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AD 93)

누가는 초대 교회 초엽 공식적 역사가였다. 그의 설명은 예수 생애의 저술자들로 인정된 마태 마가 그리고 요한과 견줄 수 있다. 우리는 요세보스와 같은 성경 외의 다른 원천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역사적 기록으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라 일컫는 두 책이 예수 생애의 계속된 기록이고 그의 지상에서의 직접적 사역의 결과임을 주의 깊게 우리에게 제시한다.

비록 누가가 사도의 그룹에 속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많은 사도들과 개인적 접촉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서론에 누가는 서술하기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눅1:3-4)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의 복음서 1, 2장에서 예수의 출생을 설명하는 친숙한 정보는 자신이 목격자임을 강조한다. 이 특별한 경우에 분명한 목격자는 바로 마리아이다. 그녀는 자기 생애에 자기 마음에 고이 간직한 모든 것을 기억하여 그렇게 많은 질문을 가진 한 겸손한 의사와 그 사실을 나눈 것이 확실하다.

사도행전 특징 중 하나는 “우리(We)”라는 부분으로 알려진 것을 포함시킨다. 누가가 바울의 여행 사건을 말할 때 그는 이따금 우리란 말을 거기에 참관한 예리한 관찰자로 사용한다.(이것이 맞는다면 누가는 두로아에서 바울의 선교여행 그룹에 참여했을 것이다.) 바울은 누가를 ”사랑하는 의사”라고 부른다.(골4:14) 그 팀에 의사가 있다는 것은 실제적 유익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여행하는 동안, 누가는 바울의 만성병에 대한 치료뿐 아니라 돌에 맞은 상처와 멍을 치료하고 복음 설교를 받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그 그룹의 의사로 섬겼음이 확실하다.

누가는 공적 설교자라기보다 오히려 조력자이며 기록을 보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동료들이 겪은 힘든 일들을 더 잘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를 위한 고난을 분명히 경험했다. 그는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향하는 바울의 마지막 여행에 그와 동행했다. 그 때 그는 더 위험했다 해도 정상적인 평탄한 여행을 만들었다. 폭풍이 몰려올 때(행27:)와 그 배의 선원들에 의해 생존의 이탈을 묘사할 때 누가는 목격자의 자상함을 보여준다. 두 주간의 호된 경험이 모든 참여자를 시험했다. 멜리데에서 파선된 후 의사의 눈을 가진 누가는 그의 관심을 두 사건에 두고 기록한다. 바울이 독사를 떨어뜨려 위험을 벗어남으로 섬사람들에게 조용한 감동을 자아냈다. 역시 그는 열병과 이질에 걸린 그 섬의 추장의 병을 진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통해 치료를 하셨다. 이런 문제로부터 새로운 청중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고난은 직접적인 목적을 갖는다.

전통은 누가의 죽임당한 방법에 대해 일치하지 않는다. 누가는 로마에서 바울이 죽을 때까지 함께 있음으로 그 자신의 사역을 확장했다. 그 즈음 누가는 보에티아 (Boeotia)라 일컫던 곳에서 한 노인으로 죽었다.(고대헬라지역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가 거칠었던 시대에 살았던 것을 볼 때 헬라의 낯선 곳에서의 순교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랑받은 누가는 과거에 접한 것보다 더 많은 영혼의 치료에 관한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복음전도자 누가는 주후 93년 그리이스에 있는 한 올리브 나무에 매달려 순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