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만의 감사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장관으로 그 나라의 2인자였다.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의 대우를 받았지만 천형병인 한센 병이 걸려 엘리사를 찾아와 치료를 받음으로서 그의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감사의 지혜를 얻는다.

첫째, 그의 감사는 문제에서 일어났다. 문둥병이라는 저주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감사를 배웠기 때문이다. 당시 문둥병이란 죄 때문에 주어진 저주로 통하였다. 미리암도, 웃시야왕도 그러했고, 요압장군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도 후손 중 문둥이가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방나라 나아만은 왜 이런 병이 걸렸는가?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손에 의한 것임을 배운다. 그가 아람을 구원하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1절). 그는 이방에 있었으나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그런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다. 그가 한 여종의 말을 듣고 엘리사를 찾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마음이었다. 문제 해결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왔던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현재의 문제를 주께 가지고 가는 일연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사를 배워야한다.

둘째, 그의 감사는 그대로 하는 순종을 통해서 일어났다. 그 저주 덩어리, 문둥병을 가지고 엘리사를 찾았을 때 주님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주님은 역사하셨다.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라“는 것이다. 그의 교만된 마음을 낮추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거부하던 그의 자존심이 순종으로 바꾸어졌다. 일곱 번 목욕하매 그의 환처가 깨끗이 나았다. 순종이 기적을 가져왔다. 말씀대로 그대로 할 때 하나님은 일하신다. 여섯 번까지 낫지 않다가 끝까지 하였을 때 그는 순간적으로 치료되었다. 순종은 즉시 하는 것이고, 그대로 하는 것이고, 끝까지 하는 것이다. 가나 혼인잔치의 역사도 그대로 할 때 일어났다. 이것은 모두 순종으로 구속을 이룬 주님을 본받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감사는 말씀 그대로 할 때 일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말씀 순종이 없는 감사는 가짜감사이다. 진정한 감사는 언제나 주의 말씀을 순종할 때 마음에서 부터 주님과의 교통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의 영광을 맛보며 감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를 알지 못하는 감사는 외식된 감사가 되고 만다.

셋째, 그의 감사는 경배자로 남게 했다. 나아만의 감격은 매우 컸다.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 가지고 온 예물만 아니라, 더 갖다 바치고 싶었다. 그러나 엘리사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배의 욕망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외에 진정한 하나님이 없음을 고백하였고 다시는 다른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사원하며 그리고 이스라엘 땅의 흙을 싣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경배자로 있겠다는 것이다. 진정한 감사는 경배의 삶으로 나타난다. 감사한다고 하면서 경배하는 자의 욕망과 감격이 없다면 이것은 큰 문제이다. 감사해 놓고 자기 욱적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진정한 감사라고 볼 수 있을까? 이번 감사 절기에 나아만의 감사가 우리 영혼을 지배하기를 갈망하자. 그러기에 문제를 가지고 기도로 나가며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든지 감사히 받으며 그대로 순종하여 경배의 자리로 나아갈 때 그 속에서 영원토록 솟아나는 감사의 샘물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