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의 점화

에베소 교회의 부흥을 현대교회에 접목시키는 두 번째의 구체적 내용은 말씀을 접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만이 부흥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이란 성경으로 성경이 마음에 접촉 할 때 일이 생긴다. 그것은 성경말씀이 가진 독특성 때문이다. 주님께서 성경을 영이요, 생명이며 영생의 원천으로 주장하시고 마귀를 이기는 도구로 사용하심같이 신자도 그 성경을 자기 것으로 삼을 때 불이 붙듯이 마음이 뜨거워지고, 밝아지고, 시원해지고, 회개와 사랑이 생기며 모든 가치 기준이 달라진다. 이것을 한마디로 부흥이라 할 수 있다. 시편기자의 체험도 마찬가지였다.(시19:) 세상의 일반 은총 속에 보이지 않는 손길을 보며 들리지 않는 음성을 들으며 찬양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그는 이 소리가 기록된 성경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감격하는 것이다. 성경의 확실성, 완전성, 순결성, 진실성, 그리고 구원성에 대한 확신은 그 말씀을 묵상하고 접촉할 때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말씀을 가리켜 꿀 송이 보다 더 달다고 하며 모든 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고 고백했다. 더욱이 그는 한 구절에 나타난 말씀에 근거를 둔 그의 모든 묵상과 말이 주님이 받으시는 소중한 제물로 드려지기를 소원했다. (시19:14) 말씀에 접할 때 이런 가치관의 발견이 일어났고 모든 일반은총의 활동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의 손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마가 다락방의 부흥도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며 기다렸을 때 임했고 핍박가운데 있는 사도들이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능력을 구했을 때 성령의 부으심이 있었고, 고넬료 가정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으려고 모여서 그가 말하기 시작하고 그들이 듣는 중에 성령이 임했으며, 에베소 교회도 알지 못하는 사실을 교정시키며 예수의 복음을 말하고 기도할 때 성령의 불이 떨어진 것이다. 미국의 대 각성 운동도 설교듣기 위해 모이기를 힘쓸 때 일어났고 한국교회의 평양 장대현 교회의 부흥도 벌써 성경사경회를 통해 성경을 배우려는 열심으로 채워져 있었다고 교회사는 증거한다.

오늘날 여러 형태로 성경을 접촉시키려는 노력은 정말 귀한 일이다. 성령의 부흥의 불이 점화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날마다 대하는 성경의 내용, 문장, 글자 하나 하나에 집중하여 얻은 의미를 그리스도와 관련시켜 생각하고 그대로 살려고 할 때 성령의 불은 이미 그 속에 붙은 것이다. 문제는 나와 성경의 접촉 문제이다. 성경의 글자 하나에 하나님의 권위, 통제, 그리고 임재를 인정하는 자는 부흥의 불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