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헌터(William Hunter 1555)

젊은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라는 것이 감독의 방침이었다. 소년에게 그가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지 무엇을 제공하라. 돈을 주라. 공적 명예를 주라. 그러면 어떤 소년이든지 만족할 것이다. 그는 그것을 바랄 것이다. 런던 감독 보너는 이 일에 확신이 넘쳐있었다. 그는 런던 젊은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헌터의 복종을 받아 내려고 한 보너는 자신과 자기 여왕에게 역사적 정죄를 받은 꼴이 되었다.

윌리엄 헌터 경우는 분명하고 충분했다. 크리스챤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성경을 배웠고 사랑했다.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였고 우뚝 선 교회를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를 맞선 비난은 매몰차게 몰려왔다. 메어리 여왕은 런던의 모든 사람이 미사에 참여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아무도 예외가 없었다. 그러나 젊은 헌터는 미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큰 도시에서 그는 오래 숨어 지낼 수 있었다.

법을 지키지 않은 그는 마침내 잡혔다. 잡으러 온 경찰에게 그는 홀로 성경을 읽는 것이 예배라고 설명했다. 그는 칙령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에게 복종했다. 그 때 감독은 중요한 책임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일에 관여했다. 이 소년이 누구인가? 왜 그는 거역하는가? 돈으로 그를 매수하기에 실패한 보너는 윌리엄 헌터를 형틀에 묶었다. 이틀 후 헌터는 음식과 물이 없이 나무 통 속에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지금 여왕의 명에 복종할 것이냐? 아니면 뉴게이트 감옥에서 아무 배려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다음 9개월 후 윌리엄 헌터는 황량한 감옥에서 사슬에 묶여있었다. 미사는 드리지 않고 성경을 읽어 급박한 왕의 명령을 어긴 이유 때문이었다. 1955년 2월 9일경 보너 감독은 그 소년에게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그의 집이 있는 마을, 브렌트우드에서 이교도의 죄명으로 화형을 당하게 했다.

그리하여 3월 26일에 그의 입으로 시편 51편을 읽은 윌리엄 헌터는 19세에 명령을 수행하는 리챠드 폰드에 의해 화형을 당하여 죽었다.

나무가 불타기 시작할 때 윌리엄의 동생이 그에게 “ 윌리엄, 그리스도의 거룩한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두려워 말라”고 소리쳤다.

집행관은 “너 보다 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말하자.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오늘날 브렌트우드의 비석에 아래와 같이 적혀있다.

1555년 3월 26일 불 속에서 희생한 크리스챤 독자로서 성경을 열고 그것을 그대로 지킨 특권의 가치를 보인 교회의 모범인 순교자, 윌리엄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