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사운더스 (1555)

16세기 중반 영국의 혼란한 10년은 피를 많이 흘렸다. 열정적 신앙과 정치가 강하게 서로 결탁되었고 그 결속력이 믿음의 승인이었고 생명의 위협이었다.

로렌스 사운더스는 재능있는 젊은이였다. 이톤과 캠브리지에서 교육받은 그는 소년 왕, 에드워드 6세의 짧은 통치기간, 설교권을 얻었다. 테니스를 좋아한 왕은 1552-53 겨울에 감기에 걸려 7월 6일에 결핵으로 죽었다. 그와 그의 자문들이 레이디 제인 그레이가 그를 계승하고 프로테스탄트의 믿음을 지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백성들은 헨리 왕의 정통 후계자인 메어리를 원했다. 그래서 제인은 9일 만에 제거되고 메어리가 그의 이복 누이동생인 엘리자베스를 남기고 레이디 제인 모임에 가담한 모든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사람이 교회와 믿음을 저버리고 어떻게 로마 캐톨릭으로 돌이킬 수 있겠는가? 메어리의 계획은 설교자들이 말하는 것을 잘 듣게 하는 것이다.

1553년 10월 15일 사운더스는 프로테스탄트의 믿음의 교훈을 분명히 하고 제인 그레이의 재 진술의 기회를 얻기 위하여 설교하게 되었다. 그 설교는 신학적으로 빈틈없는 것이나 정치적으로 천박했다. 계획이든지, 혹은 우발적이든지 사운더스의 설교는 왕궁 옹호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반역으로 정죄 받았고 런던 감독이 그를 체포했다.

제인을 복귀시키려는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고 제인과 그녀 남편과 다른 죄인들은 참형을 당했다. 사운더스는 이교는 화형시킨다는 법을 의회가 통과하는 동안 감옥에서 기다렸다. 1555년 2월 8일에

로렌스 사운더스는 맨 발로 불속을 지나갔다. 그는 “그리스도 십자가를 환영하라 영생을 환영하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