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기도

위대한 개혁신학 월필드(B.B. Warfield)는 캐톨릭의 마리아 숭배사상이 얼마나 비성경적인가를 보여준 일이 있다. 필자도 그 정도까지는 아닌 줄 알았는데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 하여 완전 신격화 한 것을 보고 어떻게 저 지경까지 되었는가라는 생각으로 서글퍼진다. 정말 성경이 가리키는 마리아는 어떠한가? 단지 한 믿음 있는 여인이다. 어려울 때 기도하고 말씀을 잘 받아 순종한 사람이지 그 이상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냉정하게 구분의 선만 그리는 것만 보더라도 그녀는 한낱 도구에 불과하지 하나님의 구속을 돕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사실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바꾸어진 사건의 기도에서 알려진다. 마리아는 어떻게 기도했는가?

첫째, 예수님을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기도했다. 가나혼인집과 친척인 것처럼 보이는 마리아는 포도주가 모자라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아뢰었다. 무슨 제목의 기도를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 수 있는 분 곧, 하나님으로 알고 믿은 것이다. 기도를 받으시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 때 기도의 성격이 달라진다. 마리아의 기도는 전인을 바치는 제물로서의 기도이다. 잔치집의 모자라는 포도주를 해결하실 분은 예수님뿐이라는 믿음이 그의 마음에 생긴 것이다. 조용한 그의 믿음은 전적인 신뢰의 기도로 능동적으로 나타났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이루리라는 약속을 믿고 실행에 옮기는 성도의 본을 보인 것이다. 기도의 참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뿐이다.

둘째, 기도의 실제를 보여주었다. 기도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일종의 보고(report)와 같다. 현재 상황에 포도주가 없기 때문에 당하는 난관을 말하지 않고 그 문제를 그대로 말한 것이다. 마치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편지를 받고 하나님 전에 펴놓고 하나님께 그대로 말하거나 자신의 죽음 앞에 살려 달라고 심정을 통한 것과 같다. 한나가 아들 하나 주시면 주께 바치겠다는 서원까지 하며 기도한 것이나 소경이 눈뜨기를 원하다는 액면 그대로의 보고가 기도이다. 거기에 어떤 수식어기 필요 없다. 구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는 그대로 아뢰는 보고가 필요할 뿐이다.

셋째, 기도란 믿음을 화합한다. 그러나 그 기도의 중요한 요소는 믿음을 화합하는 일이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을 화합하지 못하면 유익을 얻지 못하듯이 기도 역시 믿음을 화합해야한다. 마리아는 구한 다음에 구속의 일과 상관이 없는 말을 듣고서도 곧 이어 하인들에게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주목하게 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무엇이든지 그대로 하라는 것이다. 말씀에 대한 믿음은 기도의 세계에서 실행된다. 그대로 순종한 하인들을 통해 첫 표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의 기도는 단지 물질적 횡재 차원을 넘어 그의 영광을 나타내고 제자들이 그를 믿는 참 믿음을 갖게 하였다. 한 작은 문제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쓰임 받은 것이다. 모세는 물이 피(재앙)로 바꾸어지는 기적을 일으킬 뿐이나 그리스도는 물이 포도주(생명)로 변하는 그 나라의 열매를 나타내셨다. 참 성도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