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하지 않는가?

엘리사는 엘리야 사역의 갑절을 일한 것처럼 보인다. 엘리야는 한 나라를 위해 일했으나 엘리사는 유다 왕국뿐 아니라 이방나라, 아람을 위해 예언한다. 엘리야는 공적 사역에 하나님을 나타낸 것이 특징이지만 엘리사는 한 가정의 빚을 해결하거나 빌린 도끼를 찾아주는 일, 독이 퍼진 음식을 해독시키는 일 같은 자상한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열방에 알리기도 했다. 엘리야는 살아 승천하지만 엘리사는 병들어 죽은 후에도 그의 뼈에 접촉하는 송장이 살아나게도 했다. 특히, 엘리사의 사역은 우리로 구체적으로 기도할 욕구를 일으킨다.

선지 생도들이 기숙사를 지을 때 요단강을 건너 나무하던 한 사람이 빌린 도끼 머리가 빠져 물 속에 떨어졌다. 빌린 도끼를 돌려주어야하기에 안타까운 사정을 엘리사에게 아룄다. 그는 그 문제를 듣고 한 나뭇가지로 도끼를 물에 떠올려 찾아주었다. 기적으로 찾아 준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야성적 기도에 관한 교훈을 배운다. 어떻게 기도할까?

첫째, 구체적으로 구해야 한다. 기도는 구원받은 성도가 제일 먼저 배우는 신비스러운 성령의 사역이다. 유창한 용어 조직적인 문구이전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생명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이 생명은 거듭날 때 신자의 마음에 심기워진 영생을 가리키다. 영생이 있다면 그는 기도할 수 있다. 만일 영생이 없다면 그는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접촉이 없는 기도란 염불이나 주문을 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기도는 구체적이고 자상할 수밖에 없다.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는 기도의 방법은 모두 추상적인 태도를 벗어난 구체적인 태도이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 기도한 개인이 실제로 받는다. 그래서 조지 뮬러처럼 기도응답을 2만번이란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한다. 성령의 사역은 자상한 사역이다. 우리 속에 영생을 심으신 성령은 영원히 내주하시는 보혜사이시다. 곁에서 도우시는 사역 중 기도할 욕구를 주시고 기도에 견디게 하시고 기도를 통한 더 풍성한 교제의 세계를 열어주신다. 더욱이 진지한 기도를 하게 하시며 떡 세 덩이를 구하는 실감있는 간구를 하게하신다. 우리가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의 인도와 상관 없이 너무 추상적인 믿음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중언부언의 기도, 외식자의 기도는 성령을 따르지 않은 불신앙적 기도일 뿐이다. 불신앙은 작은 것을 구하지 못하게 한다. 교만한 마음은 기도할 수가 없고 하나님 나라의 복을 오해하기 잘한다. 영적 성장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엘리사의 사역 속에 보여진 기도의 교훈이 위의 것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한 신학생의 과부가 아들을 노예로 팔아야 하는 때에 엘리사를 찾아가 구한 것을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풍성하게 갚아주셨다. 그리고 아람의 장수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기 위하여 찾아왔을 때 그 해결의 길을 지시하기를 요단강에서 일곱번 목욕하라고 했다. 그 말에 순종한 그는 치료되었다. 그리고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일도 그 여인의 강청으로 그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었다. 이처럼 기도는 구체적이고 자세히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는 행위이다. 이때 하나님은 그것을 이행하신다. 악한 우리 시대는 이런 구체적인 기도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