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과 의의 섬김

구약의 제사는 신약의 예배로 완성된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구약제사는 신약의 전 생활영역의 예배와 섬김으로 성취된다. 그래서 신약에는 불완전한 제사에 머물지 않고 완성된 제사의 삶,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모두가 제사로 드려지는 삶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왕 같은 제사장이요 선지자라고 주장한다.(벧전2:9)

성경 계시는 유기적이기 때문에 구약의 본의를 알기위하여 완성된 신약의 빛 아래로 가야만 하고 신약의 의미와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구약의 그림자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그림자 속에 이미 그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섬김의 방법에 관한 것이다. 모세가 말한 제사제도를 처음으로 실행하자마자 여호와께로 불이 제단에 내렸고 영광이 나타났다.(레9:23-24)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신현(Theophany)이라고 일컬린다. 그 광경을 목격한 백성들은 소리를 지르며 엎드렸다(레9:24) 하나님이 임하시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경악한 셈이다.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된 체험이다. 이사야는 ‘화로다 나의 망하게 되었다’고 했고, 사도 요한은 그 앞에 쓰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했다.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했고 베드로도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소이다’고 고백했다. 이런 절규가 없는 신앙은 하나님의 임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려워할 일이다. 모든 섬김은 이 바른 엎드러짐에서 시작되어야한다.

이 엎드림의 섬김은 나답과 아비후의 사망 사건을 통해 더 선명히 들어났다. 레위기 10장에서 제사 제도의 규례를 받은 후, 얼마되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기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답과 아비후가 술에 취해 다른 향로 불을 들고 섬기다가 현장에서 즉사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구약 교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섬김의 방법을 다시 배우게 된 것이다. 생사가 달린 섬김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졌기에 두 요소를 바로 이해해야한다.(눅1:75)

첫째, 성결의 섬김이다. 성결이란 거룩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것만으로 구별한 것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성도라고 부르며 제사드리는 곳을 성막, 성전이라 부른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룩한 사람만이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성결과 화평이 없이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한다. NIV 역에는 성결은 화평의 본질이고 선행되는 기본 조건으로 표현되었다.(히12:14)

둘째, 의의 섬김이다. 의는 성결의 형제이다. 기준을 따른 것이 의이다.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다. 고로 하나님의 진리를 따름이 의를 따른 것이다. 신령과 진리의 예배는 바로 의의 예배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단번의 죽으심은 완전한 의의 제사였기에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켰고 그 의를 믿는 자기 백성에게 참다운 구원을 주신다. 하나님도 만족하신 그 의가 어찌 모든 것에 만족을 줄 수 없겠는가? 구원받은 자는 성결과 의의 섬김을 잘 배워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