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은 영이요

오병이어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위해 베푼 광야의 식탁은 육신의 배 부름을 가리키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 같은 믿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 사건은 참 만나이신 그리 스도를 믿게 하려는데 있었다. 육신의 배부름에서 영혼의 배부름으로, 기적 주의 현실주의적 탐욕에서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눈길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한 자극적인 비유를 사용하시기도 하셨다. 내 피와 살을 먹고 마셔 야 한다는 비유가 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주장으로 발전해 나갔다. 영은 생명이지만 육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첫째, 주의 말씀이 영이다. 영(퓨뉴마)을 성령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님은 육신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구분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 로만 자기 백성이 산다고 하신다. (신8:3, 마4:4) 그래서 사도와 선지자들은 성경 말씀을 성령의 영감으로 되었고 (딤후3:16), 성령의 검이고(엡6:17), 영혼의 빛과 등불이고(시119:105), 그리고 물(눅24:32), 방망이 등으로 비유 했다. 그 말은 죄인의 영혼에 말씀과 성령이 일할 때 거듭나고, 갓난아이 성장에 필요한 모유처럼 그의 말씀이 성령을 통하여 그의 영혼에 공급되 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성령은 말씀을 통해(through), 말씀 안 에서(in), 말씀과 함께(with) 일하신다는 뜻이다. 고넬료 가정에 초대된 베 드로가 설교를 시작할 때와 설교를 듣는 중에 성령이 일하신 것이 이 사실 을 증거한다 (행10:44,11:15).

말씀을 통해 성령이 일하실 때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다. 생명이 태어나 며 소생하며, 눈을 뜨게 하여 회개케 하고, 믿게 하고, 연합케 하며 풍성하 게 하며 심판 날에 영생의 부활을 하게한다. 이렇게 성경을 받는 것은 현재 의 육신 문제만이 아니라 영원을 결정짓는 사건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둘째,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가리켜 주는 영이시라 하여 주의 영 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으며 그 안에서 영광을 보며 그와 같은 형상으 로 변하여 간다고 말한바 있다.(고후3:17-18) 여기 나온 주는 높아지신 신분 의 주님을 가리킨다. 갈릴리나 벳새다의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일하시던 주님이 이제는 성령 안에서 온 세상 개인 개인에게 그리고 그의 모든 영혼 을 주관하시는 동일한 주님으로 일하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이란 성령을 가리킨다. 주님을 성령과 동일시 하실 정도로 성령 안에 친히 일하시는 주 님을 보인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말씀이 주님이며, 말씀이 성령도 된다 는 사실을 배우게 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영이고 생명이란 결론에 이른 다.

성경이 영이요 성경만이 참 유익이라는 주님의 주장을 받는 자만이 생 명의 풍성한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성경과 연합하는 일에 총력을 쏟는 자 가 진정 복된 자이다. (시1:3) 그 이유는 성령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