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도파 (1173)

왈도파로 알려진 이 운동은 1173년 피터 왈도 혹은 발도에 의해 세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자료에는 왈도보다 더 일찍이 9세기에 이미 활동했다고 말한다. 다른 자료들은 콘스탄틴 대제의 회심을 추종하는 권력과 명성을 거절하면서 초대교회의 시절로 돌아가는 운동으로 보고 있다.

왈도파는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추구했고 의도적인 가난을 구했다. 그들은 속죄부, 죽은 자에 대한 미사, 성자들의 중보 그리고 마리아 숭배 교리를 거절했다. 그들은 극도의 가정 행복과 믿음 이외에 대부분이 평화주의자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기술적인 직업을 좋아했고 도덕적 손해를 보는 사업을 피했다.

왈도파는 캐톨릭 복귀운동의 목표였고 12-13세기를 통한 긴 박해를 견디었다. 그들은 산 속에서 운둔생활을 했다. 유럽 밖에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1541년 후기, 프랑스의 22개 마을이 대량학살을 당했다. 1655년에 이태리의 피드몬트 계곡의 정착지가 공격 받아 살해를 당했다.

이 모든 순교자들을 통해 왈도 교회는 본래 이태리에만 남았다. 1893년의 이민자들은 북 케롤라이나에 왈도파를 세웠다. 2차 대전 때 그들은 나찌를 피한 많은 유대인들을 도왔다. 왈도 교회는 오늘날도 여전히 남아있는데 남미, 이태리, 독일, 그리고 미국에서 장로교파로 대부분이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