사19:1-20:6) 찬252장

이사야 19, 20 장은 17:3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영광같이 되리라”는 예언의 응답으로서 애굽 멸망을 경고합니다. 이미 다메섹과 에디오피아에서 보인 남은 자의 소망이 어떻게 나타날 것입니까?

첫째, 주제권의 회복(16-17,18, 19-22). 메시야 통치의 첫째 특징은 주님이 주님 되는 위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이 두려우며(16-17),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18), 애굽 중앙에 여호와의 제단과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한 기둥이 세워집니다.(20-22) 여호와께서 애굽이 자기를 알게 되어 제물을 드리고 구할 때 그들을 치료하십니다. 둘째, 예배의 회복 (23). 그 날에 애굽에서 앗스르를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스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스르로 가서 함께 경배하게 됩니다. 셋째, 주 안에 있는 복의 회복 (24-25). 메시야 왕국의 특징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24-25) 즉, 아브라함의 약속이 실현된 상태입니다. (엡1:3) 온 세상에 흩어진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시는 원천적 복을 받은 자로 살아갑시다.

두로에 대한 경고 (23:1-18) 찬102장

“내 영혼아 영원토록 마시고 즐거워 하자” 는 어리석은 부자의 독백을 생각하게 하는 본문은 무엇을 경고합니까?

첫째, 하나님 없는 물질문명은 그 마지막이 멸망입니다.(1-14) 물질만을 믿던 두로, 다시 스, 시돈의 번영은 황무하게 되는 것은 그 것을 의지 하는 인간의 심판을 보인 것입니 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바울 사도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합니다. 둘째, 물질주의 심판이 필연적인 이유는 하나님 이 정하셨기 때문입니다.(8-9)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시고 행하셨기에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 그러나 회복의 날을 약속하 셨습니다. 물질주의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징계 기간이 지난 다음, 하나님은 은혜로서 두로와 시돈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15- 18)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구 원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주의 날 (사 24:1-23) 찬 79장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장래를 비교한 24장은. 전자는 망하지만 후자는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가 왕이 되시기 때문입니다.(21-23)

첫째, 하나님 나라(21-23)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서 교회를 통해 완성됩니다. 시온산과 예루살렘은 교회를 가리키며 그 나라의 도래와 세상 심판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둘째,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 땅에 임하였습니다. 성령 안에서 주님은 지금 이 땅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과 가정에 그 나라가 임하였는가를 살피며 항상 그 나라 열매를 맺혀야 합니다.

사도들처럼 임하나라와 장차 임할 나라 사이에 사는 우리는 영적 긴장 속에서 구원의 확신과 아울러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 (25:1-12) 찬45장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문제를 본문은 어떻게 말해줍니까?

첫째, 구원의 기쁨은 어디로 옵니까? 1-5절은 주께서 행하심으로 이루어진 구원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주의 예정을 따라서 주께서 강한 성읍을 무너뜨리듯이 원수들을 모두 낮추시고 제하시기 때문입니다.(4-5) 빈궁한 자의 보호자, 환난 중에 있는 빈핍한 자의 보장이요, 폭풍우의 피난처요,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요, 폭양을 가리는 그늘처럼 성실하고 완전한 구원입니다. 둘째, 그 구원은 어디서 일어나는가요? 산으로 비유된 교회 안에서 일어납니다. (6-8)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에서 구원의 연회가 일어납니다. 셋째, 구원이 가진 특징은 무엇인가요? (1-12) 그것은 범 세계적 (3, 7)이며 영적으로 연합되며, 겸손으로 가득 채워진 구원입니다.(10-12) 모압의 교만을 누루시는 하나님의 구원 감격이 넘치는 자로 살아갑시다.

주 안에서의 기쁨 (사26:1-21) 찬341장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 백성에게 주어진 약속은 무엇입니까?

첫째, 보장된 길을 주셨습니다. 평화 속에서의 보장(1-4)과 진노 중에서의 보호를 보장 (20-21)하셨습니다. 둘째, 평탄한 길을 주셨습니다.(7-9)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리로다” 고 했고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은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높아지는 길을 주셨습니다. (12-15)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시고 존귀한 자로 세우십니다.

4계명을 무시하는 혼란한 세상에서 주일을 성수함으로 야곱의 업을 먹으며 가장 높은 곳에 다니는 약속을 받아 누리는 건강한 성도가 됩시다. 여기에 진정한 안식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로 오는 구원 (사 27:1-13) 찬86장

주께로 오는 구원은 어째서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까?.

첫째, 주의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1 절에 리워야단, 마귀를 제하시는 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마귀를 완전히 멸하시는 손입니다. 결국날선 검을 가지신 그 분이 교회를 지키시고 심판하십니다. 둘째, 주의 보호를 즐기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2-6) 포도원의 포도나무로 비유된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힙니다.(요15:5) 셋째,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는 기이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이 자기백성의 불의를 속하는 날입니다. 주께서 적절하게 견책하시고 폭풍 중에 지키시며 (7-8) 야곱의 죄를 없이하시며 (9). 하나님이 친히 모아(10) 성산에서 여호와를 경배하게 하십니다.(13) 이 큰 구원의 날의 은혜를 받읍시다.

하나님 나라의 기초 (28:1-29) 찬269장

본문은 에브라임을 “그 기름진 골짜기의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4)”으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을 근본으로 삼지 않을 때 아무리 화려하고 기름진 땅에 산다할지라도 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습을 어떠합니까?

첫째, 쇠잔합니다. 쇠하고 망한다는 뜻입니다.(1-3) 우박, 광풍, 홍수로 면류관이 땅에 던져지고, 교만의 면류관을 발로 밟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둘째, 보장받지 못합니다. 7-22절에서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회개치 않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철저히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셋째, 시온의 기초인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16절에 약속하기를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은 이유는 그 위에 선 자는 심판 중에서 구원을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산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유일한 기초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갑시다.

징계의 손(사29:1-14) 찬 379장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어떻게 징계하십니까?

첫째, 원수의 침략으로 징계하십니다.( 1-8) 열방을 들어 이스라엘을 때리시나 그들 역시 회개치 않을 때 심판하셨습니다. 그들을 침략한 바벨론, 앗스르, 애굽은 모두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둘째, 잠들게 하는 신을 부어 징계하십니다. 9-13절에서 말하기를 “잠들게 하는 신”을 허락하심이라 했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먹어 비틀거림이 아니고 미혹의 신이 역사함으로 비틀거린다고 말씀했습니다. 스가랴의 예언은 성령의 예언이었으나 거짓선지자의 예언은 거짓 신의 역사로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자기 백성이라도 죄를 철저히 다루십니다. 외적 가시와 내적 검으로 죄를 도려내십니다.(요15:1) 그 철저한 징계의 손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회복의 손(사29:17-24) 찬246장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어떻게 회복하시는가요?

첫째, 세상의 변화로 회복시키십니다. 17절에 이것이 예언되기를 레바논이 기름진 땅으로, 기름진 땅이 삼림으로 여김을 당합니다.

둘째, 개인의 영적 삶을 변화시킴으로서 회복시키십니다. 15-16절에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는 자는 화있을 진저라고 경고했고 17-19절에 미구에 레바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고 귀머거리와 소경에게 변화가 일어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야곱을 변화시키심으로서 회복시키십니다. 22-24절에 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주께서 야곱 족속을 친히 변화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이 신약시대는 여호와의 영광의 두려운 징계(6)가 이미 시작되었고 동시에 하나님이 주도하는 영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날에 두렵고 덜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룹시다.

불신실과 신실함 (29:25-33) 찬458장

수에 칠 가치가 없는 불신실한 인간에 비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어떠했습니까?(18-33)

첫째,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하여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18) 하루가 천년, 천년이 하루처럼 기다리십니다. 둘째,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6)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외양간에 나온 송아지같이 뛰게 하십니다. 셋째, 빌립보 감옥의 바울과 실라처럼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9) 그러나 앗수르를 제하듯이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31-33)이십니다.

영적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우리 세상에서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가 복됩니다. 인간은 믿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입을 넓게 열어 믿음으로 간구합시다.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능력 (사40:27-31) 찬480장

본문 초반부는 위로와 소망과 능력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강조하면서 하반부에 “기도하라”는 주님의 간절한 초청소리를 해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와 관련된 어떤 교훈을 배웁니까?

첫째, 기도 대상은 능력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에게 기대를 걸고 도움을 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였습니다.(18) 영원한 창조자요(15,21-22), 전능자이신 하나님은 피곤과 곤비함을 알지 못하는 분이시며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시며 보호하시는 무한한 명철자이십니다. 그만이 우리의 기도 대상이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안에 있는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27절에 야곱은 자신의 탄식과 원통이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생각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셋째,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이 임합니다. 젊은이의 경주 (30-31)와 독수리의 비상에 비교한 이사야는 주를 앙모하라는 권면을 따라 하나님께 믿음으로 부르짖어 권능을 받읍시다.

용사이신 하나님 (사42:1-26) 찬391장

우리 대신 싸우시는 하나님을 볼 때 진정한 용기로 현실의 영전에 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용사로 나타난 이유. 그는 “용사처럼 행진하시고 전사처럼 분발하신다(13)”고 하셨습니다. 해산하는 여인이 소리치듯 용사이신 주님은 아무리 강할지라도 크게 파하시어(15-17) 공의를 반드시 세우십니다. (4)

둘째, 싸우시는 방법. 두가지 방법으로 싸우십니다.(1-2) 1) 겸손(humility)으로 싸우십니다.(2) 2) 긍휼(Mercy)로 이루십니다.(3) 한마디로 어린양의 원리인 사랑으로 싸우십니다.

용사로서의 주님을 바라보고 날마다 자기를 살핌으로 주를 본받아 우리 원수, 세상과 마귀와 육체 소욕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승리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의 영광 (사43:1-28) 찬340장

우리를 구하신 하나님의 구속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계획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1절은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 너를 조성하신 하나님, 너를 지명하여 부르신 분”이 행하시는 일은 바로 구속 곧 재창조의 역사를 말해 줍니다. 이것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만세 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7, 21, 25) 이 구속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 계획한 것입니다.(엡1:4-6 참조)

둘째, 하나님의 개별적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절에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했고 5-7절에 남방과 북방의 열국을 불러 모으신 것은 복음 안으로 만민이 몰려 올 것을 예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선택적이기에 함부로 부르지 않으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으로 꽃을 피웁니다. 그 구원은 반드시 영광으로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의로움에서 영화로움으로 나아갑니다. 애굽에서의 구원(16-17)과 바벨론에서의 구원(18-20) 그리고 열방이 모여 연합의 풍요를 누리게 하십니다.(20) 구속의 꽃을 보고 즐거이 헌신하는 사람들로 살아갑시다.

나의 택한 여수룬아! (사44:1-28) 찬539장

여수룬이란 말은 “의로 세움 받기 위해 택한 자”란 뜻입니다.(신32:15) 여수룬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까?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져야합니다. 2-3절에서 두려워말라고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로 인해 오는 복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갈할 때 물을 받으며(요7:38-39)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되며 성신을 두심으로 시냇가에 버들같이 하십니다. 둘째, 우상과의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9-20절에 하나님은 자신을 우상과 비교하시면서 까지 변호하시기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9)고 했습니다. 셋째, 죄 사함의 은혜를 붙들어야합니다. 21-23절에 여수룬을 향한 구속자의 죄 사함을 약속하기를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며(21), 허물을 구름과 안개처럼 도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여수룬에 합당하게 살아갑시다.

여호와의 팔 (사51:9-16) 찬403장

능력을 비유한 여호와의 팔(9)이란 말은 구약 28회 중 이사야에만 11회 나옵니다. (30:30, 40:10 48:14, 51:5,9 52:10 53:1 59:16 62:8 63:5,12) 그 팔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그것은 창조와 구속의 근본입니다. 창조(13)와 구속(9-11)의 배후에 일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와 구원 활동이 바로 그의 능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것은 말씀을 통해 나타납니다. 말씀의 선포인 설교(preaching)는 가르침과 구분됩니다. 기록된 말씀, 성경을 바로 받은 설교자가 성령의 능력으로 그 백성에게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통해 신앙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으며 신령한 능력을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팔을 신뢰할 때 두려움이 담력으로 바꾸어집니다.(12-14) 믿음으로 사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고난의 종(I) (사52:13-53:6) 찬147장

고난의 종이 이루실 구속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창세 전에 계획된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13)”고 약속하고 그 씨를 보고 그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라(53:10)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이 구속을 미리 계획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창3:15) 둘째, 인간 상상을 초월한 계획이었습니다. 14-15절에 놀라워하는 두 사건이 나옵니다. 그 종의 고난을 바라보고 놀라는 것이고 그의 수난의 참혹함을 보고 놀라는 것입니다. 연한 순과 마른 땅의 줄기 같은 탄생(1), 멸시, 간고, 질고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귀히 여기지 않은 슬픔의 사람으로 사셨습니다.(3-4) 셋째, 믿을 때 효능을 발하는 계획이었습니다. 구속은 하나님이 많은 말씀과 사건을 통해 예고한 것이 성취된 것입니다.(1) 자아부인과 십자가를 짐으로써 우리의 구속을 이루어갑시다.

고난의 종(II) (사53:6-9) 찬144장

그 고난은 어떤 성격을 가졌습니까?

첫째, 대신 담당한 고난이었습니다.(6-7)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다는 말씀을 보면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책임지시고 까닭 없는 고난을 당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에 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고 했고 5절에 우리의 죄악, 우리의 죄악을 위해서 고난을 당한다고 했고 8절에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세상의 온갖 수모를 참는 고난이었습니다.(7) 곤욕과 심문을 당하기를 털 깎는 자 앞에 선 어린양의 침묵을 지켰습니다. 자기 털을 희생하듯 그는 잠잠하였고 그 목적을 이루기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모리아 제단의 이삭처럼 그 일을 성취하기 까지 아무 대답도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수난은 실제적이었습니다. 십자가 지는 것을 잘 배웁시다.

고난의 종(III) (사53:10-12) 찬146장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가져왔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만족시키셨습니다.(10-11)- 속건 제물(보상제)이 되심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적 사건과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모양과 부분으로 증거하신 유일한 속죄 제물로 오신 것입니다. 둘째, 자기 백성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처리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의로운 위치로 올려놓고 상대해 주셨습니다.(11)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심은 하나님의 속죄 표준과 방법으로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의의 하나님 앞에 의가 없으면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허물과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평화와 치료를 얻었고 했고(5) “그 씨를 보게 되고 그 날이 길 것이라(10)”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예언대로 인자로 오신 그는 죽음을 통해 자기 백성을 얻어 그들 모두 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노래할 이유 있네 (사54:1-17) 찬49장

이사야가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1)고 권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 의 장막터를 확장시키셨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그들이 거하는 장막터 확장으로 인하여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좌우로 퍼져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으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하시는 장막터 확장은 정말 놀라운 약속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때문입니다.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시며(8)) 다시는 책망받지 못하도록 (9) 허물을 책임지시고 고쳐주시고 인자를 떠나지 않게 하리라(10)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때문에 노래합니다.(13-15) 여호와의 교훈을 받으며 평강할지어다(13)고 하셨고, 학대가 멀어지고 공포가 가까이 못하리라(14)고 하셨고, 너를 치는 자는 너로 인하여 패망하리라(15)고 보장하셨습니다. 찬양이 가득 찬 천국 백성으로 살아갑시다.

물로 나오라 (사55:1-13) 찬324장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는(12-13) 구원의 은혜를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은혜임을 알아야합니다. 본문은 이 풍성함을 약속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잔치 상에는 긍휼과 사랑(7), 영혼의 소생함 (3), 3) 좋은 것과 기름진 것 (3) 4) 넘치는 잔 (12) 그리고 5) 하나님의 명예 (13)가 풍성히 준비되었습니다. 둘째, 누가 준비하셨습니까? (11) 그는 전능자, 초월자, 거룩자, 전능자, 주권자, 계시자, 명령자, 인도자 그리고 성취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어떻게 응해야합니까? 물가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곧, 회개하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물이 포도주로 바꾸어지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그런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주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내가 받을 진노를 모두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물가로 지금 나갑시다.

평강의 길 (사57:1-21) 찬478장

악인의 마지막은 멸망이지만(20), 의인의 마지막은 평강의 길입니다.(2) 이 평강을 어떻게 향유할 수 있습니까?

첫째, 통회. 14-15절에 하나님은 높은 곳에 거하지만 회개하는 자에게 함께하시고 마음을 소성시키시는 분이라 하셨고 18절에는 이런 자를 치료하신다 하셨습니다. 산상보훈에도 애통하는 자에게 하늘의 위로가 임하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마5:4)

둘째, 겸손.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함께 하십니다. 애통과 겸손은 통합니다. 7절에 “네가 높고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네가 또 그리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라는 것을 보면 우상 섬기는 자의 특징은 교만으로 나타납니다. 교만된 마음에는 이 평강이 머물지 않고 연합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오시면 언제나 평강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빌2:1-2)

성수주일의 복 (사58:3-14) 찬57장

본문은 안식에 대해 교훈을 어떻게 말합니까?

첫째, 성수주일이란 안식일을 온전하게 지키는 삶을 가리킵니다. 주님이 한 날을 안식일로 지정한 것은 에덴동산을 인간을 불러 교제의 장소로 정하신 것처럼 7일 중 한 날을 정하여 자기 백성과의 교제를 원하신 것입니다. 둘째, 어떻게 지킬 것입니까? 1) 자기 절제- “네 발을 금하라”, “오락을 금하고”. 안식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절제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이며 믿음생활에 중요한 덕목입니다.(3-4) 2) 주의 뜻을 따름- “네 길로 행치 말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며”. 그 날은 철저히 하나님 위주가 되어야합니다. 3) 예배중심을 힘씀- “그 날은 존귀한 날이라 하여 그 날을 존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셋째, 주일성수하는 자에게 세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1)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얻습니다. 2) 땅에서 존귀하게 됩니다. 3) 야곱의 기업을 누리게 하십니다. 산이 굽이침 같이 하나님의 축복이 돌아오는 원천적 축복을 받습니다.(8-12) 주일을 지킴으로 에덴동산의 축복을 누립시다.

신천 신지의 소망(사65:1-25) 찬221장

신자의 소망인 신천 신지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용서로 채워진 곳입니다. 그 세계는 “이전 것이 생각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하는(17)” 곳이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가득 찬 곳으로서 그리스도 피의 효능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히10:17) 바울이 정죄하고 대적하고 송사할 자가 없다고 한 것은 이미 신천 신지의 세계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 백성을 기쁨의 대상으로 삼는 세계입니다. 18-19절에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백성을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습3:17) 셋째. 영원한 복의 세계입니다. 장수의 복 (20),노동의 복 (21-23), 값없이 주시는 복 (24) 그리고 화평의 복(25)이 넘치는 곳입니다. 환난 많은 세상에서 산 소망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